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 스트립│② 위대한 배우의 40년

2018.03.13
메릴 스트립은 세상에서 가장 잘 활용되어 온 배우 중 한 명이다. 그는 자신의 뛰어난 재능과 노력 앞에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때, 그리고 그 과정이 대중의 화답을 받았을 때 여성 아티스트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런 그가 여성이기 때문에 어떤 아이러니한 일을 겪어야 하는지를 목격하게 해주는 더할 나위 없는 예시이다. 클래식 할리우드 이후 현대의 연기 문법 안에서 메릴 스트립은 여성 배우로서 자신에게 기대되던 욕망과, 때로는 그를 재단하고 박음질 되려던 이미지를 끊임없이 분해해왔다. 그는 그렇게 존재했고, 가장 또렷하게 살아남았다. 그러니 정확하게 말하면, 메릴 스트립은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잘 활용해온 ‘여성’ 배우다.
세상은 그를 보고 성별을 통틀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라는 거창한 수식어로 불러도 누구도 쉬이 반박할 수 없을만큼 변했다. 이제는 아주 예외적이었고, 그렇기에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되었던 이 배우의 역사를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메릴 스트립은 남성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여성에게 마치 허락된 상찬처럼 붙던 여성 배우의 기준을 세운 배우가 아니라, 여성 배우의 앞을 가로막던 기준들을 무너뜨려준 사람이다.


1970년 대 후반 - ‘디어 헌터’

예일 드라마스쿨을 다니던 28살의 메릴 스트립은 뉴욕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캐스팅이 되고, 그 직후 영화 데뷔를 했지만 자신이 평생을 영화배우로 살게 될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어머니를 따라 상업 미술을 하거나, 한 번 보거나 읽으면 외우는 ‘포토그래픽 메모리’를 살려 국제기구에서 통역을 하는 것이 어린시절의 꿈이었던 그에게 영화 배우는 세상에 무언가를 공헌 할 만큼 대단한 직업이 아니었고, 영화와 TV는 좋아하는 연극을 하면서도 생활고를 해결해 줄 일거리였다. 메릴 스트립의 얼굴을 본격적으로 알린 ‘디어 헌터’도 당시 암투병 중이던 연인 존 카제일의 마지막을 함께 해주기 위해 선택한 영화였다. 메릴 스트립이 맡았던 린다는 원래 대본 상에 대사가 거의 없었는데, 마이클 치미노 감독이 두 남자 주인공 사이의 가련한 연애상대로 존재할 린다를 설정만 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릴 스트립은 촬영 전에 대사를 직접 거나 즉석에서 연기해야 했는데, 이런 일은 메릴 스트립의 커리어 초기에 반복 되었다. 그는 자주 자신의 캐릭터가 얼마나 평면적인지에 대해서 남성 감독과 작가, 혹은 상대 배우에게 설명하고 대사를 고칠 것을 설득해야 했다. 상대에게 ‘페미니즘 깃발 흔들지 말고 연기나 하라’는 조롱을 듣기도 했고, 언쟁 중에 위협을 당해 무서워 떨면서도 그는 멈출 수가 없었다. 대본에 묘사 된 여성들은 자신이 아는 여성들의 모습과 달랐고, 그런 연기를 하는 것은 거짓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싸워서 만들어 낸 역할들로 필모를 채우기 시작했고, 영화계에 얼굴을 각인시킨지 3년도 되지 않아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한다. 누군가에겐 스타가 되기에 너무 평범해 보였고, 누군가에겐 이른바 ‘안고 싶을 만큼’ 편한 이미지가 아니었던, 어딘가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이 여성 배우는 그렇게 새로운 할리우드를 이끌 얼굴로 소개 되기 시작한다.

1980년대 - ‘실크우드’

