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램지가 ‘램지형’이 됐을때

2017.11.30
지난 9월 말 오비맥주는 고든램지가 출연한 카스 광고를 공개했다. 독설가로 유명한 고든램지가 카스 맥주를 마시고 “Bloody Fresh(끝내주게 신선하다)”를 외치는 모습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SNS였다. 사람들은 고든램지가 카스 광고에 출연한 이유를 궁금해 했고 ‘고든램지가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 한다더라’, ‘가족들이 한국에 인질로 잡혀 있을 거다’, ‘고든램지가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가 됐다’ 등 온갖 추측과 농담을 하며 카스 광고를 밈(Meme)으로 소비했다. 세계적인 셰프인 그가 한국 맥주를 맛있다고 한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고든 램지와 카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카스 프로모션 차 11월 17일 내한한 고든램지는 2박 3일 동안 웬만한 스타보다 더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광장시장에서 한국음식을 맛보았고, 홍대에서는 젊은이들로 구성된 프레시 원정대와 함께 삼겹살, 치킨에 맥주를 즐겼다. SBS ‘본격 연예 한밤’, JTBC ‘냉장고를 부탁해’, 네이버 TV ‘양세형의 숏터뷰’를 녹화하기도 했다. 이를 알게 된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형이 거기서 왜 나와”였다.

고든램지는 미쉐린 3스타를 가장 오랫동안 보유하고 있는 셰프이자 자신의 이름을 건 다양한 리얼리티 쇼를 성공적으로 이끈 엔터테이너기도 하다. 2005년에 방영을 시작한 ‘고든램지의 헬’s 키친’은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사랑받았다. 음식을 맛본 고든램지의 독설을 그대로 담아낸 이 방송들은 유튜브에서 초반 방영분까지도 마치 리액션 비디오처럼 소비되고 있다. ‘젊음의 맥주’를 표방한다는 카스에서 그를 섭외한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오비맥주 홍보팀 이은아 차장은 고든램지에 대해 “내 또래만 해도 고든램지를 전혀 모른다. 그런데 같이 다녀보니 젊은이들은 거의 다 그를 알아보더라. 한국에서는 먹방과 쿡방이 인기를 끌고 있고 셰프가 되기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많다보니 인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오비맥주는 고든램지와 함께 하는 ‘프레시 원정대'를 모집하면서 SNS에 인증샷을 올리는 방식을 선택했고, 모집된 참가자의 대부분은 20대였다. 더 많은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대신 웹 예능인 ‘양세형의 숏터뷰’를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지난 18일 기자간담회에서 고든램지의 발언은 그가 이러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창의적인 독설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묻는 질문에 “요즘 셰프의 역할은 내가 요리를 처음 시작했던 25년 전과는 많이 바뀐 듯하다. 데이비드 챙이나 로이 최 등은 영화에 출연해서 정말 영화 같은 음식을 만들었다. 이제 셰프들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처럼 여러 방면에 능통한 셰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실제로 고든램지는 SNS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데,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워터사이드 인이 음식 사진 촬영을 금지하자 “손님이 사진을 찍는 것은 무료로 홍보를 해주는 셈이다. 사진 촬영을 금지한 셰프는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늙은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팬들이 보내는 음식 사진을 보내면 TV와 다를 것 없는 독설을 날리기도 한다. 이런 그의 모습은 셰프테이너를 넘어서 SNS의 영향력을 제대로 활용하는 인플루엔서에 가까워 보인다. 그 결과 이 50대의 영국 셰프는 한국에서 ‘램지형’으로 불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램지형’을 내세운 마케팅은 예상대로 SNS를 통해 영향력을 발휘했다. 11월 초 ‘뉴스타파’의 유튜브 계정에서는 ‘고든 램지는 왜 카스가 맛있다고 했을까?’라는 주제의 ‘뉴스포차 3분 요리’를 방송했고, 이 방송에 출연한 맥주 애호가들은 ‘평소 고든램지는 아메리칸 페일 라거를 좋아한다. 그래서 카스가 진짜 맛있다고 느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 맥주는 맛없지 않다’는 골자의 기사가 퍼지기 시작했고, 고든램지가 기자 간담회에서 ‘2012년 한국 맥주가 맛이 없다는 기사를 쓴 영국 특파원의 엉덩이를 차버리겠다’고 말한 후에는 그의 의견을 반박하는 기사들이 다시 한 번 쏟아졌다. ‘한국 맥주가 진짜 맛있는지’ 진위 여부를 떠나, 한국의 맥주 맛과 맛있는 맥주는 무엇인가에 대한 담론이 형성된 것이다. 이은아 차장은 광고 의도에 대해 “애초에 맥주 맛에는 우열이 없다. 한국 맥주가 무조건 맛이 없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취향에 맞는 맥주를 마시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카스는 한국 맥주와는 가장 먼 거리에 있을 것 같은 스타 셰프이자 독설가를 캐스팅해 SNS를 기반으로 기존의 인식을 바꿀 틈을 만들어냈다. ‘인플루엔서’가 무엇인지, 어떻게 활용하는지 제대로 보여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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