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토르:라그나로크’, 이 영화의 끝을 다시 시작하려 해

2017.11.01
*‘르: 라그나로크’의 내용이 결말 포함 다수 있습니다.

‘토르: 라그나로크’는 ‘토르’ 시리즈를 비롯해 마블이 제작하는 슈퍼 히어로 영화들이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제한다. 토르는 한쪽 눈과 강력한 무기 묠니르를 잃었지만, ‘토르: 라그나로크’는 어떤 것도 해결하지 않은 채 끝나버린다. 물론,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주인공을 시련에 빠뜨린 채 한 편을 끝내는 것은 이제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토르의 눈과 묠니르를 앗아간 헬라(케이트 블란쳇)는 ‘토르: 라그나로크’와 함께 퇴장했다. 게다가 토르는 헬라에게 직접 복수하지도 않았다. 헬라로 인해 위기에 빠진 자신의 고향 아스가르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그는 헬라를 이길 가장 이성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그 결과 다른 존재가 헬라를 제거한다. 주인공이 눈과 무기를 잃었고, 그 원인이 된 적도 사라졌다. 그런데 영화는 계속된다. 어쩌면, 영원히.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묠니르가 부숴진 것은 큰 사건이다. 하지만 세 편의 ‘토르’ 시리즈를 비롯해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닥터 스트레인지’, ‘스파이더맨’, 기타 등등, 그리고 토르도 출연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까지 범위를 확장하면 어떨까. 마블의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아스가르드의 종말을 뜻하는 ‘라그나로크’는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 중 하나일 뿐이다. 거대한 액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보여주면 된다. 묠니르? 다음 편이나 다음 다음 편, 아니면 언젠가 어떻게든 해결하면 된다. 이미 원작 코믹스에서 토르는 묠니르를 얼마나 많이 잃었나. ‘토르: 라그나로크’는 이 거대한 세계에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로 가는 가교, 그 자체처럼 보인다. ‘어벤져스’ 시리즈 전체에 심각한 영향을 줄 사건은 없다. 이전 시리즈에서 벌어진 일들은 초반 10여 분 사이에 정리하며 이른바 ‘떡밥’을 회수하고, 다시 새로운 ‘떡밥’을 뿌린다. 헬라를 통해 우주에는 토르와 헐크(마크 러팔로)도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도 일깨운다. 토르, 헐크, 로키(팀 히들스턴)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생겼다.

전후 맥락에 대한 설명 없이 사슬에 묶여 있는 토르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오프닝은 이 영화의 방향에 대한 선언같다. ‘토르: 라그나로크’는 어딘가로부터 와서 다시 흘러갈 이야기의 일부일 뿐이라고 말이다. ‘토르: 라그나로크’의 중심 사건은 토르와 헬라의 대립이다. 그러나 두 캐릭터가 직접 대립하는 것은 초반과 후반 잠깐 동안이다. 대신 토르가 헐크, 로키와 함께 사카아르 행성을 탈출하는 과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이 사건은 ‘토르: 라그나로크’에서는 그리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토르, 헐크, 로키의 캐릭터를 보다 매력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필요하다. 지혜와 무력을 동시에 갖춘 매력적인 전사 발키리(테사 톰슨)의 합류를 알리는 역할도 한다. 한 편의 영화로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묠니르가 부서졌으니 토르의 액션에는 제약이 생긴다. 토르, 헐크, 로키, 발키리가 티격태격하며 가까워질 시간이 필요한 만큼 액션의 양 자체도 줄어든다. 아스가르드와 사카아르로 이야기의 배경이 나뉘면서 영화의 흐름은 산만해지고, 헬라가 학살을 진행하는 아스가르드와 네 캐릭터가 유머를 주고 받는 사카아르의 분위기는 잘 섞이지 않는다. 그러나 ‘토르: 라그나로크’는 대신 ‘토르’ 시리즈 전체를 본 사람에게 영화 한 편만으로는 줄 수 없는 재미와 의미를 만들어낸다. 1편에서 아버지 오딘(안소니 홉킨스)의 명에 반발했던 토르는 3편에서 아버지처럼 오른쪽 눈을 잃은 채 아스가르드 인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된다. 그사이 전쟁만이 해답이라고 외치던 그는 어느새 아스가르드 인의 목숨을 최우선으로 여기게 됐고, 대립하던 로키와도 과거보다 가까워졌다. ‘토르: 라그나로크’만으로 보면 토르가 헬라와 직접 싸우지 않고 위기를 벗어나는 결말은 제대로 된 액션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토르’ 시리즈 전체를 보면, 폭력만을 답으로 여기던 토르가 가장 피해가 적은 방법을 찾는 지혜로 문제를 해결하는 드라마틱한 순간이기도 하다.

