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롱패딩’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2017.12.22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9층에 위치한 평창 동계올림픽 라이선스 스토어는 마치 SPA 브랜드 스토어처럼 보인다. 유니클로, H&M 등의 SPA 브랜드처럼 티셔츠, 모자, 양말, 장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 구색을 갖추고 있다. 가격도 2~4만 원으로 중저가에 속한다. 후드 티셔츠의 경우 같은 백화점 내에 있는 타 스포츠 브랜드와 비교해 최대 3~4배까지 차이가 날 정도다. 처음에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대부분의 대규모 국가 행사가 그렇듯, 평창 동계 올림픽 라이선스 스토어도 관광객들을 위한 기념품 숍에만 머물 것이라는 게 대다수 업계 관계자들의 예상이었다. 하지만 롱패딩이 이슈가 된 뒤부터 일일 방문객 수가 10배 이상 급증했다. 처음에는 외국인 고객 비중이 70%에 달했지만, 롱패딩과 스니커즈 완판으로 얻은 홍보 효과 덕분에 지금은 국내 고객이 더 많기도 하다.

처음부터 롱패딩, 스니커즈 등 특정 제품 제작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사업은 아니었다. 롯데백화점과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이하 평창 조직위) 측이 함께 상품화시킬 목록을 조사 후에 작성하는 과정이 먼저 이루어졌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가 생겼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 규정상 타 스폰서가 취급하는 품목은 제작할 수 없었던 것.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한국 대표 상품으로 꼽힌 마스크 팩과 홍삼, 휴대폰 케이스 등을 제작해 품평회까지 마쳤지만 IOC에서 판매 불가 방침을 내렸다”고 밝혔다. 올림픽 후원사의 유사 상품군에 속한다는 이유였다. 유사 상품군에 속하지 않으면서 백화점에서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상품들이 바로 의류와 신발이었다. 실제로 평창 조직위에서도 공식 캐릭터인 수호랑 등을 활용한 캐릭터 상품을 직접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롱패딩, 스니커즈 같은 라이선싱 의류는 롯데백화점 측에서 담당한다. 물론 화제의 중심에 있던 14만 9천 원짜리 패딩은 롯데백화점에서도 더 이상 판매하지 않는다. 스토어 담당자는 “SNS에서 크게 화제가 된 이후로 몇 주 전에 완판됐다. 미리 해외 공장에서 만들어 판매한 상품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추가 제작 여부를 확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패딩 이후에 온라인을 통해 예약을 받아 완판된 스니커즈는 아예 매장에서 판매하지 않을 수도 있다. “패딩 때도 1천 명이 스토어 주변에 꽉 찼다. 그런데 이미 3만 명에게 예약받은 상품을 매장으로 가져오긴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초로 의류 품목 제작을 제안한 것은 평창 동계올림픽의 공식 스폰서인 롯데였다. 평창 조직위는 “조직위 측에서는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여러 가지 홍보를 해야 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스폰서였던 롯데가 먼저 이번 굿즈 제작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롯데 백화점 측에서 평창 라이선싱 TF팀을 만들었고, 전년도 소비자 특성을 고려한 소비자 조사를 시행했다. 트렌드 전문가를 영입하고, 전문가 및 자문단 의견도 수용해 어떤 상품을 제작할지 의논했다.

그러나 제작은 계속 난항을 겪었다. 제조 업체들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이선싱 팀 측은 “제조업체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올림픽에 누가 관심이 있냐’고 문전박대를 당한 적도 있다”며 “롱패딩 같은 경우도 생산 업체를 찾느라 최은경 치프 바이어(수석 상품기획자)가 10개 넘는 업체를 돌아다녔다”고 이야기했다. 대기업인 롯데 입장에서도 상대적으로 이윤이 많이 남지 않는 사업에 동참해줄 사람들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판매 또한 처음부터 원활히 이뤄졌던 것은 아니다. 답은 결국 롯데백화점이 자체 마진을 줄이면서 패딩 가격을 낮추는 것이었다. 고가의 롱패딩 제품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유행에 민감했던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낮으면서도 자재가 좋은 평창 라이선싱 제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롯데 백화점 측도 “상품의 품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만 이렇게 큰 인기를 끌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롱패딩을 중심으로 한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한 관심은 정부 인사들과 대기업 관계자를 자극했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라이선싱 사업에서 뜻밖의 길을 봤다고 생각한다. 대규모 국가 행사가 다른 방식으로 화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득을 본 것은 롯데라는 대기업의 사례를 통해 젊은 층의 구매력과 SNS의 유용성을 실감한 패션업계다. 한 의류 대기업 관계자도 “솔직히 국가 이벤트와 손잡은 라이선싱 사업이 이렇게 대규모로 화제가 된 적이 없다. 유통 마진이 빠져서 저가격에 공급할 수 있었던 것이라도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이번 일을 통해 SNS 세대가 원하는 제품의 특성과 홍보 방식을 새롭게 고민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금 평창 조직위 라이선싱 팀은 대외 브랜드로서의 영향력을 인정받은 것에 의의를 둔다. “라이선싱 사업이 과연 성공할지 여기저기서 의구심이 있었지만, 대외 브랜드로서 영향력이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그전까지는 올림픽 같은 라이선스 사업이 활성화된 전례가 없어서 기업들의 참여도 저조한 부분이 있었다.” 실제로 롯데백화점도 처음에는 시장 반응에 우려를 표할 정도였다. 하지만 조직위 측에서 가격과 품질을 보고 확신하는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3만 장 선기획이 부족할 거라는 의견을 냈고, 결국 완판됐다. 역시 싸고 품질 좋고 유행까지 따르는 제품은 성공한다. 물론, 그렇다면 평소에 왜 기업들은 그러지 않을까란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목록

SPECIAL

image 박미선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