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세종 “모든 역할에는 각자의 사연이 있다”

2017.12.04
배우 양세종을 소개하는 데에 다른 복잡한 설명은 필요치 않을지 모른다. 그는 최근 SBS ‘사랑의 온도’에서 셰프 온정선을 연기하며 요즘 드물게 데뷔 2년 차에 빠르게 주목받고 있다. 그리고 작품이 끝난 뒤, 그는 자신을 화제의 주인공으로 만든 배역이 아닌 자기 자신에 관한 인터뷰를 했다.

SBS ‘사랑의 온도’가 끝나고 일정이 더 바빠진 거 같다.

양세종
: 나에게 드라촬영은 일정이 아니다. 그때는 ‘아, 촬영하러 가네.’라는 생각을 갖고 움직인다기보다 일상의 한 부분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막상 작품 준비할 때는 힘들지만, 촬영장에 딱 도착하는 순간부터 편해진다. 온정선이라는 인물로 3개월 동안 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전작들과 달리 평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나.
양세종
: 완전히 현실적이다. 다른 작품들은 좀 더 극적인 면이 많았는데, 이 작품에서는 막 극적인 부분은 없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끌렸다. “어, 이거 뭐지? 완전 현실인데?” 이러면서. 박정우(김재욱) 형도 처음 나와 둘이 만나는 장면에서 “너무 마음에 든다.” “놀리는 거냐.” “놀리는 거 아니다.” 이런 식으로 대화가 막 오간다. 충분히 현실에 있을 법한 대화다. 한편으로는 처음 본 사이에 뜬금없이 “사귈래요?”라는 말을 내뱉는 것처럼, 말이 되는 듯 안 되는 듯한 상황도 많았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실제 현실에서는 이것보다 더 아이러니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온정선은 성별을 알아채기 어려운 이름이었다. 이현수(서현진)라는 이름도 마찬가지고.
양세종
: 중성적인 이름이다. 처음 온정선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는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여러 가지 의미로 마음에 들었다. 가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지닌 이중적인 면을 보여주게 된다. 이 복잡한 감정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거나,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느낌만으로 알아채야 할 때도 있다. 그게 ‘온’이라는 글자에 담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소위 ‘느낌적인 느낌’이라고 하는 건데(웃음), 자연스럽게 캐릭터의 느낌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 캐릭터에 딱 맞는 이름이었다.

분석보다는 자연스럽게 상황을 느끼는 방식을 선호하나.
양세종
: 그렇다. 물론 학교 교수님들 중에는 분노, 서러움, 서글픔처럼 구체적인 단어를 찾으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신다. 반대로 “그 느낌 좋아.”라고 설명하시는 분도 계시고. 나는 느낌을 중시하는 편에 속한다. 평소에 사람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첫인상에서 오는 느낌을 굉장히 중시하는 편이다. 그 단어가 좋다. ‘느낌’이라는 단어가.

온정선이란 인물은 감정적으로 행동하기도 하지만, 이현수의 직업적인 부분을 이성적으로 배려하고, 아닌 것은 확실히 끊어내는 냉철한 면도 갖고 있었다.
양세종
: 요약하면 네 가지 정도의 상황이 온정선에게 주어졌다. 첫째가 가정사, 둘째가 한발 더 나아가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감정, 셋째가 정우 형과 이현수, 온정선 이 셋의 관계에서 오는 여러 가지 상황과 감정들, 마지막으로 ‘굿스프’ 생계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들. 온정선이라는 사람 안에 이 모든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면을 보여줘야 했다. 그런데 사실상 ‘굿스프’의 상황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세 가지 상황에서 그는 주변인들 중 누구에게도 쉽게 자기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배우 입장에서 이런 측면을 모두 안고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대본이 꼼꼼하고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끔 대본이 완성되어 있었다. 막막할 때는 대본만 계속 봐도 해답이 나왔을 정도다.

