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한국 힙합, 여성 혐오의 맨 앞에 서다

2017.12.29
해도 한국 힙합은 여성혐오를 성찰하지 않았다. 아니,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그 어느 해보다 상황은 나빠졌다. 4월에는 지난해 ‘김치녀’를 들먹이고 여성 래퍼 키디비를 성적으로 모욕한 블랙넛이 키디비를 다시금 모욕하는 가사를 썼다. 5월에는 블랙넛이 소속된 레이블 저스트뮤직 대표 스윙스가 힙합 매거진 힙합LE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을 향한 비판을 “미국 TV 좀 보더니 너무 갑자기 존나 깨어 있는 척”하는 신경과민이라 빈정댔다. 10월에는 작년 탄핵정국 때 ‘수취인분명’ 논란을 빚은 DOC 이하늘이 조윤선 전 장관을 ‘국썅’이라 불렀고, 재작년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랩을 뱉어 사과한 송민호 역시 “motherfucker만 써도 이젠 혐이라 하는 시대”란 가사로 사과를 번복했다는 논란을 불렀다. 이 밖에도 지면의 한계로 열거하지 못한 사건이 많거니와, 이상의 스캔들은 하나의 패턴으로 연결된다. 과거 여성혐오로 비난받은 이들이 거기에 불복한 채, 같은 부류의 가사와 언동을 반복하고 비판 진영을 도발한 것이다. 이전까지 한국 힙합의 여성혐오가 장르 관습의 무비판적 답습과 급격한 상업화로 인한 ‘시행착오’라 변호될 여지라도 있었다면, 더는 그런 논리가 수락될 구멍이 없다. 그들은 비판자들의 주장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를 무시한 채 혐오를 재현할 권리를 외치며 역습하고 있다.

이런 퇴행은 얼마 전 일어난 몇 가지 사건에서 극명하다. 그 주역은 힙합 레이블 VMC의 대표 딥플로우다. 딥플로우는 지난 11월 레이블 데이즈얼라이브 소속 래퍼 던말릭과 디스전을 벌였다. 데이즈얼라이브는 한국 힙합의 여성혐오를 비판하고 소수자 의제에 연대해온 힙합 신의 유일한 그룹인데, 딥플로우는 “난 실은 네가 싫어하는 걸 그냥 하고 싶어 bitch. 랩에 ‘motherfucker’, ‘씨발년’을 넣고 싶어 bitch”, “I don't care 좆같은 게이즈얼라이브 메갈팸”이란 가사로 그 점을 저격했다. 그리고 얼마 후 배우 유아인에 의해 페미니즘에 관한 난장이 펼쳐지자, 힙합 신을 향한 비판을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는 ‘검열’로 규정하고 더 이상 눈치 보지 말라고 동료 래퍼들을 선동하는 격문을 썼다.

일련의 사건에선 장르 팬들과 플레이어들을 아우르는 연계 플레이가 확인된다. 한국 힙합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으면서 힙합 신에는 페미니스트 그룹을 향한 적의가 고조된 상태다. 래퍼들과 장르 팬들에게 페미니스트는 정치적 올바름의 율법으로 장르의 영토를 침략하며 장르가 허락하는 욕망을 꺼트리는 이교도일지 모른다. 송민호가 ‘노땡큐’에서 과거 뭇매를 맞은 자신의 가사가 ‘motherfucker’처럼 ‘사소한’ 가사인 양 묘사하자, 힙합 커뮤니티에서는 그에 호응해 송민호가 사과를 번복했다고 비난받는 상황을 그가 ‘motherfucker’란 말을 써서 비난받는 상황인 것처럼 비틀며 가짜 논란을 만들어냈다. 얼마 후 벌어진 디스전에서는 딥플로우가 ‘motherfucker’란 말을 재차 소환하며 장르 팬들에게 지난 논란을 상기시키고 데이즈얼라이브를 수세에 몰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국내 최대 힙합 커뮤니티이자 힙합 매거진 힙합LE의 한 필진은 개인 SNS 계정에서 유아인 사태 당시 딥플로우의 행각을 비난했다가 게시판 유저들의 요구로 무기한 활동 정지 징계를 당했다. 힙합LE는 지난 3월 산이의 신보를 여성혐오라 비판한 해당 필진의 리뷰에 대해서도 게시판 유저들의 압력으로 사과한 전력이 있다. 힙합LE는 젠더 이슈에 활발히 발언하는 래퍼 제리케이를 비중 있게 조명한 바 있지만, 이제 스스로 논조의 한계를 그었다. 한국 힙합은 장르 밖에서 펼쳐진 사회적 혼란에 발맞춰 윤리적 비판에 맞서는 태세를 공세적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플레이어들과 장르 팬, 평단의 일각을 아우르는 장르의 모든 층위에서 젠더 이슈의 침투를 저지하는 천리장성을 건설했다.