1980년 대는 메릴 스트립에게 마치 한 배우가 평생에 걸쳐 쌓을 하이라이트를 응축해 놓은 듯 폭발하는 시기다. 메릴 스트립은 불과 영화 3,4편에 조연으로 출연했을 뿐이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이미지가 벌써부터 고정되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다. 마른 몸에 긴 금발을 치렁거리는, 인생경험 부족한 슬픈 눈의 어린 여성의 모습에 자신을 가둬두려던 분위기가 마치 죽을 것 같이 숨이 막혔다는 그는 자신을 증명 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자마자 그 기대를 보란듯이 깨부수어 나간다. 주연으로서 극을 장악하는 능력을 처음 보여준 ‘프랑스 중위의 여인’, 전세계적인 유명세를 얻게 해준 ‘아웃 오브 아프리카’, 노라 에프론의 자전적 캐릭터를 연기한 ‘제 2의 연인’, 억울하게 누명을 써 나라 전체에 아이를 죽인 엄마로 몰린 린디 챔벌린의 실화 ‘어둠 속의 외침’ 까지. 악센트와 외모 심지어 호흡까지 완전히 바꾸어 버리는, 이제는 너무 당연해 가끔 대단함을 간과하게 만드는 변신을 매 영화마다 무섭게 보여준다. 메릴 스트립은 명실공히 미국의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여성 배우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갑작스런 유명세를 불편해했고, 연기를 스포츠 처럼 경쟁시키고 여성배우들을 이간질 시키는 것이 영화보다 더 재밌는 구경거리인 할리우드에 환멸을 느꼈다. “진지하게 연기에 대해서 말할 공간이 필요하다”던 메릴 스트립의 말은 마치 절규처럼 들린다. 그는 곧 동세대 최고의 여배우라는 육중한 타이틀을 받아들이고, 그 이름 아래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한다.
핵발전소의 방사능 오염 문제를 혼자서 밝혀 내려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노동자 카렌 실크우드의 이야기를 다룬 ‘실크우드’ 메릴 스트립이 처음으로 “진짜 유명해져서 영화화 되는데 내 힘을 보탤 수 있었던” 영화다. 이 때 메릴스트립이 만든 재단의 활동은 여성 예술가 후원으로 시작해 장애인과 성소수자, 동물권까지 전방위로 나아간다. 비록 배우로서는 누구나 (Anybody) 될 수 있지만 개인으로서는 그 누구도 아닌 이 (nobody)로 살고 싶다던 그의 소망은 이뤄질 수 없었지만, 메릴 스트립은 유명인으로서 자신의 영향력이 실제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음을 인지한 것이다.

1990 년대 - ‘리버 와일드’

혹시 여태까지 나열한 이 천재의 성공가도가 너무 순탄하고 매끄럽게만 느껴졌다면, 지금부터는 조금의 버라이어티가 추가된다. 메릴 스트립이 마흔이 된 것이다. 여성배우에게 만큼은 우스워질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던 할리우드의 시계를 메릴 스트립도 피할 수는 없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마흔이란 참 무서운 나이였다. 마흔이 되자 스튜디오에서 알람을 맞춰놓고 일제히 대본을 보내기로 약속이라도 한듯 마녀 역할 제의가 쏟아져 들어왔고, 아무 이상 없이 활동하던 주변 여성 배우들이 마흔만 넘으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삼 십대 후반이 되었을 때 메릴 스트립은 가족들에게 이제 배우로서는 끝났으니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한다고 했을 정도.
물론 동세대 여성배우 중 유일하게 남성 명배우들과 비견되던 메릴 스트립이 그렇게 쉽게 뒤안길로 사라질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할리우드는 마흔이 된 메릴 스트립을 어찌 대해야 할 바를 몰랐다. 그들에게 그는 주인공 엄마 역할을 주기엔 무거운 존재감의 배우였고, 어리지 않은 여성 배우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은 너무나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메릴 스트립은 많은 이들의 우려 섞인 기대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인다. 그는 캐리 피셔의 자전적 영화 ‘헐리웃 스토리’를 비롯해 ‘그녀는 악마’, ‘죽어야 사는 여자’ 같은 코미디 영화를 선택하는데, 비평가들은 마치 바라기라도 했던 듯 메릴 스트립의 내리막길을 예상한 야박한 평가들을 했지만 그저 저평가 되기에는 억울한 시기다. 그의 코미디들은 컬트적 인기를 끌었고, 그는 여전히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원 트루 씽> 의 공예같이 정교한 연기로 아카데미에 오르는 배우였다.
사실 이 때 메릴 스트립의 필모에서 가장 흥미로운 영화는 그가 모든 액션을 직접 소화 한 레저 스릴러 오락물(?)인 ‘리버 와일드’일 것이다. 그가 이 영화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어린 딸들 때문이었는데, 엄마여도 육체적으로 강하고 흥미로운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였다고. 그는 많은 엄마를 연기했지만, 그는 늘 고전적인 모성애 중심적인 서사에서 조금씩 비켜나간 엄마를 연기했다. 그의 ‘엄마’들은 아이들로 하여금 실수를 했고, 때로 가정보다 자신의 꿈이 더 중요했으며, 무엇보다도 다양한 겹을 가진 인간이었다.

