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셀럽파이브, 주인공이 되다

2018.01.24
여성 예능인 송은이, 김신영, 안영미, 김영희, 신봉선이 결성한 그룹 셀럽파이브는 한국 걸그룹의 제작 방식을 완전히 뒤집는다. 멤버들은 10~20대 연습생이 아니라 합치면 “경력 100년”이라는 개그우먼들이고, 멤버 구성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나 ‘국민 프로듀서’가 아니라 먼저 들어온 멤버들의 결정에 따른다. 셀럽파이브의 활동 과정 담은 유튜브 채널 비보TV의 ‘판벌려’ 영상에서 이미 합류를 확정한 멤버들이 YG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안영미에게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합격 여부를 말하는 장면은 이 팀이 누구의 것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김신영이 일본의 여고생 댄스팀 tdc의 춤을 춰보고 싶어 송은이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만들 수 있던 팀이었고, 그들은 tdc를 만나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는 것부터 홍보까지 직접 결정하고 해결한다.

송은이와 함께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 등 여러 활동을 함께 하는 김숙이 출연했던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한국의 걸그룹들이 대부분 어떻게 제작되는지 보여줬다. 출연자들은 노래와 춤 트레이닝을 받고, 프로듀서가 정한 콘셉트에 어울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보다 많은 사람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셀럽파이브는 걸그룹의 기준을 스스로 다시 설정한다. 과장된 화장을 한 채 맨발로 춤을 춘다. 노래 ‘셀럽파이브’의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서는 춤추기 편하게 스타킹의 발뒤꿈치 쪽을 잘라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tdc가 췄던 원래의 춤에 비해 군무가 딱 맞아떨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MBC ‘쇼 챔피언’에서 ‘셀럽파이브’를 불렀을 때, 마치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1에서 정채연이 그랬던 것처럼 노래 마지막에 김신영의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그리고, 환호가 쏟아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다른 걸그룹들이 받던 반응을 이끌어냈다.

‘셀럽파이브’는 ‘반전세 4천에 60’을 사는 여자가 ‘셀럽’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합치면 경력 100년에 이르는 셀럽파이브 멤버들의 경제 사정은 아마도 이 노래 가사보다는 낫겠지만, 그들의 상황은 그리 만만치 않다.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기점으로 다시 주목받은 송은이를 제외하면, 셀럽파이브의 멤버들은 이전 만큼의기는 얻지 못하고 있다. 능력 문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능력을 검증받을 기회조차 거의 없다. SBS ‘미운 우리 새끼’, ‘동상이몽 2 - 너는 내 운명’ 같은 리얼리티 쇼는 미혼 남성 또는 부부가 주인공이고, 대부분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들은 남성 중심으로 구성돼 10여 년간 방송 중이며, 새 멤버 역시 대부분 남성으로 선정된다. 결혼하지 않은 30대 개그우먼은 tvN ‘코미디 빅리그’ 같은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딱히 설 자리가 없다.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 중인 박나래 정도가 예외적인 경우다. 송은이는 아예 스스로 제작한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을 통해 지상파로 돌아왔다. 

‘셀럽파이브’에서 ‘한 방’의 기준이 ‘실검 1위’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매스미디어에서 노출될 기회가 없는 그들이 주목받는 방법은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트위터 트랜딩, 유튜브 댓글 등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는 것뿐이다. 셀럽파이브 같은 기획이 방송사를 통해 제작될 수 있다면, 그들은 그 자체로 수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MBC ‘무한도전’의 출연자들이 춤을 배워 행사를 나가거나, 유재석이 보이그룹 EXO와 한 무대에 서거나‘언니들의 슬램덩크’처럼 여성 연예인들이 기존 걸그룹의 연습 과정을 따르는 경우는 있어도 셀럽파이브 같은 팀의 이야기가 TV 예능 프로그램의 틀 안에서 다뤄지는 것은 많지 않다. ‘셀럽파이브’의 가사는 그들의 현재인 동시에 그들이 살아남는 방식이다.  TV에 출연해서 돈을 벌려면, 일단 ‘실검 1위’에올라야 한다. 그들은 일부러 새로운 길을 찾은 것이 아니다. 길에서 밀려난 위치를 악전고투 끝에 새로운 길처럼 보이게 한 것 뿐이다. 

