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안영미와 강유미의 지금

2018.03.14
안영미는 KBS 공채 개그우먼으로 데뷔 후 1년 동안 이렇다 할 일이 없었다. “캐릭터가 애매해서 아무도 저와 코너를 짜지 않으려고 했다”(MBC ‘휴먼다큐-사람이 좋다’)는 이유다. 그가 강유미와 함께 한 코너들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보여줬다. ‘Gogo 예술 속으로’는 대중문화와 미디어의 여러 장르적 속성들을 한 번 더 꼬는 풍자 코미디였다. ‘분장실의 강선생님’은 개그우먼들이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채 위계질서를 앞세우는 한국의 선후배 관계를 비꼬았다. 뛰어난 풍자 코미디이기도 했지만, 두 코너는 개그우먼의 타고난 외모나 여성에 대한 편견을 웃음거리로 삼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를 못생겼다고 비하하지도, 남자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지만 대사는 좀처럼 없는 ‘개그콘서트’의 전형적인 예쁜 여자 캐릭터를 연기하지도 않았다. ‘개그콘서트’는 2015년에 ‘김치녀’를, 2017년까지도 “병신년이 가고 2017년 정유라가 왔습니다.”라는 대사를 웃음의 소재로 삼았다. 그만큼 오랫동안 여성혐오를 아이템으로 이용하는 프로그램에서 이런 코미디의 대상이 되기에는 “캐릭터가 애매”한 안영미는 좀처럼 들어갈 곳이 없었다. ‘휴먼다큐-사람이 좋다’에서 안영미가 말한 것처럼, 그에게 처음 손을 내민 사람도 강유미였다.

예쁘거나, 체구가 크거나, 체구가 작거나, 또는 자신의 외모를 비하하지 않는 여자들. 2004년 데뷔한 안영미와 강유미의 이력은 “캐릭터가 애매”한 이 여자들이 어떻게 생존했는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외모를 강조해 웃음을 일으키는 대신 ‘Gogo 예술 속으로’처럼 풍자를 하고, ‘분장실의 강선생님’처럼 자신의 진짜 얼굴이 아닌 기발한 분장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래도 강유미는 외모에 대한 악플에 시달렸고, 양악 수술을 하고 난 뒤에는 “성형수술 하고 나서 안 웃긴다”는 식의 악플이 달렸다. 지난 8일 ‘MBC 스페셜’에서 여성 예능인들을 조명한 ‘2018 언니는 살아있다’에서 강유미가 말한 “여성 예능인들은 인기를 누리다가도 완전히 극비호감으로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강유미의 방송 활동이 줄어든 것은 호감과 비호감의 차원이 아니었다. 안영미는 2011년 시작한 tvN ‘코미디 빅리그’ 출연 이후 성적 코드를 섞은 코미디를 적극적으로 선보였다. 안영미와 tvN ‘SNL’에 출연하기도 했던 신동엽의 성적 농담이 ‘섹드립’이라는 환호를 받는 때였다. 신동엽은 이런 이미지를 바탕으로 JTBC ‘마녀사냥’ 같은 성인 대상 토크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녀사냥’에서 안영미가 신동엽의 옆자리에 앉는 일은 없었다. 풍자를 하든 ‘섹드립’을 날리든, 호감이든 비호감이든 두 사람에게는 좀 더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끊이지 않는 것은 외모와 사생활에 대한 참견과 논란뿐이었다.

‘2018 언니는 살아있다’에 따르면, 현재 지상파와 종편, tvN을 모두 합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남녀 출연자의 성비는 72.4:27.6이다. 안영미가 장기간 고정으로 출연한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MBC every1 ‘무한걸스’ 한 편뿐인 이유다. 남자 예능인은 MBC ‘무한도전’, ‘라디오스타’, KBS ‘해피선데이’의 ‘1박 2일’ 등 장수 예능 프로그램들에 출연할 수 있다. KBS ‘해피투게더 3’는 메인 MC 유재석과 사적으로 친한 지석진, 김용만, 김수용 등을 묶어 새 코너를 만들기도 했다. 반면 유재석과 ‘해피투게더 3’를 10여 년 진행한 박미선은 하차했다. 여성 예능인에게는 ‘무한도전’에서 파생된 ‘무한걸스’ 같은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 정도가 기회다. 최근 가장 활발하게 활동 중인 박나래와 김숙도 역시 같은 채널에서 ‘라디오스타’의 파생 프로그램인 ‘비디오스타’에 고정 출연한다.

