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채팅방’에 들어갔다

2018.02.08
지난 3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에서는 박명수가 ‘고독한 박명수’ 방에 들어가는 모습이 나왔다. “사진만 올려야 되요. 글 쓰면 욕 먹어요”라는 양세형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박명수는 채팅창에 ‘안녕하세요 박명숩니다’라는 글을 썼고, 본인의 사진으로 한바탕 공격을 당해야 했다. 그 채팅방에 접속해 있던 902명의 사람들은 대화를 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박명수와 관련된 이미지만을 올리는 ‘고독한 채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박명수가 인증샷을 올리기 전까지의 일이었지만, 그 방의 주인공조차도 룰을 지키지 않으면 욕을 먹는 모습은 ‘고독한 채팅방’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얼핏 말없는 채팅이 가능할까 싶지만, 이 룰에 적응하는 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맨 처음 한 ‘고독한 아이돌(가명)’ 방에 접속했을 때, 채팅방 상단에 걸린 ‘타 그룹 타 멤버 사진 금지, 대화 금지, 예의에 어긋나면 바로 강제 퇴장’ 등의 공지사항은 다소 위압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끊임없이 이미지를 올렸다. 재미있는 점은 이미지만으로도 소통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주로 요청이나 질문이 있을 경우에만 한하는데, 해당 아이돌의 이미지 위에 ‘오늘 행사 사진 좀 주세요’, ‘안경 쓴 사진 많이요’라는 간단한 메시지를 쓰는 방식이다. 텍스트 콘을 사용하거나 대화창에 메시지를 쓰고 전송하는 대신 그 화면을 캡처해서 이미지로 올리는 것도 허용된다. 적절한 ‘짤’을 주고 받는 것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할 때도 있다. 이 재미에 빠지면 ‘그냥 말로하면 될 걸….’ 이라는 생각은 사라지고, 요청사항을 쓰기 위해 그림판을 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고독한 채팅방’은 포털 사이트에 온갖 키워드를 넣어가며 원하는 이미지를 찾는 수고를 덜어준다. ‘어디서 나온 사진이냐’는 질문에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찍힌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이(물론 이미지 위에 써진 글자로) 돌아온다. 끝없이 올라오는 사진들을 바라보며, 가끔 네이버 지식인에서 발견하곤 했던 ‘OOO 잘생긴 사진 좀 주세요. 최대한 많이요’라는 글이나 네이트판 아이돌 관련 게시물에 줄줄이 달려있던 사진 댓글들을 떠올렸다. ‘유치원 졸업 사진’이라는 누군가의 짧고도 단호한 요청에 학사모를 쓴 약 20여 년 전 아이돌의 얼굴이 올라올 정도다. 훨씬 효과적이고 빠른 ‘입덕의 입구’가 열린 것이다. 게다가 이 ‘덕질’은 좀처럼 멈추는 일도 없다. 5-6개의 ‘고독한 채팅방’에 동시에 접속하니 받은 카카오톡 메시지의 최대치인 ‘999+’가 순식간에 채워졌다. 속도가 빠른 방의 경우 이미지 하나하나를 터치해 크게 보는 일조차도 버겁게 느껴질 정도다.

‘고독한 채팅방’에 입장할 때는 자신의 원래 프로필 사진 대신 카카오톡 이모티콘 이미지를 사용할 수 있고, 채팅방마다 닉네임도 다르게 설정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닉네임으로 마침표 하나를 쓴다. 대화를 하지 않기 때문에 닉네임마저도 필요 없다.‘고독한 채팅방’의 시작이 ‘고독한 고양이’ 방이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충분히 납득할만한 선택이다.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배제한 채, 귀여운 고양이 사진을 끊임없이 보면 됐다. 이는 마치 커뮤니티의 단점을 보완한 대체재처럼 보인다. 과거를 떠올려보자. 어떤 관심사가 생기면 관련 커뮤니티에 가입한 후 ‘등업’을 기다린다. 정회원이 되면 가입인사를 쓰고, 매달 몇 개씩 글을 올려야 등급이 유지된다. ‘고독한 채팅방’에는 이런 번거로운 절차가 없다. 같은 대상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한 공간에서 자신의 데이터베이스를 차별 없이 공유한다. 사람들을 강제하는 대신, 각자가 주체적으로 ‘고독한 채팅방’의 룰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평화는 유지된다.

직접 들어가 본 한 ‘고독한 개그맨(가명)’ 방에서는 ‘고독한 채팅방’의 룰과 자신만이 원래 프로필 사진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남성이 다른 참여자들의 성별을 집요하게 물어보며 ‘카톡 친구’를 요구하다 모두의 제지를 받아 쫓기듯 퇴장했다. ‘고독한 동물방(가명)’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누군가 가상화폐 링크를 올리자 이에 항의하듯 성난 동물들의 사진이 집단으로 올라왔다. 이는 참여자들이 스스로 커뮤니티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고독한 아이돌’ 방의 경우 안티 팬의 습격을 받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에 팬들만 알 수 있는 암호로 차단코드를 걸거나, 트위터에서 불시에 차단코드를 공개하는 방식으로 입장을 제한하기도 한다.

‘고독한 채팅방’은 오픈 채팅의 익명성과 강요 없는 결속력, 그러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관계가 있다. 기존의 커뮤니티와는 다르지만 특별한 노력 없이도 좋아하는 것을 접할 수 있고,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있다. 그리고 타인과 부담 없이 연결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고독해지면서 오히려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소리 없는 커뮤니티의 등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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