매스 미디어의 힘을 좀처럼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팀의 사실상 프로듀서인 송은이는 끊임없이 ‘판’을 벌려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TV프로그램의 대안을 찾아나갈 수 밖에 없다. 셀럽파이브가 화제를 모은 것은 ‘쇼 챔피언’ 무대지만, 이 팀이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는지 보여주는 것은 그가 만든 콘텐츠랩 비의 유튜브 채널 비보TV에서 만든 영상 ‘판벌려’를 통해서다. 이 영상들을 통해 셀럽파이브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보여주고, 송은이와 김신영이 일본으로 가서 tdc를 만나 안무 사용을 허락받았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설명한다. 이슈를 통해 화제가 된 팀이 유튜브에 쌓아둔 콘텐츠로 관심을 이어가는 것은 마치 아이돌 그룹이 팬덤을 늘려가는 것과 비슷하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TV를 중심으로 활동한 40대 중반의 연예인이 TV 바깥에서 누군가 화제가 되는 과정을 이해하면서 유튜브 시대에 어울리는 리얼리티 쇼를 만들었다. 송은이와 김신영이 일본에 가는 에소드나 멤들의 연습 과정을 담은 영상들은 지금 유튜버나 아프리카 BJ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유튜브와 페이스북 영상의 어떤 감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크기와 스타일이 제각기 다른 폰트들이 툭툭 튀어나오고, 종종 얼굴이 잘려나간 영상이 편집되지 않고 나오기도 한다. 그만큼 거칠고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리얼하며 즉흥적인 느낌이 강조되고, 편당 5분 내외의 러닝타임과 함께 누구나 쉽게 다가설 수 있다. 그 결과 셀럽파이브는 걸그룹의 제작 과정을 ‘언니들의 슬램덩크’ 같은 리얼리티 쇼로 제작하되, 그것을 지금 유튜브의 스타일 안에서 뒤집어버린다. 그 결과 세 개의 장르적 특성을 디테일하게 따라가면서 갖고 놀아버렸고, TV와 유튜브 어디서든 시선을 끈다. 

송은이의 의도가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TV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 있던 사람이 직접 팟캐스트 등을 제작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미디어를 이해하게 됐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송은이는 유튜브나 팟캐스트를 TV와 연결하고, 무언가를 ‘실검 1위’로 만들 수 있는 자체 플랫폼이 되어가고 있다. 김숙과 김생민이 송은이와 팟캐스트를 하며 도약의 기회를 마련한 데 이어 이제는 김신영이 먼저 송은이에게 찾아왔다. 김신영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퍼뜨리며, 현재 소속사의 협조를 통해 연습실까지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송은이뿐일 것이다. 한국에서 아직은 많지 않은 여성 예능 제작자의 등장이다. 그는 효과적으로 판을 벌릴 줄 안다.  그리고 다방면으로 능력을 보여준, 심지어 유명한 인물이 여전히 자신의 주무대인 TV 프로그램에서 활약할 기회가 많지 않은 것은 정말 의아한 일이다.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이 등장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최근 몇 년간 송은이만큼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준 예능인이 몇 명이나 있었나. 

송은이가 스스로 전환점을 만들어내고, 셀럽파이브를 통해 다른 개그우먼들까지 부각시키는 과정은 마치 MBC에브리원 ‘무한걸스’의 역사를 다시 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한걸스’는 MBC ‘무한도전’의 여성 버전으로 제작됐다. 그만큼 ‘무한도전’의 틀을 여성 출연자에 맞춰 바꾸는 것을 기본으로 했고, 당시 프로듀서가 아닌 플레이어였던 송은이의 역할 역시 그 안에서 출연자들을 조율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반면 셀럽파이브의 경우에는 여성 예능인들이 또 다른 여성들의 분야인 걸그룹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끌고 갔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여성 예능인의 현재와 그들이 현실을 바꿔가는 과정이 담긴다. 누가 제작을 하느냐가 얼마나 많은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다. 과연 TV가 이 새로운 예능에 대해 자리를 내어주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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