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① 떠날 때 박수 치다

2018.03.20
MBC ‘무한도전’이 오는 31일 방송을 중단한다. 종영은 아니다. 아직은. MBC는 보도자료를 통해 “김태호 PD는 당분간 준비할 시간을 갖고 가을 이후 ‘무한도전’ 새 시즌 또는 새 기획으로 다시 돌아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석하기에 따라 완전한 끝일 수도, 당분간의 휴방이라고 할 수도 있다. 애매한 입장이다. 하지만 당연하다. 방영 12년째인 지금도 토요일 저녁에 1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 중인 프로그램이다. 12년 전에는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장르를 만들었고, 12년 동안 한국 예능 프로그램 전체의 주인공 역할을 했다. 연출자 김태호 PD를 포함해, 누가 ‘무한도전’의 종영을 확정하는 무게를 질 수 있겠는가. 하지만 더 이상 부인할 수도 없다. ‘무한도전’이 계속 방영된다 한들, 대체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

예능 프로그램 자막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프로그램이 ‘박보검나 웃겨’ 같은 자막으로 인터넷에서 조소의 대상이 돼서만은 아니다. “자신감이 철철 넘치면 노력 없이도 가능하다”는 스스로의 말처럼 무엇을 해도 웃기던 박명수가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젼’의 인터넷 방송에서 ‘웃음 사망꾼’이라는 판정을 받아서도 아니다. 길과 노홍철과 정형돈이 차례로 떠났기 때문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 때문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미 ‘무한도전’을 따라 하던 그 많은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은 사라지거나 쇠퇴했다. 지난해 MBC ‘연예대상’에서 ‘무한도전’을 제치고 ‘시청자가 뽑은 올해의 예능프로그램’이 된 ‘나 혼자 산다’는 리얼 버라이어티가 아닌 관찰 예능이다. 그런데 ‘무한도전’은 여전히 리얼 버라이어티의 영역에 있다. 웹툰 작가 기안84는 ‘나 혼자 산다’에 고정 출연하며 자신의 생활상을 보여주지만, ‘무한도전’은 기안84를 초대해 그에게 웹툰 작업하는 법을 배운다. 오래 전 패션쇼에 도전하던 그때처럼, ‘무한도전’은 지금도 멤버들이 무엇에 도전하거나 배우고 있다.

