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렉: 디스커버리’, 다시 한 번 위대하게

2017.11.03
“우주, 그 최후의 개척지.” 이 문장이야말로 ‘스타트렉’ 시리즈를 가장 잘 설명하는 한마디가 아닐까 싶다. 이 시리즈에서 미래의 인류는 태양계 바깥의 문명과 접촉해 행성연방을 결성한 뒤 우주 곳곳을 항해하며 낯선 존재들과 교류한다. 넘치는 자원과 발달된 기술을 바탕으로 평화를 이룩한 세상에 살면서도 그들이 목숨을 잃을지 모를 모험을 감수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에게는 탐구심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스타워즈’ 시리즈가 미국 사회에 부재하던 신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처럼, ‘스타트렉’ 시리즈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조직되고 발전하는 과정을 SF적으로 재구성한 건국사에 가깝다.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를 바탕으로 하는 스타트렉 시리즈의 밝은 미래상은 개척자 정신 그 자체였다. 그리고 이 시리즈에 12년 만의 신작 드라마, ‘스타트렉: 디스커버리’가 추가되었다.

‘스타트렉: 디스커버리’는 발표 당시부터 주인공이 우주선의 함장이 아니라 일등항해사인 흑인 여성 마이클 번햄(소네쿼 마틴 그린)이며 함장 필리파 조지우 역 또한 홍콩을 대표하는 배우인 양자경이 맡았다는 점에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정작 방영이 시작되고 난 뒤 이 작품은 다른 방향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1화부터 전투적인 문화가 강한 클링온 종족과 행성연방의 충돌을 다루면서 희망과 개척자 정신이 담겨 있던 기존의 세계관은 사라지고 적대와 차별 그리고 전쟁이라는 참상만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 시리즈에서 정치적, 군사적 분쟁을 다루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이나 고민들이 서사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제시되었을지언정 ‘스타트렉: 디스커버리’처럼 시즌 1의 1화부터 어떤 대화의 여지나 화합의 가능성도 없이 바로 전쟁에 몰입하는 방식도 아니었다.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클링온 종족과 행성연방 사이의 갈등이 초월적으로 진화한 오가니아의 생명체들에게 완전히 무력화되는 촌극이나 사랑스럽지만 번식력이 강한 생명체 트리블을 둘러싼 익살극 정도로 다루어졌던 것을 돌이켜보면 이 변화는 보다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스타트렉: 디스커버리’에서는 전쟁이야말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불가침의 영역에 존재한다. 논리적인 벌컨 종족은 호전적인 클링온 종족과 조우할 때마다 폭력은 저들과의 대화 수단이라며 선제공격을 고수하고 PTSD로 뒤틀린 디스커버리호의 선장 가브리엘 로르카(제이슨 아이작)는 전시체제라는 변명 아래 온갖 규율을 어겨가며 극단적인 선택을 정당화한다. 이들의 결단은 올바름을 위하는 원칙주의자가 아닌 전쟁의 승리를 위하는 실용주의자의 입장에 가깝다. 원칙주의와 실용주의 모두 논리를 기반으로 하더라도 그 목적지는 결코 같지 않다. ‘스타트렉: 디스커버리’가 기존 시리즈와 갖는 차이점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소통에서 단절로, 공존에서 분열로 서사의 무게중심이 옮겨간 데에는 복잡해질 대로 복잡해진 현실 정치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창작물은 직시해야 할 현실의 세상을 재현하기도 하고 이룩해야 할 미래의 세상을 제시하기도 한다. 현실의 세상을 재현할 때는 인간의 밑바닥으로 내려가야 하고 이 추락을 위해 어떤 끈을 놓을 각오가 필요하다. 그리고 미래의 세상을 제시할 때는 인간이 이룩한 곳 너머를 향해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는 끈기와 성찰이 필요하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른 차원의 문제는 아니지만 ‘스타트렉: 디스커버리’의 방향성이 기존 시리즈와 달리 위가 아닌 아래를 향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물론 ‘스타트렉: 디스커버리’는 고작 첫 번째 시즌의 절반을 진행했을 뿐이다. ‘스타트렉: 디스커버리’는 더 깊은 바닥으로 내려가 보다 짙은 어둠을 마주하는 방향을 향하고 있지만 그 추락으로 얻은 속도에 반동을 더해 다시 한 번 위로 날아올라 보다 높은 곳의 풍경을 발견하는 선택지 또한 남겨두고 있다. 12년 만에 돌아온 이 시리즈가 최종적으로 어떤 결론을 내릴지, 아직은 두근거리며 가슴을 졸인 채로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먼저 경제를 빈사 상태로 만들고 조국을 다시 한 번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퇴행하는 경우와 달리 어디까지나 가상의 세계이기에 즐길 수 있는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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