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사람은 항상 지나고 나서 깨닫게 된다”

2017.12.15
별은 지난 11월 5일 새 앨범 ‘LEAVES’를 발표했다. 15년 전, 달력의 마지막 날을 붙잡고 이별에 아파하던 20살은 이제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고 노래하는 35살이 되었고, 가정을 꾸렸다. 그렇게 별이 지나온 많은 날들에 대해 들었다.

올해로 데뷔 15년차가 됐다.
: 15년차라고 하니까 민망하다. (웃음) 솔직히 말하면 별 의미는 두지 않는다. 2002년 데뷔하고 한 10년 동안은 쉬지 않고 활동했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활동을 많이 못했으니까.

이번 앨범은 좀 밝고 부드러운 느낌이던데. 이전에 불렀던 발라드 곡과는 정서가 달라진 것 같다.
: 평소 가깝게 지내는 작곡가 친구들이 있는데 요즘 쓰는 곡이 뭐냐고 물었더니 자기들이 만든 노래를 이것저것 들려줬다. 그 중 ‘LEAVES’가 있었다. 원래 이곡은 나를 염두에 두고 쓴 곡이 아니었는데, 듣는 순간 “이거 내가 부를래”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앨범 작업을 할 때 어떤 콘셉트를 세운 다음 거기에 맞는 곡을 리스트 업하고 마지막에 타이틀곡을 고르는게 보통인데 이번에는 완전 거꾸로 했다. 둘째 낳은 지도 얼마 안됐고, 이렇게 급하게 나올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 이 노래는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에 나와야한다는 생각에 일사천리로 작업했다.

그만큼 곡을 들었을 때 확실한 이미지가 떠올랐나보다.
: 가이드에서는 아예 다른 가사였는데, 후렴에 ‘넌 이미 내 곁에 away away away’가 너무 좋아서 그 부분만 살리고, 나머지 가사는 내가 다시 썼다. 그러면서 낙엽을 떠올렸다. 이 곡을 주인공으로 하고 나머지 곡은 부지런히 작업을 해서 전체적인 앨범의 색깔을 만들었다. 내가 예전에 불렀던 노래들에 비하면 슬픈 노래들은 아니다. 예전에는 이별 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면, 지금은 ‘시간이 흐르면 나는 괜찮을 거야’라는 마음에 가깝다. 구구절절 슬프지는 않고, 약간 쓸쓸한 정도? (웃음)

앨범 발매 하루 전에 음감회를 했다고 들었다.
: 작은 카페를 빌려 50명 정도의 팬들 앞에서 공연을 했다. 직접 준비한 사인CD와 작은 선물도 드렸다. 강원도, 전라도에서 오신 분들도 있었는데 그 추운 날 주말 황금시간대에 나를 보려고 여기까지 오셨다는 게 너무나 고마웠다. 옛날 노래를 부르는데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데뷔곡 ‘12월 32일’도 불렀나? 20살 때 부르던 것과는 느낌이 달랐겠다.
: 정말 달랐다. 같은 사람이 같은 노래를 부르는데도 또 다른 해석이 되더라. 가수라는 직업이 나이를 먹을수록 좋은 것 같다고 느낀 게,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20살에 ‘12월 32일’을 부를 때는 100% 추측성 감정이었다. 곡을 써준 박진영 오빠의 친절한 설명이 없었다면 이해할 수 없었을 거다. (웃음) 지금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때는 미처 몰랐던 것들까지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여러 가지 경험들이 쌓였기 때문일까.
: JYP 엔터테인먼트에서 3년 동안 연습생을 한 후 데뷔했다. 보컬 연습생들마다 특기가 다 다른데, 고음을 잘 내고 기교가 뛰어난 보컬이 있는가하면 나는 옛날부터 가사 전달, 감정 표현이 장점이었다. 어릴 때는 잘하는 것보다 부족한 부분에 더 집중했었다. 고음을 더 내고 어디를 막 구부리고 쾅 터뜨리고 그런 거. 그때는 ‘너 노래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나중에서야 나보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고, 진짜 중요한건 감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기교는 연습하면 일정수준까지는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자기만의 감정을 갖는 건 정말 어렵다. 가사도 마찬가지다. 1집부터 가사를 쓰긴 했지만, 그건 내 이야기라기보다는 어디서 보고 들은 것들이었다. 3, 4집 때쯤에서야 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 같다.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점점 늘어나고 거기에 내 목소리를 얹을 때 가수로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번 앨범 작업할 때도 그랬다. 솔직히 이제야 음악하고 노래하는 게 정말 재미있다.

왜 요즘이 더 재밌을까.
: 요즘 아이돌들처럼 나에게도 하루 2-3시간만 자며 활동하던 시기가 있었다. 어디를 가는 지도 모르고 매니저 오빠가 내려주면 목 상태와 상관없이 10곡 이상 라이브를 하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꿈을 이뤘지만 솔직히 버겁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아쉽다. 그때 주어졌던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열심히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데 사람은 항상 지나고 나서 깨닫게 된다. (웃음) 그리고 결혼 후 내가 처한 환경도 달라졌고, 새로운 역할도 생겼다.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들이고 그래서 답답하기도 하지만,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지혜롭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불평하고 즐기지 못하면 10년 후 또 후회하겠지. 이런 걸 지난 날 경험해봐서 좀 더 여유롭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 것 같다.

