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2017│② 방탄소년단부터 김생민까지, 올해의 인물

2017.11.28
82년생 김지영, 우리가 삼킨 빨간약
여성들에게 ‘82년생 김지영’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이 책에는 여성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통계가 수시로 등장하고, 이 수치들 사이에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수모에 가까운 현실이 빠짐없이 기록돼 있다. 가부장제 아래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 태어나 사회에서 필사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지만, 또다시 결혼으로 인해 가부장제에 종속되며 그 존재를 잃어버리고 마는 김지영 씨에 대한 덤덤한 묘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 대한 처절한 르포에 가깝다. 그래서 김지영 씨의 생애를 따라 가는 과정은 ‘그때 나에게 벌어졌던 일’의 실체를 아프게 깨달아 가는 작업이기도 하다. 2016년 10월 1쇄가 발행되었던 이 책은 약 1년 후 38쇄를 돌파했고, 2017년 한 해 동안 주요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자리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결코 읽기 전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강형욱, 인간훈련사
반려견 행동전문가 강형욱 훈련사의 별명은 ‘개통령’이다. 하지만 그는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통해 문제행동을 하는 반려견들의 행동을 교정하는 차원을 넘어, 오히려 인간의 행동을 바꾼다. 인간처럼 언어와 사고체계를 가진 개의 문제행동은 환경과 견주와의 관계에서 비롯되고,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은 사실 개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다. 강형욱의 조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개의 언어를 이해하고 배우게 되었고, 이것은 개뿐만 아니라 우리가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 9월 발생한 보이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최시원이 기르던 프렌치 불독이 유명 한식당 한일관 대표를 사망하게 만들었다는 논란이 일어난 이후, 경기도청은 15kg 이상 반려견과 외출시 입마개 착용을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조례를 개정하려 했다. 그러나 강형욱은 “15㎏ 이상의 반려견이면 코커스패니얼이나 비글 정도도 근접할 텐데, 모두 입마개를 하라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강아지를 친구라고 생각하면서 동물하고 같이 살겠다고 발상이 아니라 그들은 혐오스러운데 우리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를 바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이라 말했고, 경기도청은 이 의견을 수용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강형욱 같은 전문가의 등장과 그런 전문가의 의견을 수용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가 더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김생민, 통장 요정의 안티 욜로
자신의 삶을 즐기고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욜로’와 ‘영포티’가 유행하는 사이 다른 한 편에서는 김생민이 ‘국민 통장 요정’으로 부상했다. 리포터 활동을 하는 것 외에는 그다지 눈에 띄는 활동을 보이지 않았던 그는 꾸준히 돈을 모아 대출을 끼고 집을 마련했고, 다시 절약 해서 돈을 모았다. 그의 삶처럼 그의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은 TV밖에서 시작, KBS에서 15분, 8회 자투리 편성이 되다 75분 정규 편성을 받기에 이르렀다. 꾸준히 일하고 꾸준히 모아 자신의 이름을 단 프로그램까지 생겼다. “월세는 전세로, 전세는 내 집 마련을 위해 저축을 해서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자”는 그의 말이 실현된 것이다. 물론 지금의 젊은 세대도 김생민처럼 어느 정도의 취향을 포기해서 돈을 모아 집을 사는 전략이 적용가능한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여기 한 성공사례가 있고, 누군가는 ‘비전’을 제공한다. 그런 삶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조금 더 아끼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슬프지만, 사실이다. 

나영석, tvN의 마이다스
tvN ‘신서유기’, ‘신혼일기’, ‘윤식당’, ‘알쓸신잡’, ‘삼시세끼’ 등 올해도 나영석PD의 예능 프로그램은 거침없이 달렸다. 시즌제로 나오는 ‘삼시세끼’와 ‘신서유기’ 외에도 구혜선과 안재현 부부가 시골집에서 집안일을 하며 밥을 지어먹는 ‘신혼일기’, 배우 윤여정이 해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윤식당’, 그리고 국내를 여행하며 다양한 인문학, 과학, 음식 등 지역에 관한 다양한 관점에 대해 이야기는 ‘알쓸신잡’ 등 그의 예능은 점점 영역을 넓혀나가며 성공까지 했다. 그는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을 연출하던 때처럼 여행과 음식,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의 관계라는 소재를 반복하지만, 그것을 출연자와 시대상에 어울리게 효과적으로 변주한다. 아예 새로운 것이 아니면 자기 복제가 반복되곤 하는 예능계에서, 나영석 PD는 천천히 발전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이쯤되면 ‘나영석류’의 탄생이라고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문소리, 여배우의 현재
문소리는 “영화에 대한 사랑은 깊으나 표현할 길을 찾지 못해서”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석사 공부를 했고, 졸업 작품으로 ‘여배우는 오늘도’를 만들었다. 감독 문소리, 각본 문소리, 주연 문소리인 ‘여배우는 오늘도’에서 ‘여배우’ 문소리는 ‘여배우’로 며느리, 딸, 엄마, 아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바쁘다. 그러나 맡고 싶은 배역은 나이들었다는 이유로 시나리오조차 오지 않고, 1년에 겨우 한 작품 하나 할까 말까다. 문소리는 ‘여배우는 오늘도’의 내용이 “픽션이다”라고 말했지만, 현실의 여성 배우들이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경력단절과 유리천장에 부딪힌 현실을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다양한 장르의 남성 역할이 넘쳐나지만, 여성 배우들은 오히려 더욱 자리를 찾기 어려워졌고, 문소리는 영화 속에서 “너 한국의 메릴 스트립해”라는 말에 답답함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 밖의 문소리는 스스로 길을 찾아 자신이 처한 환경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한국 여성 영화인의 중요한 한 걸음이다.