물론, ‘토르: 라그나로크’를 즐기거나 평하기 위해 ‘토르’ 시리즈, 더 나아가 ‘마블 씨네마틱 유니버스’ 전체를 보고 그 의미를 이해하려 할 필요는 없다. ‘토르: 라그나로크’는 한 편의 영화로서 산만하고, 액션이 중요한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액션의 쾌감이 부족하고, 진지하지 못한 작품일 것이다. 그러나 ‘토르: 라그나로크’는 시작도 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영화가, 오히려 시작과 끝을 책임질 필요 없는 자유도 가질 수 있다는 역설을 제시한다.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위대한 업적으로 칭송받던 오딘의 역사는 가짜로 밝혀진다. 오딘의 영광은 헬라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아버지가 외치는 평화는 폭력을 통한 정복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토르: 라그나로크’는 ‘토르’ 시리즈를 스스로 재해석하면서 그 과정에서 이전의 ‘토르’, 더 나아가서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역사를 교정한다. 위대한 아버지와 불완전한 아들의 이야기로 시작했던 시리즈가 아들이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토대를 찾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헬라와 발키리처럼 아버지와 아들만이 주목받는 역사에서 지워졌던 여성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토르: 라그나로크’는 토르의 고난과 영광을 모두 해결하겠다는 야심을 갖지 않는다. 대신 ‘토르’ 시리즈가 보여줄 수 있는 많은 이야기 중 한 부분에 주목하면서, ‘토르’ 시리즈 전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토대를 마련한다. ‘토르: 라그나로크’의 유머도 마찬가지다. 토르는 눈을 잃고, 묠니르도 잃고, 머리카락 일부도 잃었지만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유쾌하다. ‘토르: 라그나로크’의 제작진은 토르가 눈을 잃어도 마치 ‘신적인 존잰데 어때’ 하는 것 같은 태도로 그를 다루면서, 영화 전체를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밀고 나간다. 한 작품만으로는 위험한 선택일 수도 있지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이런 유머는 ‘토르’ 시리즈만의 스타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토르: 라그나로크’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작품들 역시 코믹스처럼 세기 어려울 만큼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마블이 무려 ‘라그나로크’라는 이름을 가진 작품을 온전히 이전과 다음 시리즈를 잇는 역할로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관 전체에서 아주 중요한 작품은 아니지만 필요한 일은 하고, 작품의 스타일도 새롭게 확립하며, 지금까지의 이야기에 새로운 의미도 부여한다. 이 모든 것이 대단한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마블이든 DC든 슈퍼 히어로를 다루는 코믹스에서 이미 수십 년 동안 해온 일이다. 의의를 찾는다면, 마블이 편당 몇억 달러가 오가는 블록버스터에 코믹스의 운영 방식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이것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바깥의 영화들에 큰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다. 마블의 이런 방식은 점점 더 새로운 팬의 유입을 힘들게 할 수도 있고, 그만큼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같은 메인 이벤트가 짊어지는 부담도 커질 것이다. 기본적인 이해도가 있는 팬덤을 전제로 하는 블록버스터 시리즈가 그 규모를 유지하는 방법은 대형 이벤트에서 새로운 팬덤을 유입시키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블의 영화가 아무리 성공한다 해도, 영화는 영화일 것이다. 다만 이럴 수는 있겠다. 기존의 영화 외에, 마블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영화가 생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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