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TV를 보세요?

2017.12.13
오랜 시간 동안 TV를 켠다는 것은 TV를 본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또한 TV를 본다는 것은 지상파나 케이블 TV 채널을 시청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넷플릭스를 볼 수도 있다. 애플TV나 크롬캐스트, 또는 스마트TV를 사용하면 유튜브를 비롯한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를 활용할 수도 있다. 반면 TV를 켜지 않아도 지상파나 케이블 TV 채널을 볼 수 있다. 모바일 기기에 티빙이나 푹 등의 앱을 깔아 국내 프로그램을 보거나, 네이버에서 원하는 프로그램의 몇 분짜리 클립만 보는 것은 이미 많은 시청 패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TV를 켜도 과거처럼 시청하지 않을 수도 있고, TV를 켜지 않아도 TV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TV의 의미는 과거와 매우 달라지고 있다.

2017년은 이런 변화를 보다 피부에 와 닿게 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는 극장과 넷플릭스에서 동시에 개봉했다. 앞으로는 김은희 작가의 신작, 유병재의 스탠드업 코미디도 방영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언제든지 원하는 때에 보게 될 것이다. 5년 전 MBC 파업으로 ‘무한도전’이 결방했을 때는 사회적인 이슈였다. 반면 올해에는 MBC와 KBS가 파업을 했지만, 과거만큼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의 공백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무한도전’이나 KBS ‘해피선데이’의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볼 수 없다면 지금은 KBS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된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을 선택할 수도 있다.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2로부터 시작된 어떤 현상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 서바이벌 오디션의 시청자들은 SNS를 중심으로 과거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출연자들의 각종 정보와 새로운 콘텐츠를 소비했고, 이런 흐름은 워너원 등 프로그램과 관련된 보이그룹에게 이어지고 있다. ‘프로듀스 101’ 시즌 2는 끝났지만, 이들의 팬은 SNS를 통해 각종 자료와 네이버 V앱과 같은 실시간 방송 등을 쉴 새 없이 즐길 수 있다. 워너원의 인기는 TV 예능 프로그램이 대중의 새로운 시청 방식과 맞물렸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여줬다. TV를 꺼도, 더 나아가 TV 프로그램을 보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워너원을 비롯해 방탄소년단, EXO 등 올 한 해 보이그룹들이 역사적이라고 할 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워너원이 등장하기 전부터 아이돌 그룹, 특히 보이그룹은 SNS와 V앱 등을 중심으로 활발한 소비가 이뤄지고 있었다. 방탄소년단이 어떻게 미국에서까지 팬덤을 만들었는지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영화와 드라마는 과거만큼의 화제성을 얻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런 과정 속에서 시청률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과거만큼의 위상은 사라진 지 오래다. ‘프로듀스 101’ 시즌 2의 최고 시청률은 5.2%(닐슨코리아 기준)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인기는 이 숫자로만 설명할 수 없다. 많은 아이돌 팬덤이 각자 이용하는 커뮤니티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을 언급하는 양, 이른바 ‘화력’을 중요하게 여긴 것도 오래된 일이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는 인터넷의 빅데이터를 수집해 아이돌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관한 브랜드평판 지수를 발표하고 있기도 하다. 인터넷에서의 언급량과 여론은 이미 시청률이나 차트 성적만큼이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현재를 볼 수 있는 평가 기준이 됐다.

SNS가 새로운 TV이자 매체이며 시청률이 됐고, 당연히 새로운 스타도 탄생시킨다. 박막례 할머니가 손녀와 함께 만든 유튜브 영상은 SNS를 통해 퍼지고, 유명인이 된 박막례 할머니는 다시 유튜브를 통해 퍼지는 광고를 찍는다. ‘소셜 인플루언서’라는 단어는 MBC ‘나 혼자 산다’ 같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아도, 정기적으로 영상 콘텐츠를 찍거나 하지 않아도 SNS에서는 스타가 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언급될 수만 있다면 ‘소셜 인플루언서’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연예인들은 SNS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걸그룹 f(x)의 엠버는 여성 뮤지션인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맞받아치는 코미디를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다. 더 나아가서는 유명인들이 SNS에서 벌이는 모든 행동이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처럼 소비되기도 한다. 유아인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유명인들이 SNS에서 벌인 싸움이나 돌출 행동들은 연예매체를 통해 중계되면서 마치 리얼리티 쇼처럼 소비됐다. 현실을 TV 안에 끌어들인 리얼리티 쇼를 넘어, 유명인의 현실이 연예 매체와 SNS를 통해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쇼가 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최근 방송사의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들이 과거만큼 신선해 보이기 어려운 것은 피할 수 없다. SNS에서 실시간으로 연예인이 다른 SNS 이용자와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이른바 ‘관찰 예능’으로 불리는 리얼리티 쇼가 새로워 보이기는 어렵다. SBS ‘미운 우리 새끼’와 ‘동상이몽 시즌 2 - 너는 내 운명’처럼 많은 관찰 예능 프로그램들은 부모 세대, 또는 중년의 부부를 타깃으로 한다. 보다 젊은 시청자들에게 이 ‘관찰 예능’은 그들이 SNS를 통해 접하는 것보다 리얼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기존 방송사들의 선택은 이런 고민을 반영한 것처럼 보인다. SBS ‘백종원의 푸드트럭’은 일반인 출연자들을 불특정 다수의 손님들과 만나게 했다. 그만큼 제작진은 상황을 통제하기 어려워지고, 대신 더 많은 사람이 출연자들에 대해 온갖 의견을 쏟아낸다. 또한 KBS는 ‘김생민의 영수증’을 정규 편성하고, 나영석 PD는 지식 팟캐스트라 해도 좋을 tvN ‘알쓸신잡’을 선보였다.

그러나 지금의 변화는 기존의 TV 바깥에서 이뤄지고 있다. 넷플릭스는 한국의 TV 프로그램보다 훨씬 많은 제작비를 들인 해외 콘텐츠들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하고 있고, 유병재의 스탠드업 코미디처럼 기존 방송사에서는 시도하지 않았던 형식을 선보일 예정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네이버 V앱처럼 실시간 방송이나 유튜브의 아주 짧은 영상들을 즐길 수도 있다. 네이버는 연예뉴스 ‘많이 본 연예 정보’ 항목에 ‘영상’과 ‘V Live’ 순위를 함께 보여준다. 지금 방송사들은 다른 방송사나 새로운 장르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들과는 상관없이 만들어진 콘텐츠와 이를 중심으로 형성된 새로운 생태계와 경쟁해야 한다. 과연 사람들이 생각했던 TV 또는 방송사라는 것은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하긴, 그들보다는 엔터테인먼트를 주로 다루는 매체들이 더 급한 상황이기는 하다. 대중이 알아서 영상을 찾아 보고, 코멘트를 하고, 여론을 만드는 시대에 매체들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만 같았던 TV의 의미마저 변하는 시대다. 그리고, 내년에 이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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