방탄소년단, 끝없이 달리는 소년들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은 올해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을 수상했고, 앨범 ‘Love yourself’는 ‘빌보드 200’차트 7위에 올랐으며, 최근에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s) 무대에 섰다. 이 시상식에서 체인스모커즈는 방탄소년단에 대해 “이들을 그저 인터내셔널 스타라고 소개하는 것은 부족하다”라고 소개했고, 무대에 방탄 소년단이 등장하자 미국의 팬들은 그들을 상징하는 응원봉을 흔들며 비명을 질렀다. K-POP 보이그룹에게 기적 같은 일이 연달아 벌어졌고, 미디어에서는 그들의 성공 원인을 분석한다. 데뷔 당시에는 그리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지는 않았던 팀이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며 정상의 자리에 올랐고, 좀처럼 뚫지 못하리라 생각된 미국 시장까지 나아갔다. 공교롭게도 그들의 새 앨범 타이틀 곡 ‘DNA’은 사랑을 우주에 빗대 노래했다. 끝없이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는 아이돌 그룹. 그들은 정말 주인공이 ‘천하제일’이 되는 만화를 실사로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유, 스물 다섯의 자아
올해 4월 아이유가 발표한 정규 앨범 ‘Palette’의 동명의 타이틀 곡에는 25살 아이유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상하게도 요즘엔 그냥 쉬운 게 좋아’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이 곡에는 사소하고도 단편적이지만, 아이유라는 인물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들이 충분히 담겨있다. 2015년 발표했던 앨범 ‘CHAT-SHIRE’에 담긴 ‘스물셋’에서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지던 아이유는 2년 만에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이라는 답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같은 해 여름 JTBC ‘효리네 민박’을 통해 아이유가 아닌 이지은으로서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들려줬다. 이제 아이유는 자신의 다양한 모습들을 편안하게 보여주고, 그것을 자신의 음악으로 설명해낸다. 그리고 사람들은 정말 팔레트처럼 화사하거나 어두운 색을 모두 가진 아이유를 좀 더 이해하게 됐다. 음악성과 대중성, 그리고 메시지라는 모든 측면에서 지금 한국의 가장 대표적인 20대 뮤지션이 된 것이다. 

알파고 제로, 고스트 바둑왕
작년 이세돌과 AI 알파고의 바둑대결은 시작에 불과했다. 알파고는 인간의 바둑을 배우면서 바둑을 익혔지만, 알파고의 새로운 버전인 알파고 제로는 바둑의 기본 원리로만 바둑을 익혔다. 그리고 중국의 바둑기사 커제와의 대결에서 모두 승리했다. 알파고 제로와 대결 중 흘린 커제의 눈물은 이 AI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초라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 사건인 동시에, AI로 인해 바둑이 아예 새로운 경지에 접어들 수 있다는 발견이기도 했다. 그리고 알파고 제로와 함께 AI는 우리 주변에 바짝 다가왔다. IT, 통신 업체에서 인공지능 스피커를 내놓기 시작했고, 많은 업체들이 다양한 정보를 모으며 인간의 행동 패턴을 AI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정말 우리에게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어쩌면 바둑처럼, 인간이 상상한 영역 바깥에 이를지도 모를 일이다.

유시민, 어용지식인 선언 
지난 5월 대선 직전, ‘한겨레TV’‘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한 유시민은 자신을 ‘진보 어용지식인’이라고 명명했다. 새로운 정권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하기 보다는 진보 진영의 지식인으로서 남겠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는 이후 JTBC ‘썰전’ 외에도 나영석 PD가 연출한 tvN ‘알쓸신잡’ 시즌 1, 2에 모두 출연하면서 오히려 더욱 활동범위를 넓혔다. 그는 스스로를 ‘진보 어용지식인’이라 명명했지만, 오히려 2017년은 정치적 입장을 명확히 말하는 사람들이 더욱 주목 받고 있다. 또한 ‘알쓸신잡’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발길이 끊어진 진도대교에 대해 “이제 진도도 건강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 진도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기피해야 할 이유도 없다”고 말한 것처럼, TV에서도 정치와 생활과 문화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정치가 사람들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지금, 유시민은 ‘어용 지식인’인 동시에 방송사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유형의 방송인이 될 수 있었다.

99년생들, 올해의 승리자
1999년생의 열아홉 인생은 다사다난했다. 세기말 분위기에 뒤숭숭하던 1999년에 태어나 초등학교에 다닐 즈음에는 전국적으로 신종플루가 유행했고, 사춘기에 접어든 뒤 세월호 참사를 목격했다. 그리고 2016년에는 유래 없는 탄핵정국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으며 10대로서 보내는 마지막 해인 2017년에는 수능 하루전날 발생한 지진으로 수능시험이 일주일 연기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기도 했고, 세월호 참사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는 집회에 교복을 입고 나서기도 했다. 어른들로서는 특히나 미안할 수 밖에 없었던 10대들이었다. 그리고 수능 연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소수를 위해 다수가 자신의 불편을 감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23일, 수많은 걱정과 불안을 뒤로 하고 대학에 들어가기를 희망하는 1999년생들이 10대의 또다른 관문을 넘어섰다. 그들의 20대는 10대보다 찬란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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