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유기’, 제작진의 소명을 찾아서

2018.01.29
‘화유기’의 모티브가 된 오승은의 ‘서유기’는 삼장법사의 81가지 수난기를 담은 소설이다. 원작에서는 그런 삼장을 구하느라 고생하는 손오공의 수난이 더욱 두드러지지만, ‘화유기’는 손오공(이승기)을 풀어준 죄로 삼장이 된 진선미(오연서)가 유치하고 제멋대로인 요괴들을 어르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정말로 삼장의 수난기에 가깝다. 오행산에서 자신을 구해준 어린 진선미에게 자기 이름을 부르면 언제든 와서 도와주겠다고 했던 손오공은 약은 술수로 이름에 대한 기억을 일부러 앗아간다. 20여 년 뒤에 그를 만난 진선미는 “사기 치고 나타난 분”이라고 빈정대며 “늙은 진선미”라고 깐족대는 그에게 “내가 제법 잘 늙어서 스스로를 지키며 꽤 잘 살아가고 있다”고 대꾸한다. 또한 연예기획사 대표인 우마왕(차승원)은 진선미에게 전속 계약서를 들이밀기도 한다. 삼장이 손오공을 불러내 함께 악귀를 해치우면 우마왕의 선행 포인트가 쌓여 신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화유기’는 고대 중국의 이야기보다 훨씬 시끌벅적하고 우스꽝스럽다. 이런 분위기의 핵심은 요괴가 현대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설정이 있다. 삼장의 피로 되살아난 부자(이세영)는 뇌와 신체가 더 썩을까 봐 “김치 냉장고의 아삭 살얼음 모드”로 얼려진 채 돌아다닌다. 그사이 요괴들은 부자가 죽은 이유를 찾기 위해 일부러 유튜브에 부자가 춤추는 영상을 찍어 올린다. 예전에는 기껏해야 그림을 타고 옮겨 다니면서 인간을 홀리던 악귀들은 이제 엄청난 전파 속도를 지닌 SNS를 통해 사진과 동영상에 숨어들기도 한다. 심지어 요괴들은 악귀를 처치하기 위해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모이고, 손오공은 채팅방에 자신만 초대되지 않았다고 삐지기까지 한다. 단지 신비로운 요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요즘 한국 사람들의 삶을 결합해 웃음의 소재로 삼았다.

그러나 ‘화유기’는 이 설정을 진지하게 파고들어가지 못한다. ‘화유기’에는 과도한 다이어트 욕구를 이용해 인간의 기를 빨아들이는 악귀나, 자기 자신에 대한 비하를 하게 만들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악귀 등이 나온다. 이런 에피소드는 현재의 한국을 보여줄 수 있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성의 욕망은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그럼에도 용궁의 왕자가 하필 들어간 몸은 다이어트에 목을 매고 명품을 좋아하는 앨리스(보라)다. 그리고 앨리스의 몸에 들어간 왕자가 그의 가슴을 잡으며 웃음을 일으키려는 식이다.

악귀를 잡을 때만 해도 가장 심각한 사안처럼 다뤄지던 사회 문제가, 오히려 시체를 아름답게 꾸며주는 요소로 활용되거나 캐릭터를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묘사하는 데에 쓰인다. 모든 캐릭터에 제각기 독특한 인상을 불어넣어 흥미를 돋운 것은 흥미롭지만, 역으로 그 캐릭터들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웃음을 일으키려는 장치들이 캐릭터가 등장한 근본적인 이유와 충돌한다. 제작진들이 스스로 무슨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화유기’의 에피소드들은 신문 사회면에서 소재를 가져와서, 순간순간 웃음을 일으킬 수 있는 농담으로만 써먹는다. 드라마 전체가 마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웃기는 순간들을 조각 모음 한 것처럼 보인다.

결과적으로 삼장의 위대한 소명은 점차 잊힐 수밖에 없다. 그는 반드시 일어날 흉사를 보여준다는 흉항아리에서 핵전쟁에 버금가는 수준의 폭발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도시 하나를 날려버릴 수 있는 거대한 악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지금 ‘화유기’에서 이 사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인다. 심지어 삼장조차도 손오공이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가늠하느라 자신의 임무를 잊어버린 듯하다. 나중에 삼장을 잡아먹기 위해 손수 양념을 고아 만드는 손오공이나, 아이스크림을 파는 동장군이라는 설정은 이른바 ‘병맛’이라고 표현되는 서브컬처의 괴이한 정서를 TV로 재치 있게 옮겨오기도 했다. 한국의 톱스타들이 모두 요괴라는 설정은 “현빈이 요괴인 걸 들키지 않으려고 해병대에 간 거”라는 우스운 대사를 가능케 하기도 한다. 하지만 믿기 어렵게도, 이 드라마는 그게 다다. 때론 웃기기보다 불편하기까지 한 웃음 외에는 어떤 일관성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모든 시청자들이 알고 있듯, ‘화유기’ 촬영현장에서 벌어진 안전사고와 안 좋은 의미로 ‘역대급’인 방송사고는 이마저 웃을 수 없게 한다. ‘화유기’에 관해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삼장의 소명 이전에 자신들의 소명이라도 알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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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박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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