온정선을 제외하고, ‘굿스프’ 안에서 인간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가 있나.
양세종
: 피오가 맡았던 막내 강민호다. 사실은 ‘굿스프’ 촬영 때마다 피오가 내가 치는 애드립을 너무 잘 받아주어서 그렇다. (웃음) 맨 마지막에 에필로그로 나간 피오와의 애드립은 너무 웃겼는지 촬영장에 있던 모두가 웃음이 터져서 한참 진도를 못 나갔을 정도다. 물론 방송에 나간 것은 별로 없다.

애드립을 많이 했다니, 의외인데.
양세종
: 정우 형과도 애드립이 많이 오갔다. 씬이 거의 마무리되었을 때, 충동적인 애드립을 한 적도 있다. 작품 후반부에 정우 형 집에 스파게티를 해주러 가는 장면이 있다. “형이 면 많이 볶는 거 좋아해서 많이 볶았어.”라고 한 다음에 “포크 어딨지?” 했는데, 정우 형이 자기 집인데 진짜 포크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거다. (웃음) 형이 “그냥 손으로 먹자.” 하더라. 최원준(심원섭) 형과도 기억에 남는 애드립이 있다. 사실 이건 내가 자책해야 할 일인데…. 몸 관리를 잘 못 해서 살짝 감기에 걸린 적이 있다. 형이 “아, 술 마시니까 기분 좋다.” 이러기에 “아, 그러게. 기분 좋다. 근데 감기 걸린 것 같아.” 하면서 슬쩍 애드립을 넣었더니 형도 받아쳐 줬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 감독님이 굉장히 유연하게 넘겨주셨다.

온정선처럼 매사에 고민이 많은 사람일 줄 알았다. (웃음)
양세종
: 비슷한 듯 다르다. 온정선처럼 확실히 선을 긋는 관계도 있지만,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계속 갈등하고 고민하다가 내 이야기를 말하는 편은 아니다. 연인이든 친구든, 회사분이든 간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치부까지 다 들춰내는 성격이다. 나중에 관계가 틀어지더라도 이것저것 얘기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 하지만 그런 만큼 애초에 인간관계를 맺는 것에는 굉장히 신중한 편이다. 사랑에 빠져도 상대방에게 나의 단점까지 다 이야기하고, 오랫동안 만나본 뒤에 만남을 결정한다. 만약 내가 만나자고 했는데, 혹시 상대방 쪽에서 “시간이 안 될 것 같다”고 거절의 표시를 보이면 바로 깨끗이 물러난다.

말할 때 무척 솔직하지만, 쓰는 단어 하나하나가 유독 신중하다는 느낌이 든다.

양세종
: 내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거짓말을 안 한다. 그런데 나에게 오는 질문에 다른 사람이 엮여 있다면 더 신중해져야 한다. 만약에 어떤 기자분에게 답할 수 없을 것 같은 질문을 받으면, 솔직하게 “노코멘트”라고 얘기한다. 그 사람의 프라이버시가 있고, 그 사람의 인생을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니 내가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설명하는 거다.

연기할 때도 그런 태도가 중요하게 작용하겠다.
양세종
: 내가 맡은 역할 외에 다른 역할들에도 제각기 사연이 있지 않나. 모든 역할에는 각자의 사연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도 사실 사람마다 결여된 부분이 있는데, 그걸 자신이 인정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인정하면 그 부분을 내 안에서 잘 들춰내고, 사람들에게 잘 표현할 수 있는 것 같고. 특히 나처럼 내가 맡은 배역과 ‘양세종’이란 사람 사이를 제대로 분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연기를 할 때도 본래의 모습이 자연스레 배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화가 났을 때 억지로 참거나 “괜찮아요.”라는 말로 자신을 속이면 안 된다.

너무 솔직하면 주변에서 안 좋은 소리를 들을 수도 있지 않나.
양세종
: 맞다. 하지만 연기를 해도 진심으로 해야 하는 건데, 그러려면 나 자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솔직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조금 안 좋은 소리를 듣더라도, 최대한 있는 그대로 행동하려 노력한다. 손윗사람이라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시면 “왜 그게 내 탓이 되는 거냐. 잘 이해가 안 간다.”고 망설임 없이 이야기하는 편이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솔직하게 살고 싶다.

