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나의 ‘진짜 코트’ 고르기

2017.12.18
Shutterstock.com
혹한에 롱패딩은 진리다. 무릎 아래 경골까지 감싸주는 롱패딩은 강추위에 외출을 감행할 수 있는 확실한 동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트를 고수하는 이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한 사람의 사회, 경제적 처지를 드러내는 데 코트만큼 적절한 겨울 외투가 드물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캐롤’에서 풍성한 퍼 코트와 후디드 하프 코트는 각각 캐롤(케이트 블란쳇)과 테레즈(루니 마라)의 계급과 연령대 차이를 상징했다. 코트는 삶의 태도 및 내밀한 취향의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영화 ‘아델라인: 멈춰진 시간’의 아델라인(블레이크 라이블리)은 영생을 얻었지만 예스러운 클래식 코트를 포기하지 않는다. 코트 애호가들은 이런 이유로 옷장 속 코트의 디자인, 원단, 기장, 색상, 여밈 방식, 장식 여부를 면밀히 살피며 ‘오늘의 코트’를 간택하는 과정에서 오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매일 아침 일정한 곳으로 출근하는 20~40대 여성 중에서 단 한 벌의 코트만 가진 이는 극히 드물 것이다. 원버튼인지 더블브레스티드인지, 캐시미어인지 램스울인지, 하프코트인지 롱코트인지, 프린세스 라인인지 오버핏인지, 카멜 컬러인지 블랙 컬러인지. 기본 요소만 따져도 손쉽게 확보되는 쇼핑 당위성을 방패 삼아 야금야금 사 모았을 것이다. 배스킨라빈스31에서 아이스크림을,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고를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고르는 재미를 선사하는 요물. 그게 바로 코트니까. 겨울철 옷장 통풍을 막는 원흉이며, 저렴해봤자 수십만 원대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캐시미어 핸드메이드 롱코트’나 ‘폭스트리밍 울코트’ 홈쇼핑 방송에 눈을 번득이는 이유다.

백미는 캐시미어, 램스울, 헤링본, 트위드, 알파카, 퍼, 페이크퍼, 울혼방이란 큰 틀 아래 겉감 원단을 고르는 순간이다. 어떤 가죽으로 만들었느냐가 핸드백의 8할을 차지한다면 코트의 성패는 원단이 좌우한다. 하지만 각자가 처한 업무 환경은 ‘최고의 원단’이란 이상향을 현실로 끌어내린다. 은은한 광택이 감돌며 차르르 떨어지는 100% 캐시미어 코트를 거부하긴 어렵지만, 외부 미팅이 잦은 뚜벅이라면 눈이나 비에 약한 원단은 조금 부담스럽다. 내근직이더라도 레인보우 퍼 코트를 향한 갈망이 보수적인 직장 분위기와 충돌하면 자칫 무례하고 부당한 품평에 직면할 수 있다. 비단 캐시미어와 퍼의 가격 압박이 아니더라도 상대적으로 무난한 헤링본이나 울혼방 선에서 타협하는 이유다.

코트 디자인을 고르는 기쁨도 업무 환경의 자장 안에 있다. 코트는 겨울 패션의 최전방에서 착용자의 인상을 결정짓지만, 그 종류에 따른 통념도 그만큼 강력하다. 각으로 가득 찬 카키 색상 폴로 코트나 체스터필드 코트를 입고 비즈니스 미팅에 나서면 “남성적이다”라는, 근거를 찾기 어려운 반응에 직면할 수 있다. 비슷한 자리에 후드가 달린 더플코트를 입고 등장하면 “전문가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편견 어린 시선에 포획될 수 있다. 자신의 원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학생 같다”는, 칭찬인지 욕인지 불분명한 데다 업무와도 무관한 외모 평가를 받는 것은 옵션이다. 반대로 상반신에 딱 붙는 프린세스 코트를 입고 나타나면 대개 “여성스럽다”는 반응을 보인다. 허리 선 아래 단이 관능적으로 퍼질수록 반응은 즉각적이다. “잘록하게 잡힌 허리 선 = 여성스러움”, “여성에게 ‘여성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최고의 찬사”라는 상대방의 확신을 좀처럼 바꾸기 어려우리란 무력감, 업무 관계로 엮인 자를 신랄하게 꾸짖어 그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할지 말지에 대한 내적 갈등. 단지 프린세스 코트를 입었을 뿐인데, 관성적인 성차별로 인한 감정 노동은 오롯이 착용자의 몫이다.

롱패딩도 명쾌한 해답은 아니다. 허락도 없이 타인의 겉모습을 비평하는 자들은 롱패딩 또한 “격식에 맞지 않다”, “유행만 따른다”며 삐딱하게 볼 테니 말이다. 그러니 코트 애호가는 차라리 코트의 라펠 넓이와 길이에 따라 미세하게 바뀌는 머플러 착용 방식이나 코트에 어울리는 상·하의, 슈즈 선택에 집중하기도 한다. 패션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과의 정기적인 접촉, 그로 인해 업무에 올인해야 할 공력이 쓸데없이 분산되는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니까. 이런저런 시선이 부담스러워 오버핏 헤링본 롱코트만 입기에는 입어볼 코트가 너무 많기도 하다. 때마침 이탈리아 브랜드 막스마라의 전시회 ‘코트(Coats!)’가 코트라는 단일 품목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지 않았나. 지난 6일 처음 방영한 KBS ‘흑기사’의 ‘신세경 A라인 버건디 코트’ 초도 물량 완판도 롱패딩이나 오버핏 코트라는 대세와는 무관하게 자기 길을 가는 코트파의 존재를 확인시켜주었다. 보이그룹 워너원의 강다니엘이 지난달 24일 MAMA(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 참석 차 출국하며 입었던 오버핏 베이지 후디드 더플코트는 ‘90년대 10대’의 상징이었던 일명 ‘떡볶이 코트’에 폭발적인 화제성을 부여했다. 더플코트는 성별과 연령을 떠나 트렌디하게 부활하는 중이다. 그러므로 “돈은 안 쓰는 것”이란 김생민의 지론은 제쳐 두고, 그의 언어만 빌려 고심해보자. 우리에게 과연 코트란 무엇일까. 당신은 대외 이미지 관리용 코트 말고 스스로를 확실하게 드러내줄 ‘진짜 코트’를 갖고 있는가.



목록

SPECIAL

image 윤미래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