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정려원, 두려움에 맞서다

2018.01.10
2017년 KBS ‘연기대상’에서 여자 최우수상을 수상한 정려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수상소감을 시작했다. 눈가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처럼 붉어졌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사실 ‘마녀의 법정’이라는 드라마가 성범죄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는데요. 감기처럼 만연하게 퍼져있지만 가해자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성폭력 피해자 분들이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기 때문인데요. 저희 드라마로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모두가 지켜보는 시상식에서 그 누구도 공개적으로 말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KBS 드라마 ‘마녀의 법정’에서 정려원이 연기한 마이듬은 주도적이며 복합적인 캐릭터였다. ‘약자를 위해 싸우지 않고 나를 위해 싸운다’는 모토를 가진 이 캐릭터는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는 상사가 저지른 성범죄의 목격자가 되는 바람에 좌천이나 다름없는 ‘여성아동범죄전담부’ 소속 검사가 됐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에는 조금도 공감하지 못했다. 정도윤 작가가 안티히어로라고 표현했을 만큼 마이듬은 그동안 드라마에서 그려지던 여성 검사 캐릭터들과 달랐고, 정려원이 지난 몇 년간 드라마에서 연기해온 캐릭터들과도 달랐다. 30대가 된 이후 정려원은 몇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남성 캐릭터 중심의 작품에서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르기도 했고, tvN ‘풍선껌’ 이후로 2년 여 동안 활동을 쉬기도 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대본이 많이 안 들어왔다. 고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enews24’)라고 말할 정도의 상황에서 정려원은 “여성들이 관례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사실은 옳지 않다’고 짚어주는 드라마”(‘매일경제 스타투데이’)인 ‘마녀의 법정’을 선택했고 “‘이래서 남자 주인공 쓰는 거야’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 누구보다 현장에 먼저 가 있었다. ‘저 나이 또래 여성 배우들을 메인으로 썼는데 괜찮던데’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조선일보’)”는 각오를 다졌다. 마이듬 역할에 대한 압박감을 이겨내기 위해 혼자 화장실에 틀어박혀 마인드 컨트롤을 하거나 카메라 앞으로 다가가 “나는 네가 무섭지 않아”라고 외치기까지 했다(‘오마이뉴스’). 더 이상 좋은 배역이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자신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에 대한 두려움. ‘마녀의 법정’은 그 두려움들을 이겨낸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정려원은 ‘마녀의 법정’을 통해 얻어낸 수상 소감의 기회를 사회에 꼭 필요한 목소리를 내는데 썼다. 다시 한 번 두려움을 이겨내고서.

‘마녀의 법정’에서 출세 밖에 몰랐던 마이듬은 자신이 불법촬영의 피해자가 되면서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기 시작한다. 재판장에서 자신의 샤워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증거로 제출한 그는 떨리는 손을 남몰래 부여잡는다. 그 때 누군가 손을 잡아 줄 수 있었을까. ‘마녀의 법정’은 마이듬이 그렇게 누군가에게 손 내미는 검사가 되는 이야기였고, 이것은 검사이자 여성으로서 그가 다른 여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힘 쎈 여자 도봉순’을 볼 때 통쾌하고 반가웠다. 박보영이 반대의 성향의 역할을 맡는 게 신선했다. 선아 언니, 희선 언니의 ‘품위 있는 그녀’도 성공했다. 그리고 ‘마녀의 법정’이 나왔다. 이건 시대의 흐름인 것 같았다(‘일간스포츠’)”고 말하는 정려원은 ‘연기대상’을 통해 현실에서 보다 직접적인 방법으로 누군가를 돕기 위한 용기를 냈다. 그는 ‘연기대상’ 다음날 자신의 SNS에 “우리 사회의 성범죄에 대한 법이 강화가 되어서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그래서 피해자들도 용기 내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라는 글을 다시 한 번 올렸다. 정려원이, 배우이자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많은 두려움을 이겨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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