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망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끝나면

2017.12.27
JTBC ‘믹스나인’과 KBS ‘더 유닛’은 실패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두 프로그램 모두 방송 두 달째에 접어들었지만, 시청률은 점점 낮아지는 데다 화제성 역시 미미한 수준이다. 최근에는 ‘믹스나인’에 출연 중이던 걸그룹 드림캐쳐가 브라질 공연을 이유로 자진 하차했다. ‘믹스나인’ 출연이 이미 잡힌 해외 공연에 비해 나을 것이 없다는 의미다. ‘더 유닛’은 최근 중간 순위 발표를 별다른 세트도 설치하지 않은 채 진행했다.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시청률이 잘 나왔다면 최소한 그보다는 큰 규모를 보여주려 했을 것이다.

실패 이유는 제작진이 분석할 일이다. 다만 두 프로그램이 한 일들을 복기할 필요는 있겠다. ‘믹스나인’의 제작자 양현석 YG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출연자 중 한 사람이 아이돌을 하기에는 나이가 많다며 “은퇴할 나이인데 뭐 한 거예요?”라고 말했다. ‘더 유닛’ 출연자들은 심사위원인 비의 컴백쇼에 댄서 역할을 했다. 또한 두 프로그램의 예선 통과자들은 몇 개월 동안 숙소 생활을 하며 제작진이 요구하는 미션에 출연했다. 이 모든 일들의 전제에는 프로그램의 성공이 있었다. 프로그램이 성공하면 시청자 투표로 뽑히는 출연자들뿐만 아니라 탈락자들도 인기를 얻을 수 있다. ‘프로듀스 101 시즌 2’ 출연 뒤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보이그룹 뉴이스트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더 유닛’과 ‘믹스나인’의 탈락자들에게 이런 일은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편집으로 인해 나쁜 이미지만 얻지 않았어도 다행이다. 데뷔가 결정되는 출연자들도 프로그램의 후광을 입을 일은 없다. ‘더 유닛’과 ‘믹스나인’이 출연자들에게 남긴 것은 소수의 출연자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뿐이다.

두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데뷔가 절실한 상황이다. 출연자들의 소속사 중 일부는 제작사가 데뷔만 시킨 뒤 해체시키거나, 곧바로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을 시켰다. 데뷔도 못 시킨 소속사가 마땅한 방법이 없어 출연을 선택한 경우도 있다. 그러니 프로그램에서 주목받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런 출연자들에게 제작진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할 것을 요구한다. 경쟁은 갈수록 가혹해지고, 출연자는 실력뿐만 아니라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도 온갖 평가를 받는다.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특정 출연자의 안 좋은 부분을 부각시키는 일들도 쉴 새 없이 벌어진다. 대신 오디션 프로그램은 그들에게 성공을 약속한다. ‘믹스나인’은 YG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고, ‘프로듀스 101’ 시즌 1을 연출한 한동철 PD가 연출했다. ‘더 유닛’ 역시 KBS라는 대형 미디어가 나선다는 점에서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이 힘을 기반으로 그들은 성공을 보장했고, 그래서 출연자들에게 온갖 요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프로그램 모두 실패했다. 탈락한 출연자들은 사실상 아무것도 보상받을 수 없다. 두 프로그램이 지금까지 출연자들에게 데뷔를 약속하며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은 불공정 계약이나 다름없다. 거의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이들에게 YG와 한동철과 KBS의 이름을 무조건 믿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유닛’이나 ‘믹스나인’은 많은 제작사들이 아이돌 그룹을 성공시키지 못하기에 제작 가능했다.  실패한 아이돌 그룹, 또는 데뷔조차 시키지 않은 연습생들을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시킨다. 성공은 하고 싶고, 그룹 제작에 드는 부담은 지기 싫으니 하는 선택이다. 제작사 중 일부는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 후 얻는 반응에 따라 출연 가수의 방출 여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아이돌이 되기를 원하는 이들은 점점 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다. 몇 년 동안 연습생 생활을 하고, 그럼에도 제대로 데뷔도 못한 채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내몰린다. 예선을 거쳐 100여 명의 다른 소속사 아이돌들과 경쟁해야 하고, 그 경쟁 과정에서 제작진 요구에 따라 온갖 무대를 꾸미며 모든 것을 토해내야 한다. 여기서 주목받으면 그래도 길이 생긴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디션 프로그램 자체가 망했다. 

한국의 아이돌 산업은 아이돌이 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성공을 약속한다. 대신 성공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포기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른바 ‘3대 기획사’나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자들이 몰리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성공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올해 보이그룹 앨범 초동 판매량(첫 주 앨범 판매량) 1~5위는 방탄소년단, EXO, 워너원, 세븐틴, 뉴이스트W 순이다. 이 중 흔히 ‘3대 기획사’로 불리는 SM 엔터테인먼트, YG 엔터테인먼트, JYP 엔터테인먼트의 소속 팀 중 이름을 올린 것은 EXO뿐이다. 또한 워너원은 아이돌 그룹도 리얼리티 쇼를 통해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런 리얼리티 쇼에 강한 것은 YG 엔터테인먼트보다는 Mnet일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성공한다. 하지만 현재의 결과는 그 성공이 이전처럼 더 큰 기획사, 더 큰 미디어의 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더 유닛’과 ‘믹스나인’의 실패는 그 예 중 하나일 뿐이다. 대형 기획사의 새로운 그룹들이 이전의 그룹들보다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많은 제작사들은 데뷔 앨범을 내는 것조차 어려워하며, 연습생들이 모든 것을 던진 오디션 프로그램은 망해버린다. 제작사의 규모마저 성공을 담보하지 못할 때, 연습생은 대체 무엇을 믿고 그들의 시간과 기회비용을 투자해야 하는가. 

아마 두가지 선택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일부는 방탄소년단, EXO, 트와이스 등 지금 가장 성공한 팀의 소속사에 들어가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 두 팀을 연속으로, 또는 보이그룹과 걸그룹을 동시에 성공시키는 회사의 가치는 엄청나게 올라갈 것이다. 반면 제작사가 제시하는 시스템 바깥의 방법을 찾는 경우도 늘어날 것이다. 워너원의 멤버 김재환이 ‘프로듀스 101’에 개인 연습생 자격으로 출연해 데뷔하는 과정을 본 연습생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아예 인기 유튜버로 경력을 시작해 아이돌이 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그리고 어느 경우에든 소속사에 지금보다 원하는 것이 많아질 것이다. 자신을 데뷔조차 못 시킨 채 오디션 프로그램에 내보내는 소속사에 무엇을 더 믿어줘야 하는가. 여러 문제와 함께 실패한 프로그램이지만, Mnet ‘아이돌 학교’는 하나의 징후다. 이 프로그램은 연습생 경험이 없더라도 오디션을 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고, 이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된 걸그룹 프로미스 나인은 실제로 곧바로 데뷔했다. 그렇다면 다른 제작사들은 무엇을 약속할 수 있을까. 과거에는 성공을, 최근에는 데뷔를,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데뷔할 수 있는 기회를 약속했다. 그러나 ‘믹스나인’과 ‘더유닛’은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증명했다. 이제 그들은 더 많은 약속과, 눈에 보이는 보장을 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거짓말이라도 하지 말든가. 









목록

SPECIAL

image 여성의 선거

MAGAZINE

  • imageVol.171
  • imageVol.170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