요즘은 무슨 고민이 드나.
양세종
: 나는 어디 있지? 나 양세종은 어디 갔지? 나 누구였지? 이런 것들. 오해하시면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쉬는 기간이 거의 없이 작품을 해오면서 원래 내 모습이 어땠는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솔직히 말하자면, OCN ‘듀얼’ 때부터 ‘사랑의 온도’ 끝날 때까지 연락을 해오는 사람이 없었다. SBS ‘낭만닥터 김사부’ 때는 작품 끝나고 연락하면 “고생했네” 하면서 받아주는 분들이 계셨는데, 요즘은 아예 아무도 연락을 안 해온다. (웃음) ‘얘는 연락해도 안 받는 애’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다른 방향으로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고. 하지만 내가 그런 상황을 만든 거고, 내가 선택한 거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절대 못 하는 성격인 것 같다.
양세종
: 그렇다. 친구들끼리 모인 자리에 놀러 가도 딱 한 명이 얘기한 것밖에는 기억이 안 날 정도다. 솔직히 힘들 때도 있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촬영장 안에서와 촬영장 밖으로 나왔을 때가 도저히 분리가 안 된다. 데뷔 초에는 이런 스스로에게 ‘앞으로 양세종 너 어떻게 할래?’라고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지만, 마인드를 바꿔보려고 했다가 다음 날 모든 씬을 망쳤다. 성격인 것 같다.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으니 지금처럼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20대 배우들이 드문 가운데, 자리를 잘 잡아가고 있다.
양세종
: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여전히 작품의 성격에 대해서는 제한을 두지 않는다. 이러이러한 캐릭터를 너무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없다.

데뷔 연차에 비해 굉장히 다양한 역할을 해서 그런 것 같다.
양세종
: 그럴 수도 있다. 감사하게도 그동안 좋은 선배님들을 많이 만났고, 한 작품에서 두 개의 역을 소화해야 하는 ‘듀얼’ 같은 작품도 했다. 거기서는 심지어 두 캐릭터가 극과 극이어서 더 변화의 폭이 컸다. 하지만 내가 90세까지 살아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물들을 모두 연기할 수 없지 않나. 그러니 될 수 있는 대로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다.

이 시기에 반드시 해보고 싶은 게 있나.
양세종
: 오랜 시간 동안,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 사실 원래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위로는 편안한 복장을 입고, 아이폰 번들 이어폰을 끼고, 시간과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마음에 들 때까지 걷는 것뿐이었다. 멍할 때도 있고, 무언가를 집요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걸어가면서 뭔가를 보고 마음을 채운다거나, 반대로 덜어내거나 그때그때 다르다. 요즘은 그레고리 포터의 음악을 듣는다. 가사와 멜로디의 정서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지만, 음악 자체가 밝아서 기분을 좋게 해준다. 그 모순된 느낌이 좋기도 하고.

좋은 배우들과 연기했던 만큼, 그들에게 좋은 파트너가 되고 싶은 욕심도 있겠다.
양세종
: 내가 상대방에게 좋은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해와 소통, 배려라는 개념을 모두 포괄하는 단어가 ‘사랑’ 아닐까 싶다. 함께 연기한 배우분들뿐만 아니라 현장 스태프분들께도 진심으로 애정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의 온도’라는 제목도 결국엔 모든 주변인들과의 사랑 이야기 아닌가. 꼭 현수와의 사랑뿐만이 아니라, 모든 관계를 사랑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에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양세종이 사람다운 사람이고 싶어서 다짐하는 거다.

사람다운 사람인 온정선은 현실에 있는 남자일까. (웃음)
양세종: 충분히 현실에 있다. 오히려 이현수 같은 인물이 없다고 생각한다. 현수는 굉장히 뜬금없는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스스로 극복하려고 한다. 그런 사람은 성별을 떠나서 정말 드물다. 심지어 정우 형 같은 분은 내 주변에도 있는데, 그분도 결혼을 안 했다. 일부러 안 한 것 같지만. (웃음)

혹시 양세종은?
양세종
: 아까 말했다. 나는 어디 갔지? 찾아야 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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