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 스토어에서는 언제쯤 원하는 생리대를 살 수 있을까

2018.01.18
국내 헬스앤뷰티(H&B) 스토어 시장은 사람으로 치면 올해 만 19세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지난해 1조 7000억 원대였던 H&B 시장 규모는 올해 2조 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CJ올리브네트웍스의 올리브영이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독주하는 가운데 왓슨스(GS리테일)․롭스(롯데쇼핑)에 이어 지난해 5월 부츠(신세계 이마트)까지 가세하면서 H&B 시장은 4파전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증권가의 장밋빛 전망, 군침 흘리며 달려드는 대기업, 후발주자를 편견 없이 환대하는 코덕들. 적어도 규모나 화제성 면에서는, 뿌듯할 정도로 잘 자랐다. 이는 국내 화장품 소비자들의 깐깐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백화점 1층에 집중됐던 화장품 유통 경로가 온라인몰, 홈쇼핑, 로드샵, 해외 직구로 확장될 때마다 전율했던 이들은, 마침내 H&B 스토어를 메인 유통망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다품종 소량 판매 방식인 H&B 스토어는 홈쇼핑처럼 지인과 나누지 않는 한 유통기한 내에 다 쓰지 못할 대량 묶음 판매를 하지 않는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바로 살 수 있어 해외 직구처럼 장기 배송에 따른 인내심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원하는 제품이 없으면 다른 브랜드의 매장을 전전해야 하는 로드샵과 달리 파운데이션 1종만 10여 개 브랜드가 입점, 원스톱 쇼핑이 가능하다. 온라인몰에 비해 진입 문턱이 높아 유해 제품에 노출될 가능성이 적다. 작정하고 1~2시간 동안 이것저것 발라도 귀찮게 따라붙지 않아 구매 전 탐색 과정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전국 올리브영 매장만 1000여 개라 번화가로 나가지 않더라도 접근하기 쉽다. ‘미팩토리 3단 돼지코팩’처럼 중소기업의 저가 제품까지 고루 배치, ‘탕진잼’과 ‘소확행’이 가능하다. 유명인들이 정체불명 화장품의 모델을 할 정도로 브랜드가 난립한 현재, H&B 스토어는 믿음직한 뷰티 큐레이터로 자리매김했다. 올리브영이 지난달 명동 본점을 리뉴얼하고, 왓슨스가 같은 달 브랜드명 교체 가능성을 타진하고, 부츠가 고급화 전략을 강조하는 등 각 업체가 소비심리 자극에 열을 올리는 까닭이다.

H&B 시장의 화려한 성인식에는 그러나 유해 생리대 파동 이후 소비층의 각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신한카드 빅트렌드 연구센터인 신한트렌디스에 따르면, 지난해 신한카드 회원 중 H&B 스토어 이용객 480만 명 가운데 75%가 여성이었다. 남성 고객이 증가하긴 했지만 올리브영이나 왓슨스의 최대 고객은 여전히 여성이다. 이들의 생리대 카테고리는 지난해 8월 이후 ‘생리대와 탐폰’에서 ‘그냥 생리대, 유기농 생리대, 면 생리대, 생리컵’으로 변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두 차례에 걸쳐 기존 생리대의 무해함을 선언했지만 면 생리대 품귀 현상은 지속되고 있다. 면 생리대의 대명사인 한나패드는 아직도 온라인몰 주문 시 3~4개월을 기다려야 확보할 수 있다. 생리대에 대한 인식은 반 년 사이 확 바뀌었다.

그렇기 때문에 H&B 업계의 대응은 실망스럽다. 물론 H&B 스토어 빅3인 올리브영, 왓슨스, 롭스가 순차적으로 유기농 생리대 브랜드를 입점시키고 있긴 하다. 이들 업체는 현재 온․오프라인에서 나트라케어, 콜만, 뷰코셋, 아임오, 잇츠미, 유기농본 등 유기농 생리대 브랜드 중 적게는 3개에서 많게는 6개 정도의 브랜드를 취급하고 있다. 문제는 면 생리대 품목의 경우 소비자의 고르는 재미를 외면했다는 점이다. 면 생리대는 빅3 중 올리브영에서 2개 브랜드(한나패드․내츄럴코튼), 롭스에서 1개 브랜드(로한)의 제품만 구매 가능하다. 이 3개 브랜드의 제품도 1~2개씩 소포장한 ‘맛보기용’ 제품이다. 이 때문에 면 생리대로 갈아타기로 결심한 소비자는 소포장 제품을 복수 구매, 가성비 및 쇼핑 편의성을 포기한 상태에서야 한 달 사용분을 확보할 수 있다. 면 생리대 사용 시 필수적인 전용 세탁비누, 세제, 파우치, 지퍼백, 세탁통 등도 구하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롭스에서 로한 전용 세탁세제를 팔 뿐이다. 면 생리대 및 관련 제품은 이들 업체의 전국 매장 중 어떤 매장에는 있고 어떤 매장에는 없다. 예를 들면, 일부 올리브영 매장에는 한나패드가 품절된 게 아니라 아예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거주지 인근 매장에 전화해 취급 여부를 확인한 뒤 방문해야 한다는 뜻이다. 면 생리대 구매는 아직도 힘들다.

H&B 업체들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면 생리대는 보통 수작업으로 만든다. 폭증하는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더딘 방식이다. 대기업이라 하더라도 물량 확보가 여의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벌써 반년이 지났다. H&B 스토어에서 컵밥을 판매하고 뚝딱뚝딱 자체 브랜드(PB)까지 내놓는 시대다. 그런데 유독 면 생리대는 감질 나는 진열대에 그치고 있다. 일정 연령대까지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여성의 ‘헬스’와 직결되는 생필품. 그 생필품의 유해성 논란에 대한 정당한 당혹스러움이 생리충이란 조롱으로 돌아오는 현실. 여성들은 H&B 스토어에 SOS 신호를 보냈지만 돌아온 것은 의구심을 넘어 괘씸함까지 느껴지는 안이한 대응이다.

‘I want what I want when I want it. (나는 내가 가지고 싶을 때 가지고 싶다)’. 시장조사기관인 유로모니터가 지난해 꼽은 글로벌 6대 소비자 트렌드 중 하나다. 더 빠른 쇼핑을 당연시하는 소비자들이 몇 달씩 기다리면서 꾸역꾸역 면 생리대를 사고 있다. 그마저도 못 구한 소비자들은 생리대 DIY 키트로 자체 제작에 나서고 있다. 오는 18일에는 여성의 몸과 생리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피의 연대기'가 개봉한다. 헬스앤뷰티 스토어가 ‘헬스’란 간판을 뗀 채 편의점 흉내나 내는 만물상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소비자의 기대에 더 기민하게 부응할 때다. 생리컵까지는 기대도 안 한다. 다만 올해 안에 H&B 스토어에서 최소 7~8개 면 생리대 브랜드의 제품을 사이즈별, 소포장․대포장별로, 관련 제품까지 포함해서 나란히 볼 수 있길 바란다. H&B 시장은 그들을 먹여 살린 핵심 소비층의 선택권을 확실하게 보장할 의무가 있다.




목록

SPECIAL

image 신과 함께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