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제이홉의 소박한 믹스테잎

2018.03.05
방탄소년단의 멤버 제이홉이 지난 2일 발표한 믹스테잎 ‘Hope world’는 무료로 다운로드 할 수 있다. 한국 음원차트에는 등록도 되지 않았고, TV 출연 역시 없다. 하지만 미국 주간지 ‘타임’은 제이홉과 ‘Hope world’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Hope world’ 발표 직후 제이홉이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네이버 V앱 라이브는 중계 당시에만 100만명 이상이 시청했다. ‘Hope world’에 수록된 ‘Daydream’의 뮤직비디오는 그를 비롯한 방탄소년단 멤버의 현재다. 이 영상 속에서, 제이홉은 침대 위에 누워 있다. 하지만 침실 벽이 사라지면서, 그는 광활한 자연 앞에 놓인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소소한 생활도 넓은 세상에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 뮤직비디오에서 그가 세상에 노출되는 순간은 해방감을 준다. 비좁은 느낌을 주던 공간이, 벽이 사라지자 가로로 넓게 탁 트인 것으로 바뀐다. 이것은 제이홉이 앨범의 첫 곡이기도 한 ‘Hope world’에서 보여주는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나를 말하자면, 매일같이 D-day /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는 일생 / 삶에 대한 기대가 만든 인생 / 나 자신을 믿고 일을 하는 20대’. ‘눈뜰 때마다 매거진 1면’(‘항상’)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는 인생이다. 그러니 ‘미치고 놀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큰 욕구는 자제’(‘Daydream’)해야 한다. 하지만 제이홉은 ‘낙관주의자 답게 그저 즐겁게’ (‘Hope world’) 살아가려 한다. 믹스테잎 속에서 제이홉은 팀의 엄청난 성공 속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려는 단단한 자아를 전달한다.

제이홉은 방탄소년단의 ‘DNA’ 무대 마지막에 가운데 서서 곡의 가장 흥겨운 부분을 주도했다. 한 방송 관계자는 방탄소년단의 무대를 녹화할 때, 그가 끊임없이 멤버들의 에너지를 북돋는다고도 했다. 팀의 리더 RM은 자신 외에 누가 리더에 어울리겠냐는 질문에 제이홉을 꼽았다. ‘Hope world’는 방탄소년단 활동에서 그렇게 조각처럼 조금씩 드러난 제이홉의 모습들을 완성시킨다. 에너지가 넘치고, 긍정적이며,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다.
‘Hope world’가 자신으로부터 세상에 나아가는 과정을 그리는 것은 그 자체로 그를 설명한다. 제이홉은 ‘Hope world’에서 자신을 정의하고, ‘P.O.P(Piece of Peace)’에서 ‘누구든 실수를 하고 고통도 받아’라며 자신이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Daydream’에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어려움에 대해 ‘삶에 갈증으로 인한 욕망이란 그물’이라 표현하며 ‘한 번쯤 다른 나의 인생 그림’을 그리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방탄소년단의 성공에 대한 스웨그나 초심에 대한 다짐은 ‘Street Dance 10년’부터 자신의 근원을 찾아 나가는 ‘Base line’ 이후에 등장한다. 개인에 대한 답을 내고, 점차 바깥 세상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그 사이 ‘첫 일본 행의 설렘’(‘Airplane’)과‘모두 적이었고 우리 편은 아무도 없었’던 시절을 거치며 ‘내 Bro와 나란히’(‘항상’) 걸었던 기억들을 되새긴다. ‘Hope world’는 제이홉이 어떻게 지금에 이르렀는가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방탄소년단의 멤버가 어떻게 어른이 되어가는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 점에서 방탄소년단의 믹스테잎은 멤버 각자의 이야기인 동시에 방탄소년단이라는 본편의 캐릭터와 서사를 더 깊게 만드는 외전들이기도 하다. 또다른 멤버 슈가는 믹스테잎 ‘August D’에서 데뷔부터 현재에 이르는 자신의 인생을 말 그대로 털어놓았다. ‘치리사일사팔(724148)’은 데뷔 전까지 자신의 인생에 관한 다큐멘터리나 다름 없었다. 반면 제이홉은 슈퍼스타가 된 지금, 방탄소년단의 멤버가 무엇을 중요시하고, 어떤 꿈을 그리는지 보여준다. 또한 그가 끊임없이 노력하며 멤버들과 함께 성장하려는 과정은 학교 뒷자리의 반항아들로 출발한 이 팀이 어떻게 ‘쩔어’처럼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성공을 열망하는 곡을 부르게 됐는가에 대한 단서다. 방탄소년단은 믹스테잎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과정에서 그들의 현재를 반영하며 과거를 보충하고 팀과 멤버들의 성장과 변화를 담는다. ‘Hope world’나 ‘P.O.P(Piece of Peace)’가 보여주는 음악적인 방향도 마찬가지다. 두 곡은 힙합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후반부에 브릿지를 넣으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등 아이돌의 댄스음악에서도 들을 수 있는 구성이다. ‘Daydream’은 힙합보다 댄스곡으로서의 흥겨움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이를 통해 제이홉은 앨범 전반부에서 유쾌하고 에너지 넘치며, 래퍼이자 댄서인 그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또한 ‘DNA’ 이후 장르를 통해 자신들을 설명할 필요가 없어진 팀의 현재이기도 하다. 믹스테잎이라는 형식, 유통방식, 개인적인 메시지라는 점에서 ‘Hope world’를 비롯한 방탄소년들의 믹스테잎은 작고, 개인적인 작업처럼 보인다. 그러나 ‘Hope world’는 방탄소년단의 멤버와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모두 이 팀의 믹스테잎이 팀의 성장에 비례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의 움직임은 작지만, 그 의미는 팀의 역사만큼 누적되고, 파급효과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Hope world’에 방탄소년단의 정식 앨범 스태프들이 그대로 참여한 것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마스터링까지 방탄소년단 앨범을 비롯, 아델과 테일러 스위프트의 앨범도 작업한 랜디 머릴이 그대로 참여했다. 그 결과 ‘Hope world’는 일반적인 믹스테잎의 범위를 한참 벗어난 녹음을 들려준다. ‘Hope world’의 앞 부분에서 제이홉의 보컬이 마치 나레이션처럼 선명하게 녹음 돼 있다면, ‘Daydream’은 비슷한 톤이지만 미묘하게 울림을 주면서 제목처럼 약간 몽롱한 느낌을 준다. 반면 현실에서 알람이 울리는 소리는 마치 옆에서 알람이 울리는 것처럼 생생하다. 사운드마다 조금씩 거리감을 다르게 하고, 음향 효과를 곁들여 입체감을 주는 동시에, 건반 연주가 조용히 곡을 이끌어갈 공간까지 남겨둔 ‘Daydream’은 이 믹스테잎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Hopeworld’는 제이홉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믹스테잎이다. 다만 곡마다 수공예품처럼 정교하게 깎고 다듬었다.

다시 말하면,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트는 여전히 믹스테이프가 무료 다운로드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곡들로 방송 활동을 할 필요도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콘텐츠는 믹스테잎 답지 않게 투자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이들은 이 작은 행보가 팀의 전체적인 그림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고, 무엇이 필요한지도 아는 듯 하다. 방탄소년단의 성공 원인을 한두가지로 설명할 수는 없다. 이 기록적인 성공에는 꽤 많은 우연과 행운도 있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우연과 행운이 일어나기 쉬운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Hope World’는 그 증거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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