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리틀 포레스트’

2018.03.19
한국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원작은 무엇인가? 영화 크레딧상으로는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만화 ‘리틀 포레스트’ 1, 2권이지만, 주인공 혜원(김태리)이 자전거를 타고 숲길을 달리며, 물건을 사러 나가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 곳에 살고 있음을 내레이션으로 알리는 순간을 첫 장면으로 택한 쪽은, 만화가 아닌 모리 준이치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영화다. 만화를 영상으로 옮긴 두 작품은 만화와의 유사성 이상으로 서로 닮아 보인다.

한국영화 ‘리틀 포레스트’와 일본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 ‘리틀 포레스트 2: 겨울과 봄’(이 두 편을 재편집해 한 편의 영화로 만든 ‘리틀 포레스트: 사계절’은 한국판 이후 개봉했다)의 공통점은 분명 원작으로부터 기인한다. 가장 크게는 드라마적 기승전결이 없이 계절의 흐름을 따라 진행된다는 점. 출생의 비밀도, 누구 하나 귀신임이 밝혀지는 일도 없이, 봄이 되면 산수유 꽃이 피고, 여름에는 더위와 싸우며 농사를 짓고, 가을에는 감을 따고, 겨울에는 눈을 치운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계절과 무관하게 모든 것을 마트에서 사 먹지만, ‘리틀 포레스트’의 사람들은 자연의 속도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심고 거두고 먹는다. 도시에서와는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계절이 오고 가는 모습을 하염없이 보는 동안 상영 시간이 끝난다.

뜻밖에도 음식이 비슷하고, 정서가 달랐다. 한국판에서, 찬장에서 모짜렐라 치즈를 꺼내 파스타 위에 뿌리거나, 가쓰오부시를 깎아 오코노미야키 위에 뿌리는 대목에서는 극장에 헛웃음 소리가 작게 퍼졌다(다들 냉장고에 파티 때 쓰고 남은 캐비어 한 통 정도는 있잖아요?). 감을 떼어 곶감을 만들고, 이파리며 꽃에 튀김옷을 입혀 튀김을 해 먹는다. 추울 때 수제비를 끓여 먹거나 한다. 한국 쪽은 더 칼칼한 국물이지만. 하지만 영화가 전개되는 호흡이나 감정의 온도 같은 것들은 한국판과 일본판 사이에 꽤 차이가 있다. 첫째, 주인공의 회상 신을 제외하고 아이들이 등장하는가. 둘째, 남자가 요리하는 장면이 등장하는가. 셋째, 주인공의 연애사는 어떻게 처리되는가.

첫 번째는 상영 시간의 차이로 인해 생기는, 등장인물의 선택과 집중 문제에서 비롯된 듯하다. 혹은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지도. 한국판에서 아이는 어린 혜원뿐이다. 일본판이 여러 세대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잇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래서 주인공 이치코가 계절 요리들에 능숙하다는 설정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다면, 혜원과 그 친구들은 노인뿐인 고장에 뚝 떨어진 유일한 젊은이들로 보인다. 백년 뒤에도 산수유 꽃은 피겠지만 이 마을은 존재하고 있을까? 마지막 장면의 차이는 이런 차이를 더 극명하게 드러낸다. 두 번째, 재하는 혜원이 만든 떡을 먹고는 혜원의 어머니가 만들었던 추억의 맛과의 차이를 짚어낸다. “달지 않지만 달았고 짜지 않지만 짜다”는 느낌적 느낌으로 충만한 코멘트의 주인공 재하는, 농사는 지어도 요리하는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일본판에서는 동네 남자들이 밤조림을 만드는 데 재미를 붙인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몇 장면이라도 있느냐 없느냐 정도의 차이뿐 요리는 여자 몫으로 그려지긴 마찬가지다.

세 번째는 가장 눈에 띄는 차이다. 한국판은 혜원이 혼자 지내는 시간만큼이나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다. 개 오구는 성견이 되기 전까지 혜원과 이불을 함께 덮는 사이인 것으로 보이며, 트럭 운전석에 앉아 요상한 미소를 짓던 남자는 알고 보니 옛 친구인 재하(류준열)로, 재하를 마음에 둔 은숙(진기주)은 혜원에게 그를 넘보지 말라고 경고한다. 재하의 옛 여자친구가 동네에 찾아온 모습을 보고 은숙은 혜원에게 한탄한다. “피부가 너무 하얘. 상대가 안 돼.” 재하는 옛 여자친구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라고 말하고 돌려보낸다. 누구? 누구야! 일본판은 그렇지 않다. 일본판에서 주인공과 그 절친인 여자 친구 사이에는 연적으로서의 긴장은 없다. 옛 남자친구 얘기를 제외하고는 남자 얘기를 하지도 않는다. 셋이 시간을 같이 보내지 않는다. 친구와 후배는 결혼해 아이를 낳고, 이치코는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이치코는 혜원보다 더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낸다. 이치코는 살아 움직이고 세대가 이어지는 공동체에 속해 있고, 혜원은 친구들이 아니고는 다른 이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막연한 이상향과 가능한 대안, 한국판과 일본판의 차이는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실제 농촌의 공동체가 처한 상황이 그 차이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으리라. 하늘에서 뚝 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이야기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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