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힙합을 관둔 래퍼의 플레이리스트

2017.11.06
나는 슬릭이라는 사람이다. 누구냐면 온라인 힙합 콘텐츠 ‘mic swagger 2’에서 "기집애와 게이를 욕으로 쓰는 것이 힙합이라고 하면 힙합을 그만두겠다”고 했던 래퍼다. 그런 말을 한 지 11개월이 지났고, 그 후로 힙합을 관뒀냐 하면, 기분 탓일 수도 있지만 왠지 그런 것만 같다. 아직도 한국에서 힙합 음악을 하는 많은 분들이 ‘기집애와 게이’를 꾸준히 욕으로 쓰면서 한.국.힙.합.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물어볼 수는 있겠다. ‘미국 힙합은 좀 사정이 나은가요?’ 미국 힙합도 온갖 혐오 표현에 쩔어 있는 게 많다. 아닌 것도 역시 많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노래를 다 들어보고 결정할 수는 없으니. 그래서 아예 가사가 없는 힙합을 듣기도 한다. 웃기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영어도 대충 알아듣다 보니 한국이든 미국이든 기쁜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곡이 많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힙합을 듣는다면, 또는 누군가 힙합을 듣고자 한다면 추천할 수 있는 몇 개의 곡을 골랐다.


네이버 온스테이지
Chance the Rapper feat. Daniel Caesar - First World Problem
챈스 더 래퍼는 시카고 출신의 래퍼다. 아니, 챈스 더 래퍼는 사랑이다. 랩을 너무 잘한다. 잘하는 랩은 이런 것 같다. ‘랩하는 것’과 ‘말하는 것’의 경계가 사실은 없다는 걸 깨닫게 해준 사람이다. 다니엘 시저는 더 말하면 입 아픈, 요즘 가장 잘하는 보컬! 힙합이라면 다 ‘때려 부수고 섹스’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사실 이 노래는 아직 발표도 되지 않은, 제목도 없는 신곡이고 들을 수 있는 채널은 유튜브 영상뿐이다. (나는 힙합엘이의 자막 버전을 추천한다. 힙합엘이도 사랑이다.) 여전히 세상의 맨 앞에서, 여러 문제에 대해 귀를 열고 입을 여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솔직하고 슬프고 날카로운 얘기도 충분히 멋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곡.

thunder6 - flicker
퓨처베이스라는 장르로 소개되는 곡. 퓨처 베이스는 힙합과 덥스텝, 그리고 유행하는 이것저것이 섞인 장르라 볼 수 있다. 장르 특성상 가사는 뭐라고 하는지 잘 안 들릴 만큼 적고, 보컬보다는 악기가 훨씬 주목받는 장르니까 마음에 든다면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퓨처베이스 여행을 떠나보자. 사실 이 뮤지션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그것이 오히려 이 곡을 소개하는 이유다. 사운드 클라우드는 누군지 몰라도 노래만 좋으면 타임라인에 자주 뜨고, 그래서 노래 추천을 쉽게 받을 수 있으니까. 사운드 클라우드는 타임라인 기반의 음악 감상 플랫폼이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프로듀서가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인지, 요새는 어떤 무드의 노래들이 프로듀서들 사이에서 사랑받는지 알 수 있다. flicker 역시 그렇게 알게 된 보석 같은 노래. 게다가 이 노래는 이 링크로 가면 공짜로도 받을 수 있다. 세상에, 천재네!

dizralph.c - two of us
빌 위더스(Bill Withers)의 그 유명한 ‘Just The Two Of Us’를 로우파이 힙합이라는 장르로 재해석한 곡.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이 노래 위에 노래도 했다. 듣고 싶으면 슬릭의 사운드 클라우드뮤지션리그로 가보자. (제발 가주세요.) 로우파이 힙합이라는 장르에 대해서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쉽게 느낌을 설명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냥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먹먹하고 아름다운 소리들. 부디 귀찮음을 감수하고 노래를 재생시켜주신 여러분의 마음도 편해지길. 요즘은 유튜브에 24시간 논스톱 로우파이 힙합 라디오 채널이 흥한다. 링크를 첨부해드릴 테니 일상 bgm으로 틀어놓고 지내보시길 권한다. 일단 내가 그렇게 하고 있고, 너무 좋아서 페이팔로 도네이트도 했다.

AnTgry - Sugar Road (ft. Desired)

퓨처디스코/퓨처펑크/베이퍼웨이브/시티팝 어쩌구... 암튼 그런 장르. 이런 곡을 듣다 보면 정말 디스코는 세계 최고의 장르 같다. 나도 힙합 관두면 뭘 할까 알아보던 와중에 ‘디스코가 세계 제일 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디스코/펑크는 사운드 클라우드 여행을 떠나면 무조건 만나게 되고, 무조건 반하게 되는 장르다. 사운드 클라우드 파도타기 여행 중 ‘세일러문’ 및 일본 애니메이션 장면을 프로필 사진으로 걸어놓은 사람들의 음악을 들어보라. 정말 신나고, 예쁘고, 몸이 씰룩거린다. 단, 약간의, 조금 많은 일본어가 들릴 수는 있다. 개인적으로 일본어를 몰라서 그냥 듣는데, 혹시 혐오 표현이 있을 수도 있으니 주의.

Appl - Rob Araujo
Rob Araujo를 검색해보면, 피아니스트이자 프로듀서라는 소개가 가장 먼저 뜬다. 말 그대로이다. 편안히 흐르는 드럼 리듬 위에 화려하고 여유로운 피아노 선율이 가사 없이도 너무나 아름다운 무드를, 너무나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어낸다. 섬세하게 배치된 악기들 간의 호흡이 너무 멋지다. 듣다 보면 이것이 힙합인가 싶기도 한데, 이 뮤지션이 해시태그에 ‘힙합’이라고 달아놨다. 그러면 힙합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식의 접근을 연주하고 있고, 잘 멋지게 해내고 싶다. 체르니 30에서 피아노와의 인연이 끝나서 연주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 아쉽고, 연주를 못하니 잼을 하려고 해도 못하겠지만. 한다면 랩으로 해야겠지? 밴드 셋과 랩의 잼이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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