결과와 상관없이 만족하게 된 건가.
: 각오는 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차트에서 사라지기는 했다. (웃음) 욕심은 많이 버렸다. 예전 나였다면 100을 기준으로 95를 하고도 나머지 5를 붙들고 괴로워했을 거다. 지금은 나머지를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아직도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계속 노래를 할 거니까. 이번에 음감회에서 예전 노래를 부르며 그래도 내가 아직까지 사람들이 기억하는 노래를 부른 가수라는 걸 깨달았다. 앨범 소개 글에도 썼는데, 내 10년 전 앨범에도 최근에 댓글이 달려있는 걸 보고 많은 용기를 얻었다. ‘초등학교 때 언니 노래를 처음 들었는데 대학생이 됐어요’ 라든가 ‘옛날 남친과 헤어지고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불렀는데 지금은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어요’라는 댓글을 보고 가슴이 먹먹했다. 괜히 엄살 부리면서 “나는 이제 아줌마고 옛날 사람이야” 이런 농담을 했었는데, 오래 된 가수라서 좋은 점도 있었던 거다. 사람들의 인생에 내가 부른 노래가 희미하게나마 존재한다는 거.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도 어떤 성과를 내기 보다는 오랫동안 들을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활발히 활동하면서 가수로 주목 받던 때가 아쉽지는 않나.
: 어린 분들은 나를 그냥 ‘하하 부인’으로 안다. (웃음)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생각이 많아졌던 것 같다. 특히 첫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나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방송이나 인터뷰 섭외가 많이 들어왔는데, 너무 정신이 없고 자신감도 떨어져 있어서 모두 거절했다. 노래를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도 안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둘째가 아직 돌이 되지도 않았는데 녹음을 해서 앨범을 내고 지금은 인터뷰까지 하고 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걸 해냈다고 생각한다.

결혼과 출산이 인생에 정말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 진짜 엉덩이 붙일 새도 없다. (웃음) 아이를 키우며 옷도 못 갈아입고, 밥도 서서 먹기 일쑤였다. 세상 모든 워킹맘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내 친구들만 봐도 아침에 나가서 아기를 맡기고 제일 늦게 데리러 갔다가 제대로 잠도 못자고 일을 나간다. 그런 생활을 끝없이 반복하다보면 멘탈이 무너진다. 나는 지금 여기서 음악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집에 돌아가면 두 아이의 엄마라 이유식을 만들고 아이 준비물을 챙겨야 한다. 녹음이 밤 12시에 끝나면 예전에는 10시까지는 잘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어떻게든 7시에 일어나서 아이를 학교를 보내야 한다. 뮤지션의 감성을 24시간 유지할 수가 없다. 나를 포함해서, 아이 키우면서 일도 잘하는 사람은 정말 보기 드물다. 결국 내가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순간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불평만 하고 있으면 앨범을 만들 수 없으니까.그렇지만 나에게 아이가 주는 기쁨은 살아오면서 경험한 모든 기쁨에 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게 되는 것 같다.

가사를 쓰는 것도 쉽지 않았겠다.
: 그래서 하나밖에 못썼다. (웃음) 생각해보니 녹음은 순간 집중해서 할 수 있는데, 나머지는 진짜 시간이 안 나더라. 집에 연습할 공간이 따로 없어서 화장실에서 헤드폰을 쓰고 연습을 했고, 욕조에서 가사를 고치기도 했다. 그래도 ‘LEAVES’는 후렴이 정해져 있어서 술술 썼다.

남편 하하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보면 어떤가.
: 남편은 내가 노래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활동을 못하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안쓰럽고 미안해한다. 행복한 척, 착한 척 하려는 게 아니라 다행히 우리 마음의 모양이 비슷한 것 같다. 만약 남편이 ‘나만 허리가 휘게 일한다’라고 생각하거나 내가 ‘왜 나는 집에서 이러고 있어야 돼’라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서운하고 마주칠 때 마다 싸우게 될 것이다. 그러지 않고 서로 늘 미안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앨범 작업을 할 때도 남편이 정말 많이 도와주고 지지해줬다.

결혼 후 행복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 것 같다.
: 아까 말한 것처럼 노래하는 게 조금도 기쁘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꿈을 키울 때 상상했던 것과 현실이 너무 달라서 아프기도 했고,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다보니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성숙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엄청 바보 같기도 했다. 어느 순간 내 안에 음악에 대한 이상이 너무 컸다는 걸 깨달았다. 그걸 인정하기 시작하며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딱 그 시점에 결혼을 하게 된 거다. 물론 고민은 많았다. 한국에는 ‘여성 발라드 솔로 가수’ 자체가 별로 없는데다 결혼을 하고 활동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그렇다고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이별 노래만 할 수는 없지 않나. (웃음) 적당한 시기에 인생의 한 페이지를 넘긴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 일을 빼더라도 무언가 남을 수 있기를 바랐다. 결과적으로는 그 선택이 맞았다고 생각한다.

직접 쓴 앨범소개에서 노래를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다음에는 그 선물을 누구에게 주고 싶나.
: 내년에도 앨범도 내고 공연도 하려고 한다. 첫 번째로 나를 오랫동안 기다려준 팬들, 그리고 내 노래를 듣게 될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노래에 마음을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 멋있는 걸 하고 싶다는 욕심보다는 내가 끼칠 영향력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게 됐다. 너무 힘들고 슬플 때 누군가의 마음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지 않나. 내 노래가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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