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가이드 서울’은 서울에 무엇을 가져다 줄까

2017.11.24
지난 11월 8일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8’이 발행됐다. 2주가 지난 지금, 빨간 표지 위 미쉐린 마스코트 비벤덤이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는 이 작은 책은 서울 대부분의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미식의 바이블’로 불려온 미쉐린 가이드지만, 실제 이 책이 발행되는 도시는 그리 많지 않다. 2016년에 ‘미쉐린 가이드 서울’ 발행이 결정됐다는 소식에 외식 업계가 술렁였던 이유다. 하지만 약 2년 후 ‘미쉐린 가이드 서울’을 둘러싼 분위기는 과거와는 미묘하게 달라졌다. 쿠킹 매거진 라망의 이정희 편집장은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 대해 “(레스토랑들이) 아무래도 의식을 안 할 수는 없겠지만, 외국처럼 치열하게 노력하거나 경쟁하는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좋은 결과를 받는 것과 직접적인 고객 증가는 큰 상관관계가 없어 보인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2년 연속 별점을 받은 A 셰프는 “작년에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점을 받은 직후 이와 관련한 문의가 늘어나기는 했다. 하지만 원래 11월은 외식업계의 성수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꾸준히 오던 손님들만 오더라. 미쉐린 가이드 때문에 새로운 고객이 유입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셰프들이 느끼기에 국내에서 미식을 즐기는 고객은 어느 정도 한정 돼 있다는 의미다.

물론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난 곳도 있다. 2년 연속 3스타를 받은 한식당 가온은 2016년 발표 직후 4개월간의 예약이 한꺼번에 마감됐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큰 반응을 보인 결과였다. 가온 운영지원팀 최지영 대리는 “기존에는 국내 고객이 대부분이었으나 작년 첫 발표 후 한국인과 외국인의 비중이 각각 7:3 정도로 바뀌었다. 최근에는 외국인 고객의 비중이 조금 더 늘면서 한국인과 외국인 비중이 6:4에 가까워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의 외식 산업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이정희 편집장은 “미쉐린 가이드는 본래 여행자를 위한 책인데, 서울은 아직까지 미식을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도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8’에서 새롭게 별점을 받은 곳은 단 한 곳뿐이고, 그 밖에 선정된 식당들의 면면도 2017년과 크게 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식을 즐기는 한국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크게 흥미를 느끼기 어렵다는 뜻이다.

여기에 평가기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미쉐린 가이드가 평가원과 평가 기준을 절대 공개하지 않는 것은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원칙은 한국 소비자들이 미쉐린 가이드의 평가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레스토랑 컨설턴트 B씨는 “결국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 선정된 식당들이 많은 공감을 얻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미쉐린 가이드는 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평가서지만, 한국 독자들이 그 권위에 동의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A 셰프는 “미쉐린 가이드가 발행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지 회의적이었다. 서울에서 미쉐린이 평가할만한 식당은 지극히 한정적이다”라고 밝혔다. ‘미쉐린 가이드 2018’에서 별점 세 개를 받은 두 곳의 식당은 모두 한식당이고, 그 밖에도 별점을 차지한 대부분의 식당들이 이른바 ‘모던 한식’을 선보이는 곳들이다. 이는 ‘한국에 온 외국인 여행자를 위한 가이드’의 기준에는 적합할지 모르나, 한국 소비자들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미쉐린 가이드가 근본적으로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관성 있는 선택이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지금 한국에서 미쉐린 가이드가 나와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다시 제기된다. 또한 별점을 받은 셰프들 중에는 다른 나라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 많다. 이런 점들로 인해 '미쉐린 스타일'이나 '프랑스 기준'에 맞는 레스토랑에만 별점을 준다는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미쉐린 가이드와 실제 한국의 식문화 사이에 정서적, 경제적 괴리감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미쉐린 가이드 도쿄 2016’에서는 라멘집 ‘츠타’가 별점 한 개를 받아 화제가 됐었다. 이정희 편집장은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일본의 미식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그래서 라멘이 소박하지만 훌륭한 음식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거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식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 등장하는 음식들이 다소 편향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9일 국민의 당 송기석 의원이 지적한 것처럼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서 발견된 오류들도 한국의 음식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게 만든다. 지금 미쉐린 가이드에 대한 반응은 이런 문제들이 겹친 결과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이 처음 발행됐을 때의 기대와 달리 전국에서 미쉐린 스타 식당들을 찾아가는 발길이 이어지거나, 전 세계가 주목하는 스타 셰프가 탄생하는 일은 없었다. 아직 미쉐린 가이드는 한국인들에게 충분한 신뢰를 얻었다고 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러나 작지만 유의미한 변화도 있다. 레스토랑 컨설턴트 B씨는 “어쨌거나 셰프들에게 미쉐린 스타는 꿈이다. 업계에서 미쉐린 평가가 마무리 된다고 알려져 있는 8월경에는 많은 업장들이 인테리어를 바꾸거나 적어도 커트러리라도 바꾸는 등 나름의 투자를 하고 접객에도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전주시에서는 올해 초부터 ‘전주 미쉐린 가이드 도전업체’를 35곳을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아직 ‘미쉐린 가이드 서울’만이 발행되고 있지만, 일본의 미쉐린 가이드 교토나 오사카처럼 지방 도시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이들을 컨설팅하는 전주대학교 문화관광대학 외식산업학과 전효진 교수는 “미스테리 쇼퍼를 파견해 수시로 품질을 개선하고 외국인을 위한 안내교육도 하고 있다. 별점을 받지 못하더라도 ‘빕 구르망(35000원 이하의 합리적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에게 수여)’을 받을 수 있는 식당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당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지만 미쉐린 가이드가 한국의 외식 산업에 일정부분 긍정적인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미쉐린 가이드 하나가 시장의 지형을 바꾸지는 않지만, 미쉐린 가이드가 미식에 대한 새로운 기준과 전반적인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자극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느리고 잘 보이지는 않더라도,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미지제공. 미쉐린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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