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여성캐릭터│① 소녀도 꽃도 아닌

2017.12.05
일본 위안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소녀상’이다. 이 ‘소녀상’의 이미지는 한국 대중문화가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과도 연결된다. 순결한 어린 여성의 피해서사. 일본 위안군의 피해를 다룬 영화들은 일본 위안부가 일본군에게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당했는지 알리기 위해서 폭력을 자세히 묘사했고, 이것은 폭력의 잔혹성을 고발하는 영화가 그 폭력을 소비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생존한 위안부 피해여성들은 소녀가 아니고, 폭력의 피해자인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서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온 이들이다. 올해 개봉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가 반가웠던 이유다. 이 작품의 나옥분(나문희)을 통해 위안부는 우리 주변에서 평범하게 살아 숨 쉬는 할머니의 얼굴로 대중에게 다가올 수 있었다.

‘아이 캔 스피크’의 관객수는 320만 명으로, 손익분기점 180만 명을 넘었다. 나이 든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뒀고, 나문희는 제38회 청룡영화상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이렇게 늙은 나문희에게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중략) 나의 친구들, 할머니들 제가 이렇게 상 받았어요. 열심히 해서 그 자리에서 상 받으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지금 한국 대중문화 속 여성의 현실과 변화를 동시에 담고 있다. 한국 영화는 다수의 남성 주인공이 캐스팅 되어 극을 이끌어 가는 영화들이 많이 제작된다. 여성 배우들은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나지 않는 역할을 맡거나, 노출 수위가 매우 높은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문소리는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석사 졸업 작품으로 감독, 각본, 연기 모두를 맡은 ‘여배우는 오늘도’에서 1년에 고작 작품 하나 들어올까 말까하는 상황과 자신의 외모를 평가하는 사람들, 그리고 ‘독박 효도’에 대한 어려움을 담아내기도 했다.

2017년은 이런 현실이 보다 두드러져 보이는 동시에 그에 대한 변화가 시도된 한 해였다. 페미니즘이 지난 몇 년 사이 이슈가 된 이후 수동적인 여성 캐릭터에 대한 비판과 함께 ‘악녀’나 ‘미옥’처럼 여성 캐릭터가 중심이 된 액션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악녀’의 숙희(김옥빈)는 이성애와 모성애에 대한 열망으로 만들어진 여전사 캐릭터였고, ‘미옥’은 주인공이 미옥/현정(김혜수)이라는 여성으로 성별만 바뀐 남성 느와르에서 머물렀다. 하지만 이전과 다른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은 대중문화의 영역 곳곳에서 꾸준히 만들어졌다. tvN ‘비밀의 숲’에서 황시목 검사(조승우)와 함께 사건을 풀어나가는 한여진 형사(배두나)처럼 자신의 직업윤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거나, KBS ‘아버지가 이상해’의 변해영(이유리)처럼 전통적인 가족제도에 대해 자신의 논리로 의문을 제기하는 캐릭터가 등장했다. ‘가시나’의 선미는 무대에서 ‘꽃’으로 비유되는 여성의 이미지를 파괴했고, 레드벨벳은 사랑스러운 애교를 보여주는 걸그룹들 사이에서 ‘피카부’를 통해 스스로를 ‘여우’라고 칭했다. 이들은 모두 각종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다. ‘아이 캔 스피크’가 그러하듯, 최근 볼 수 없었던 여성 캐릭터들은 대중의 호응을 받기 시작했다. 다층적이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시장에서의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이기도 할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와 직업윤리에 대해 고민하며 열심히 일하는 여성 형사와 좀처럼 애교를 부리지 않는 걸 그룹이 주목받았다. 그렇다면, 2018년은 올해와 또 다른 작품들이 나와야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



목록

SPECIAL

image 2017년의 시위

MAGAZINE

  • imageVol.171
  • imageVol.170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