지난 17일 여자 컬링 국가대표 팀이 출연했을 때, ‘무한도전’은 이 팀의 결성 과정, ‘안경선배’ 김은정 선수의 경기 중 표정 등을 모은 이미지를 보여줬다. 인터넷에서 이미 퍼질 만큼 퍼진 것들이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미처 끝나기 전부터, SNS를 비롯한 인터넷에는 여자 컬링 국가대표 팀에 대한 수많은 자료가 올라왔다. 사람들은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멤버들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들어갔다. 미셸 위, 효도르, 앙리가 나오던 당시, 이것은 ‘무한도전’의 일이었다. ‘무한도전’을 통해 스포츠팬들 위주로 유명했던 그들이 지상파 시청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다. 그때 ‘무한도전’은 TV 바깥의 유행, 감각, 취향의 집결지이자 교차로였다. 출연자들을 공격하는 자막은 DC인사이드를 비롯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도는 ‘드립’과 같았다. 패션쇼 도전 같은 장기 프로젝트는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하는 외국 리얼리티 쇼를 고정 출연하는 예능인 중심의 버라이어티 쇼와 결합했다. 그 과정에서 ‘돈 가방을 갖고 튀어라’로 대표되는 추격전처럼 출연자가 쌓은 캐릭터와 현실을 배경으로 한 게임이 만들어낸, 현실과 드라마 사이의 어디쯤에 있는 독특한 장르가 생겨났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보는 미디어에서 소수가 즐기던 요소들이 더해져 모두의 열광을 끌어냈다.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아이돌 그룹처럼 열광의 대상이 되고, 연출자가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는 위치에 오른 것 역시 처음 있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개그우먼들이 결성한 걸그룹 셀럽파이브는 유튜브와 케이블 채널 음악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화제에 올랐다. MBC ‘무한도전’ 출연은 그다음이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무한도전’을 통해 TV 바깥의 새로운 요소들을 접하지 않는다. 모두가 스마트폰을 가진 시대에, 그들은 직접 웹툰과 유튜브를 소비한다. 고정 출연하는 멤버들이 에피소드마다 새로운 이슈나 아이템에 도전한다는 틀 아닌 틀은 ‘무한도전’이 새로운 요소를 흡수할 수 있는 혁신을 위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대중이 리얼리티 쇼, 유튜브, 웹툰을 소비하는 시대에, 그것은 ‘무한도전’이 에피소드를 끝낼 때마다 제자리로 돌려놓는 원점이 됐다. 멤버들은 점점 나이 들어갔고, 이슈가 흘러가는 속도는 TV 예능 프로그램이 따라가지 못할 만큼 빨라졌다. ‘무한도전’이 ‘가요제’를 다루는 방식은 그들의 변화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출연자들끼리 낄낄대며 기존 음악 페스티벌을 패러디한 것 같던 아이템이, 어떤 뮤지션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진짜 페스티벌이 됐다. ‘무한도전’은 더 이상 마이너리티가 아니었고, 새로운 영역을 발굴하기보다 그들의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투표나 한일 문제 같은 사회적 이슈로 화제를 모으고, 어느 프로그램에서도 보기 어려운 게스트들을 섭외했다.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예능 프로그램에 걸맞은 행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파업 기간과 지난해 잠깐의 휴식을 제외하면, 쉼 없이 같은 연출자와 멤버가 10년 이상 매주 목요일마다 모여 ‘무한도전’을 외쳤다. 시대도 프로그램의 규모도 달라졌지만 쇼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변하기 어려웠다. SNS가 일상이 된 세상에서 유재석은 이제야 자신이 ‘유저’라 부르는 이들에게 SNS를 통해 접근할 방법을 고민한다. 공적, 사적으로 다양하게 얽혀 있는 남자들이 그 관계를 카메라 앞에서 보여주는 것은 이미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이 보여주고 있다. ‘무한도전’의 경쟁자였던 KBS ‘해피선데이’의 ‘1박 2일’을 만든 나영석 PD는 tvN으로 가서 강호동부터 유시민에 이르는 출연자들과 함께 다양한 스타일의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이 프로그램들은 ‘무한도전’처럼 예능인 중에서 새로운 멤버를 뽑을 필요도 없고, 김태호 PD가 오랫동안 원하던 시즌제로 제작된다. 가장 혁신적이며 모든 것에 열려 있던 프로그램이 10여년 이 흐르는 동안 스스로 장르이자 거대한 영역이 되면서 이른바 ‘현역 레전드’가 됐다. ‘무한도전’만이 부여받을 수 있는 호칭이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살아 있는 화석이 됐다는 확인이다. 그래서 ‘무한도전’의 끝 아닌 끝은 TV 시대의 종언처럼 보인다. ‘무한도전’이 상징하는 TV 콘텐츠의 역할과 위상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을 수 없다.

종영도 시즌 2 확정도 아닌 ‘무한도전’이 방영 중단을 2주 남긴 지금, 이번 주 ‘무한도전’의 에피소드는 멤버들의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방영할 예정이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남자들이 모여 성장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던 프로그램은 예전처럼 친구들을 모아 자신들끼리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하지만 과거처럼 격렬하게 뛰어다닐 수는 없다.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친구의 부탁에 따라 고향에 함께 내려가거나 건강 검진을 받는다. 지난 세월 동안 ‘무한도전’이 겪은 변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름의 수미상관이자, 모든 것을 쥐어짜느라 정작 마지막을 위한 무엇을 더 하기는 어려운 ‘무한도전’의 현재다. 17일 방영분에서도 ‘무한도전’의 방영 중단은 마지막에 등장한 ‘이미 마음은 (방영 중단) 스탠바이 중’ 같은 자막으로 잠깐 언급됐을 뿐이다. TV 밖의 수많은 세계와 사람들을 TV로 안내한 그들은, 정작 자신들을 위한 제대로 된 마무리는 하지 못하고 있다. ‘무모한 도전’ 시절부터 13년, 힘차게 결승선을 통과한 대신 쓰러지는 순간까지 ‘끝’을 말할 수 없는 사람들. 그러니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저 박수를 보내는 수밖에. 그래도 여기까지 달려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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