안영미와 강유미가 점점 더 극단적인 코미디를 선보이는 것은 필연적이다. 강유미는 시사 프로그램인 SBS ‘블랙하우스’에서 3.1절에 서울 광화문에 모인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태극기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희망촛불’ 조형물을 파손시키는 등 일부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강유미가 보디가드의 보호를 받기는 했지만, 위험한 현장이었다. 강유미는 인터뷰를 진행하며 긴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블랙하우스’가 강유미를 활용하는 방식은 취재 윤리의 측면에서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리고 강유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현재 강유미와 안영미가 출연 중인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은 단 한 편도 없다. 강유미는 유튜브에서 ‘좋아서 하는 채널’을 운영하며 스스로 시청자를 만날 방법을 찾기도 했다. 송은이가 불러주는 방송사가 없어 팟캐스트를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다. 안영미는 ‘코미디 빅리그’와 ‘SNL’에서 이른바 ‘미친 자’ 캐릭터로 주목받았지만,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보기는 어려웠다. 최근 ‘무한도전’에 셀럽파이브가 출연했을 때, 그의 코미디는 다른 출연자들이 짐짓 말리는 척하는 유별난 것으로 다뤄졌다. 주목받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모습을 선보여야 하지만, 그 때문에 부담스러운 캐릭터처럼 여겨진다. ‘미친 자’가 되어 주목은 받아도, 그다음의 길은 좀처럼 없다.

안영미는 JTBC ‘밤도깨비’에서 송은이, 김숙, 박지선과 함께 출연했다. 그는 여기서도 ‘섹드립’을 하고, 말없이 특정 단어를 설명하는 게임을 할 때 ‘미친 자’처럼 분위기를 주도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오랫동안 친분을 쌓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나왔고, 송은이는 안영미에게 무언가를 시키며 그가 코미디를 선보일 기회를 만들었다. 여성 예능인들 역시 남성 예능인처럼 모이면 게임을 하고, 코미디를 선보이고, 서로 분위기를 띄우며 논다. 남성으로 구성된 ‘밤도깨비’ 고정 출연자들과 방송 분량을 놓고 벌인 대결에서는 이들이 승리하기도 했다. ‘밤도깨비’에서 보여준 안영미의 활약은 여성 예능인이 다수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못하는 이유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그들은 함께 모이면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서 요구하는 웃음을 끌어낼 수 있고, 특정 캐릭터가 아닌 다양한 면모와 관계를 가진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다. 박미선이 ‘2018 언니는 살아있다’에서 말한 것처럼 “온몸에 진흙을 바르고도 버틸” 준비도 돼 있다. 박미선이 ‘해피투게더 3’에 고정 출연하게 된 계기 역시 우스꽝스러운 분장으로 화제가 돼서였다. 그러나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그사이 안영미와 강유미처럼 외모를 특징으로 삼지 않는 여성 예능인들부터 방송에서 보기 어려워졌다. 그리고 다른 여성 예능인들도 “완전히 극비호감으로 돌아서는” 순간을 거치며 TV 출연 횟수가 줄어들었다.

그 점에서 안영미와 강유미, 그 앞의 송은이와 김숙 등의 부상은 지워지다시피 한 여성 예능인의 역사를 스스로 복원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2018 언니는 살아있다’에서 1980~90년대의 대표적인 여성 예능인으로 거론된 박미선, 이성미, 이경실 등은 각자 다른 유형의 코미디로 인기를 얻었다. 박미선은 당시 보기 드문 스탠드업 코미디로 데뷔했고, 이경실은 토크쇼를 진행하기도 했으며, 이성미는 재치 있는 멘트가 주무기였다. 송은이 역시 작은 키가 아닌 진행 능력을 통해, 또는 ‘무한걸스’에서 후배들을 이끄는 ‘송선배’와 같은 캐릭터로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안영미와 강유미가 활동하는 지금은 여성 예능인이 인터넷을 통해 직접적으로 외모에 대한 비난을 받고, 풍자나 토크 코미디를 하려 해도 출연할 프로그램 자체가 없다. 여성 예능인들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팟캐스트와 유튜브로, 또는 태극기 집회에 나선 리포터로 악전고투하면서부터였다. 지금 여성 예능인은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모여서 기회를 찾는다. 그리고 남성이 그러하듯, 다양한 방식으로 웃길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오랜 시간 마치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송은이와 김숙에 이어, 안영미와 강유미의 세대가 그것을 다시 증명하는 중이다. 기회가 없으면, 스스로 “온몸에 진흙을 바르고” 버티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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