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시위│① 광장에 모인 뒤, 그 다음

2017.12.12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헌법재판소장 대행권한 이정미 재판관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주문은 2017년의 가장 중요한 문장이었을 것이다. 2016년 10월 29일부터 2017년 3월 10일까지 133일에 걸쳐 매주 토요일 20여 차례 개최되어 최대 232만 명, 연인원 1,600만 명이 모인 대규모 촛불집회는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던 부패한 권력자도 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 2008년 촛불시위가 시민들에게 국가의 폭력 앞에서 무력하게 주저앉는 경험으로 남았다면,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이어진 시위는 시민으로서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100일 간 집회 시위는 서울에서만 700건이 넘었다. (2017년도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 서울지방경찰청) 촛불시위로 높아진 시민의 자기효능감, 혹은 정치참여에 대한 욕구는 정권 교체와 함께 폭발했다. 그리고 역사에 죄를 지은 독재자를 끌어내린 뒤 시민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낸다. 누군가는 노조 문제를, 누군가는 소수자의 이야기를, 누군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근에는 대한 의사협회가 ‘문재인 케어’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각자의 입장이 있고, 그 목소리는 시위를 통해 확대되며, 여론은 이 목소리들에 반응한다. 수많은 목소리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하고, 부딪히는 모습은 문재인 정부 이후의 한국을 보여주는 한가지 현상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들이 ‘간접 민주주의’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정부의 청책도 직접 제안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국민께서 요구하고 있다”며 2017년 8월 17일 시작한 청와대 국민청원 프로그램을 시작하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프로그램에는 100일 만에 5만 6,000건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문재인 정부는 특정 주제의 청원이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 참여하면 각 부처 장관, 대통령 수석 비서관, 특별 보좌관 등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들이 답변을 내놓도록 하고 있다. 내 의견 하나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면 정부로부터 답변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문제도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정부가 입장을 밝히기에는 지극히 사적인 청원들이 올라오는가 하면, 정부가 답변은 할 수 있을지라도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낙태죄 폐지와 동시에 '미프진'(자연 유산 유도제)의 합법화 요구 청원의 경우 이를 반영할 수 있는 것은 입법기관인 국회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그들의 권한 안에서 움직일 수는 있다. 시민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내는 경험을 하는 동시에,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과정과 다양한 입장의 조율이 필요한지 함께 배우고 있다. 지금 한국은 정체 돼 왔던 민주주의와 시민의 정치 참여를 매우 빠르게 학습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 중심에는 각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인 시위가 있다.

물론 시위와 청원으로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는다. 또한 바뀌어서도 안 된다.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만으로 정책이 결정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20만명이 청원을 했다 해서 그것이 반드시 옳은 것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여론과 정책이 단지 숫자의 많고 적음으로만 결정된다면 다수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는 묻힐 수 밖에 없다. 지금 한국에서 대다수의 시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것은 국민이 촛불시위로 권력이 누구로부터 나왔는지 보여줬다는 것,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같은 권력자가 다시는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 뿐이다. 이 아주 기본적인 토대 위에서 무엇을 만들어갈 것인지는 문재인 정부, 또는 그 다음 정부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숙제가 될 것이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청와대까지 가는 길은 텅 비어있고, 사람들은 그 사이에 무엇이 있어야하는지 아직 모른다. 다만 광장으로 나와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제 그 목소리를 서로 어떻게 말하고 들을 것인지 경험해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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