2000년대 - ‘어댑테이션’

켄 번즈는 메릴 스트립이 ‘소피의 선택’을 끝으로 은퇴했어도 전설로 남았을 거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그만큼 메릴 스트립은 데뷔 5년 만에 오스카를 두 번 수상한, 너무 빨리 성공가도에 오른 사람이었다. 재능있는 여배우가 새로 등장하면 응당 ‘넥스트 메릴 스트립’이라고 불리는 것이 당연해졌고, 언제부턴가 그는 최고의 배우와 동의어가 되었다. 하지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세상이 자신을 향해 붙여주는 떠들석하고 위대한 이름들에 매몰되지 않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길을 선택한다. 그러니까, 
마치 디폴트처럼 여우주연상 후보에만 오르던 메릴 스트립이 딱 20년 만에 <어댑테이션>으로 다시 골든글로브 무대에 올랐던 순간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디 아워스’와 ‘엔젤스 인 아메리카’까지 그는 쉴 틈이 없이 새로운 메릴 스트립을 쏟아낸다. 그가 이때 맡은 캐릭터들은 별다른 악센트를 쓰지도 않고, 드라마틱한 외모 변신을 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어댑테이션’의 수잔 올린은 흥미로울 수 밖에 없는 캐릭터다. 실제 자신에서 덜하지도 더 꾸미지도 않은 것 같은 53살의 메릴 스트립이 필모를 통틀어 그렇게 섹슈얼하게 소비되는 모습이 어떻게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메릴 스트립을 할리우드에서 가장 예외적인 커리어를 가진 배우로 만들어준 결정적 시기는, 그 뒤부터 시작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맘마미아’를 시작으로 ‘줄리 앤 줄리아', ‘사랑은 너무 복잡해’ 의 연이은 대흥행은 예순이 된 메릴 스트립을, 전세대의 전설적인 여배우가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팔리고, 가장 많이 언급되고, 가장 치열하게 존재하는 배우로 만들었다.
1999년도에 제이 레노는 자신의 토크쇼에 초대 된 메릴 스트립을 “여성 영화도 남성 영화도 아닌” 영화를 만드는 배우라고 표현했다. 조금 괴상하고 위험한 발언이겠지만,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메릴 스트립은 메릴 스트립의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2010년대 - ‘어바웃 리키’

언젠가 메릴 스트립은 미움 받고, 별나고, 불편한 여성을 연기하는 것이 자신 인생의 패턴인 것 같다고 했다. 그들의 삶을 세상에 대변하는 것이 자신이 가진 책임감이라고. 메릴스트립의 필모그래피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오르거나 영향력을 가진 인물들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관객들은 영화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메릴 스트립을 봐야 했다. 감정을 내보이거나 실수를 하면 여성이라서 그런다는 공격을 받았던 마가렛 대쳐 (‘철의 여인’), 꿈을 위해 가족과 떨어져야 했던 락커 리키 (‘어바웃 리키’), 이제 나이 든 여성을 악마화 하려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허락했다는 ‘숲속으로’까지. 그는 여전히 오해받고 사랑하기 어려운 여성들을 사랑한다. 
그런 면에서 ‘더 포스트’의 캐서린 그레이엄은 단연 특별할 수 밖에 없는 인물이다. 캐서린은 우리가 늘 봐왔던 선하고 올곧으며 희생을 감수하고 고뇌를 하는, 그리고 끝내 승리까지 하는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동세대 남성배우들에게는 쉽게 허락되었지만, 온갖 역할과 장르를 섭렵했고, 그 누구도 견줄 수 없는 커리어를 가진 여성 배우에게는 어쩐지 허락되지 않았던 그 자리. 캐서린 그레이엄은 개인적으로 필자가 보고 들어온 메릴 스트립과 가장 가깝게 겹쳐 보이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의심했고, 사람들 앞에 서서 발언을 하는 것을 두려워 하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나섰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변화를 위해서는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쓰여진 글을 읽고, 옆에서 함께 힘을 보태주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에. 
 자기비하적인 유머가 트레이드 마크가 될 정도로 겸손한 이 천재는 자신이 후세대 여성 배우들을 위해서 한 일이 “여성배우가 마흔 넘어도 커리어를 가질 수 있는 것을 보여준 것” 뿐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배우의 책임을 다 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재판이 끝나고 계단을 내려오는 캐서린 그레이엄을 기다리던 그 다양한 여성들의 얼굴이, 영화 밖 메릴 스트립을 보는 현실의 우리와 꼭 포개지는 그 장면이 다른 대답을 해주고 있지 않은가. 당신이 한 발 앞에서 견뎌내고 있는 무게 덕분에 이젠 많은 사람들이 소리치고 있다고. 당신의 존재가, 당신이 영화를 찍는 행위가 지금도 누군가에겐 방패가 되고 갑옷이 되고 있다고.





목록

SPECIAL

image 최종범 사건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