한국 힙합 구성원들은 ‘여혐 몰이’에 창작의 자유를 ‘검열’당하고, 장르의 고유성을 훼손당하는 피해자의 제스처를 취한다. 어떤 의미에서도 사실이 아니다. 창작물에 대한 여론의 견제는 검열이 아니라 또 다른 표현의 자유일뿐더러, “래퍼들을 밥줄 끊기로 협박하며 표현의 자유를 검열하지 말라”는 사람들이 힙합LE 필진에게 취한 모순적 태도는 이들이 표현의 자유를 얼마나 헌신짝으로 여기는지 알려준다. 송민호 사건 이후, 장르의 관습은 사회 규범 위에 있지 않으며 힙합의 ‘본토’ 미국에서도 혐오 가사는 물의를 빚는다는 지적이 무수했지만, 마치 누구도 그런 얘기를 듣지 못한 것처럼 놀라울 만큼 대화는 발전이 없다. 결국 저들이 수호하는 건 창작의 자유나 장르의 전통이라기보다 그런 명분을 통해 누리는 남성적 욕망이며 그것을 제지당하지 않고 뱉을 수 있는 발화 권력에 가깝다.

비와이는 몇 달 전 어느 해외 인터뷰에서 “한국 래퍼들은 미국 래퍼들과 비슷한데 한국 대중은 옳고 그름을 따지며 경직돼 있다”고 말했다. 미안하게도, 여성혐오와 표현의 자유에 관해 한국 래퍼들은 한국 사회와 똑같은 레벨에 있다. 서구에서 자유주의 사조는 권위주의적 단계에서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단계를 거쳐, 인권과 평화를 위해 소수자 혐오 표현 등을 예외적으로 규율하는 포스트 자유주의에 진입해 있다(이재승, ‘선동죄의 기원과 본질’). 한편, 역사적으로 미국 힙합은 소수 인종 집단에서 태동한 ‘폭력적 음악’으로서 주류 사회에 정당성을 승인받아야 하는 불리한 입지에 있었다. 미국 사회 역시 소수자 차별에서 자유롭지 않고, 미국 힙합에는 여성혐오가 관습화돼 있으며 그 안에서 인종 차별과 젠더 차별이 경합하는 모순과 복잡성이 있다. 하지만 릭 로스가 성폭행을 암시하는 가사를 쓰고 항의에 부닥쳐 리복에게 계약을 파기당한 사례처럼, 적어도 관습적 수위를 넘은 장르의 혐오 표현에 개입할 사회적 외력이 이미 마련돼 있었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는 오랜 권위주의 통치와 지난 9년 동안의 권위주의 회귀로 인해 자유주의가 발달하고 학습될 시간이 없었다.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막연히 이해한 채 절대화하고 당파적으로 전유하는 반편향 속에 검열과 같은 개념이 끝도 없이 누명을 쓰고 포스트 자유주의로의 이행이 진통을 겪고 있다. 또한 ‘쇼미더머니’를 통한 힙합의 상업화 과정에서 혐오 표현의 선정성이 장르의 한 경쟁력으로 채택됐고, 이는 소수자를 향한 증오심으로 어지러운 사회 현실과 공명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 힙합은 현재 사회 전방위에서 관측되는 안티 페미니즘의 백래시에서 조직적으로 선봉에 서는 대중문화 집단이 되었다.

이상의 정황은 한국 힙합이 훨씬 깊숙한 문화적 위기에 처해 있음을 암시한다. 힙합은 소수 인종 집단, 미국 흑인들의 해방과 공동체를 노래하는 진보적 음악이면서 돈과 자수성가를 신봉하는 보수적 음악이기도 하다. 2010년대 ‘쇼미더머니’ 시대가 열린 후 한국에선 허슬, 머니 스웨거, 여성혐오 같은 특정한 장르 관습의 겉면만 뜯겨 와 그것이 힙합의 모든 모습처럼 점철되었다. 그렇게 한국 힙합은 장르의 보수적 성격이 극대화된 극우적 장르가 되고 말았다. 한국 힙합 구성원들은 이 현실을 자각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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