리들리 스콧의 이상한 집착

2017.10.23
리들리 스콧이 감독한 ‘에이리언’은 H.R 기거의 필체로 강간과 그로 인한 임신에 대한 공포를 그린 고전이었다. 피해자들의 공포를 다루는 동시에 그들이 궁지에 몰린 모습을 즐긴다는 모순이 있었지만 이런 모순은 호러영화에 으레 뒤따르는 법이었다. 호러영화들은 그 윤리적 경계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작품에 깊이를 더하기도 했으니까. 어쨌든 ‘에이리언’은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의 서사였고 그렇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올해 나온 리들리 스콧의 신작 ‘에이리언 커버넌트’에 실망했던 것은 이 경계를 무너뜨렸기 때문이었다. 피해자에 이입을 하게 만드는 동시에 순간적으로 가해자의 시선을 취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닌, 가해자를 선망하는 와중 일시적으로 피해자의 시선을 취하는 관성에 머물렀으니 기대와는 달라도 여간 다른 게 아니었다.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기존의 ‘에이리언’ 시리즈와는 달리 여성 인간에서 남성 안드로이드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스포일링을 하자면 이 영화에서는 에이리언, 즉 제노모프는 안드로이드 데이빗 8(마이클 패스벤더)이 외계생물을 개량해 만든 피조물이었다는, 별로 충격적이지 않은 진실이 밝혀진다. 강간을 당하는 여성에서 강간을 하는 남성으로 시선이 옮겨진 것이다. 그것도 악역으로 제시되는 와중에도 그를 향한 질투와 선망마저 엿보이도록 말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전작 ‘프로메테우스’와 연결 지어 보면 그 함의는 더욱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프로메테우스’에서는 늙은 백인 남성 자본가가 영생을 얻기 위해 우주를 탐험하고 최신작 ‘에이리언 커버넌트’에서는 생식 기능이 배제된 남성형 안드로이드가 무차별적으로 남들 몸에 기생 생명체를 집어넣고 다니는데, 이쯤 되면 보고 있기 민망한 나머지 차라리 두 눈을 감는 것이 서로를 위해 더 유익하지 않나 의문이 들 정도다.

이 우스꽝스러운 욕망의 전시는 결국 리들리 스콧의 또 다른 대표작인 ‘블레이드 러너’의 후속작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마저 이어지고 말았다. 비록 리들리 스콧이 감독이 아닌 제작의 위치로 물러났음에도 일련의 시리즈처럼 느껴질 정도다. ‘블레이드 러너’의 인공생명체, 즉 레플리칸트들은 4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태생적 한계 탓에 도구로서의 운명에 갇힌 비극적 서사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후속작 ‘블레이드 러너2049’의 신형 레플리칸트들은 수명 제한이 사라져서 그런 비극적인 서사와는 완전히 무관한 존재가 되었다. 게다가 어머나,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생식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리들리 스콧이 제작을 맡은, 영생을 하지만 생식 능력이 없는 인공생명체 이야기라니 너무나 놀랍지도 새롭지도 않지 않은가?

‘블레이드 러너 2049’에 등장하는 두 주요 정치세력과 그들이 갈등하는 지점은 다음과 같다. 지배세력인 기업은 레플리칸트의, 노예의 대량생산을 바란다. 피지배세력인 레플리칸트는 혁명을 바란다. 이 둘이 공통으로 쫓는 성배는 30년 전 사라진 블레이드러너 데커드(해리슨 포드)와 레플리칸트 레이첼(숀 영)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다. 도대체, 도대체 그들이 마주한 문제의 해결책이 어떻게 누군가의 임신이고 그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인지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다.

종을 유지하고 진화를 지속하는 데 있어 임신은 생명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기간 성과를 일구었다. 하지만 임신이 갖는 한계도 명백하다. 임신, 그것도 인간의 임신은 그 기간이 길고 태어난 아이가 성장하기까지 걸리는 기간도 길다. 그렇기에 많은 SF에서 짧은 기간에 일관된 수준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세대교체도 빠르다는 점을 인공생명과 인류의 차이로 놓았는데,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장르적 공식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며 임신에 집착하는 페티시를 놓지 못한다.

아직까지 이 사회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에 제대로 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SF에서는 이미 몇십 년 전부터 인공자궁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그로 인해 변해가는 사회상에 대한 사고실험도 숱하게 진행했다. 그런데도 굳이 임신을 하고 싶어 전쟁과 테러를 준비하는 레플리칸트 이야기라니, 도대체 누구 좋으라고 이런 소재를 되풀이한단 말인가? 그 답은 백인 남성 자본가가 영생을 얻기 위해 우주를 여행하고 생식 기능이 배제된 남성형 안드로이드가 무차별적으로 남들 몸에 기생 생명체를 집어넣고 다니는 이유처럼 자명할 것이다.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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