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유닛 vs 믹스나인│① 여기 여기 붙어라

2017.11.07
“YG가 참여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차별성.”(OSEN) 최근 방영을 시작한 JTBC ‘믹스나인’의 제작자 양현석 YG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KBS ‘더 유닛’과의 비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두 프로그램은 모두 여러 기획사의 아이돌들을 한데 모아 새롭게 데뷔시키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지난 2년 사이 음악 산업 전체를 흔든 Mnet ‘프로듀스 101’의 성공 이후, 다른 기획사와 방송사 들이 비슷한 프로그램을 향한 도전에 나섰다. ‘믹스나인’은 ‘프로듀스 101’ 첫 시즌의 연출자인 한동철 PD가 연출한다. 그리고 양현석 대표는 연이어 나오는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의 차별성으로 YG, 보다 정확하게는 자기 자신을 꼽았다. 이것은 지금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프로듀스 101’을 통해 결성된 걸그룹 I.O.I와 보이그룹 워너원은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의 목표가 방송 중의 시청률과 화제성이었다면, ‘프로듀스 101’은 방송 중의 인기가 데뷔 후에도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거대한 프리 데뷔쇼가 된 셈이다. 제작 발표회에서 “빅뱅이나 방탄소년단을 뛰어넘는 팬덤을 ‘믹스나인’을 통해서 역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말한 한동철 PD의 발언은 ‘믹스나인’의 핵심이 어디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데뷔할 아이돌 그룹에는 자본과 기획력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양현석 대표가 YG 엔터테인먼트를 차별성의 근거로 삼은 이유다. ‘프로듀스 101’의 연출자에 JTBC가 방송을 하고, YG 엔터테인먼트가 데뷔 후 자본과 기획력을 댄다. 그래도 성공할지는 알 수 없지만, 어지간한 그룹들보다 성공 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믹스나인’ 첫 회에 등장한 기획사 야마앤핫칙스의 배윤정 대표는 “자금이 부족”하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런 상황의 기획사들에게 ‘프로듀스 101’이나 ’믹스나인’은 자본, 기획, 미디어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더 유닛’ 역시 데뷔 경험이 있었던 아이돌들이 KBS를 통해 다시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데뷔할 기회를 얻는다. ‘더 유닛’과 ‘믹스나인’은 이제 중소, 그중에서도 ‘소’에 해당하는 기획사들이 아이돌 그룹을 직접 제작하기보다 자발적으로 더 큰 기획사와 미디어의 힘을 빌리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인원 아이돌 그룹을 제작하는 것은 다른 가수들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고, 춤, 랩, 노래, 더 나아가서는 연기와 외국어까지 가르쳐야 한다는 점에서 더 오랜 트레이닝 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더 유닛’에 출연한 유나킴과 이수지가 속해 있던 걸그룹 디 아크처럼 데뷔 2개월 만에 해체되는 경우도 있다. ‘더 유닛’과 ‘믹스나인’은 이런 문제들을 드러내면서, 이들에게 오디션 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와 함께 기획사에게 리스크를 줄이자는 신호를 보낸다. 양현석 대표는 “해외 기반이 좋기 때문에 월드 투어를 해볼 수 있는 팀이 됐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운영하는 팀의 해외 진출에 자신이 있으니, 여기에 합류하라는 메시지라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더 유닛’의 한경천 CP와 박지영 PD가 “한 번 어디선가 상처받았던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치유받는 과정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 역시 KBS가 이름조차 알리지 못한 팀에게 큰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두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순간 각각의 기획사와 출연자 들은 사실상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믹스나인’에서 양현석은 한 걸그룹을 보고 심사 중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다 함께 심사를 보던 래퍼 CL에게 “사장님, 좋아하시던데요? 아까랑 너무 다르신 거 아니에요?”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믹스나인’의 첫 번째 오디션은 온전히 양현석 대표의 취향에 따라 결정된다. 아무리 많은 연습생이 참여해도, 그의 판단에 따라 한 명도 선택되지 않을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른바 ‘악마의 편집’에 의해 소속 연습생의 실력이나 이미지가 나쁜 반응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양현석 대표가 곧 프로그램의 정체성인 ‘믹스 나인’에서 이것에 불만을 제기할 수는 없다. 연습생뿐만 아니라 기획사도 더 큰 기획사의 대표에게 오디션을 보게 된 셈이다. 여섯 명의 심사위원이 출연자를 평가하는 ‘더 유닛’은 상대적으로 보다 객관적인 장치를 만들었다. 여섯 명의 심사위원이 투표를 하기 전에도 관객들에게 표를 많이 받으면 바로 합격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돌을 ‘리부트’한다는 프로그램 명분답게 데뷔 경험이 있는 출연자들은 심사를 위해 자신의 노래가 아닌 다른 아이돌들의 히트곡을 부른다. 또한 연예인 미나의 남자친구 류필립처럼 사연이 있는 출연자에게 보다 스포트라이트가 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자신이 활동하며 만든 캐릭터나 소속사의 기획이 반영된 무대는 불가능하다. 기획사로부터 출연자를 확보하는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대다수의 회사들이 이제 연습생을 어느 정도 트레이닝하고 오디션 프로그램에 내보내는 역할에만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이 새로운 환경에서 기획사들은 아직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한다. 제작자 A씨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진 화제성을 무시할 수 없다 보니 애들을 내보내긴 해야 한다.”면서도 “기존에 우리가 가져가려고 했던 방향은 써먹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팀으로서의 정체성을 내세운 기획으로 꾸준히 팬을 늘리려고 했지만, 그의 말대로 “일단은 맥이 끊겼다.”는 것이다. 또한 관계자 B씨는 “참가자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너무 ‘날것’에 가깝다. 우리가 굳이 아이돌들을 내보내려고 하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프로듀스 101’처럼 큰 성공을 거두는 프로그램이라면 출연만으로도 이익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이미지 소비를 한 상황에서 다시 데뷔를 준비해야 한다. “오랫동안 한 팀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기획했는데 제대로 시도도 못 해보고 끝날까 봐 속상하다.”는 아이돌 산업 관계자들의 말이 과장은 아닐 것이다. ‘믹스나인’과 ‘더 유닛’의 등장은 많은 ‘소’ 기획사들에게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제안을 하지만, 이 프로그램들이 정착될수록 작은 회사들은 프로그램 출연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트레이닝-기획-데뷔라는 기존의 방식 대신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으로 성공하느냐 마느냐가 산업의 새로운 시스템으로 등장했다. 직접 할 수 있는 것은 점점 더 줄어들고, 대신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송사와 대형 기획사의 자본과 기획력을 믿어야 한다. 방송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아니라면, 아무리 트레이닝을 시키고 기획을 잘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를 시대가 왔다. 그사이 누군가는 미디어와 결합하거나 ‘프로듀스 101’ 이후의 뉴이스트처럼 영민한 선택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반면 대형 기획사가 아니거나 뉴이스트처럼 되지 못한 많은 회사들은 연습생들을 데뷔조차 시키지 못한 채 사라질 수도 있다. 아이돌 그룹이 음악 산업의 가장 큰 시장으로 자리 잡은 지 20여 년 만에, 가장 큰 변화의 시기가 오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꽤 많은 이들에게는 이전보다 더 힘든 빙하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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