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가을의 박물관

2017.10.30
지나가는 가을, 박물관을 추천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계절일 수도 있다. 사계절이라고 부르지만 대체로 아주 뜨겁거나 아주 차갑고 혹은 바람이 불고 건조하고 축축하고 미세먼지가 가득한 한반도에서 가을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천국 같은 날씨를 박물관 같은 실내에서만 보내기엔 아까울 수 있다. 게다가 어느 박물관을 가야할지 고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박물관에 방문하는 사람들 중에는 연구를 목적으로 하거나, 뛰어난 배경 지식을 토대로 유물의 정보 값을 모두 읽는 사람은 오히려 적은 편에 가깝다. 또한 그런 사람들 역시 한 명의 관람객일 뿐이며, 같은 관람객의 입장에서 그들에게 주눅 들 필요는 전혀 없다. 

박물관 방문이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우선 현대 미술을 관람하듯, 그 유물이 가진 형태와 색 등 조형적 측면에서 관람하는 방식을 추천한다. 세대 차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시간적 거리를 둔 사물(유물)은 현재 관람객의 앞에 있기 위해 수많은 선별의 시간을 지나고 지나 최종적으로 한 시대의 유행에서 가장 완성도 높거나, 개성이 뛰어난 것들이 선택받아 보존 처리 후 전시된 것들이다. 그러니 유물을 조형적 측면에서 관람해도 손해 보는 시간은 아니다. 박물관의 선사관에서 주로 관람 가능한 파편 등의 전시품을 만나게 되면 다시 본인이 가진 배경 지식 부족을 생각하며 전시관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부담 없이 유물을 색감과 질감으로만 관람해도 좋고, 유물 편이 가지고 있는 학술적 의의를 외우고 분석하는 몫을 남에게 넘기는 것에 부담 갖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청명하고 행복한 한국의 가을날 박물관 관람이라면, 이왕지사 실내 전시관의 관람과 함께 외부 환경이 적절히 조성되어 가을날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좋을 것이다. 

종로구 사직동에 위치한 서울역사박물관은 그 점에서 첫번째로 추천할만 하다. 최근 파독 간호사 기획 전시로 큰 인기를 끌었던 곳으로, 서울과 관련되거나 서울 내에서 출토된 유물을 관리하는 곳으로 전시 테마가 확실하고 유물의 연대가 크게 현재와 떨어져 있지 않아 상설 유물을 관람하기에도 좋다. 또한 다른 곳에 비해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선의 5대 궁 가운데 하나인 경희궁과 밀접해 일층 로비를 통해 외부 석조 유물을 관람하고 경희궁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광화문 인근에서 그만큼 안락하고 평화로운 산책로를 찾기 힘들며 내부 조경도 잘 관리되어 있어 가을날 산책을 함께 즐기기에도 그만이다. 근현대 건축 유물이 즐비한 정동과도 멀지 않아 여유가 있다면 길을 건너 정동으로 들어가 근현대 건축물을 배경으로 산책도 가능하다. 성북구 성북동의 우리옛돌박물관도 좋다. 세계 최초 석조 유물만을 다루는 박물관이자 돌이 가진 분위기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전시관으로, 한 재료로 만들어진 유물이 모여 어떤 효과가 있는지 가장 손쉽게 느껴볼 수 있다. 박물관의 위치가 도심과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언덕에 위치한 만큼 박물관 내 조성된 길을 따라 올랐을 때 볼 수 있는 서울 도심의 풍광은 시간을 내어 방문하기에 충분하며, 길상사와 인접해 있어 조금 일찍 방문해 성북동 길을 내려가며 길상사에 들러 쉬어 가도 좋다. 사설 박물관으로 성인 1만원의 관람료를 받지만 관람료가 아깝지 않을 것이다. 

물론 국립중앙박물관도 좋다. 상설 전시관이 가장 크고 넓어 평일 오후에 도착한다면 여유 있는 환경에서 조용한 관람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실내 상설 전시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야외 석조 유물을 관람하지 않고 돌아가는 관람객이 많은 편인데, 개인 추천으로 호수와 정자를 둘러보기보다는 박물관 외부로 둘러진 석조 유물을 따라 산책하고 바로 옆길로 이어지는 용산가족공원 산책을 추천한다. 용산가족공원 역시 방문 인구가 평일에 많지 않아 아주 조용한 분위기에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쾌적한 장소를 좋아하는 많은 이들이 박물관 산책으로 평안을 얻길 바란다. 가을이니 더욱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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