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검의 영화가 보고 싶다

2018.03.21
박보검의 JTBC ‘효리네 민박 2’ 출연은 대단한 사건이었다. 성별, 성정체성, 나이 불문 “보검이”를 봐야 한다며 평창동계올림픽 때만큼 스마트폰 메신저가 떠들썩하더니, “내용이 웃긴 것도 아닌데 그냥 웃음이 난다”거나 “난 (이성애자) 남자인데 윤아가 부럽다”며 방송 내내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효리네 민박 2’는 박보검의 등장과 함께 JTBC 역대 예능프로그램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진행하는 광고모델 브랜드평판 조사에 따르면, 박보검에 대한 대중의 긍정적 반응 비율이 무려 97.82%(2016년 10월 기준)다. 참고로 지난 2월에 1위를 차지한 인물의 긍정 비율은 84.87%였다. 사람들은 그를 ‘박보검’이 아닌 ‘보검이’라 부르며 친근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영화계에 살짝 발을 걸치고 일을 하는 입장에서 의아한 것은 다른 업계에 비해 영화계가 박보검에게 ‘상대적으로’ 덜 반응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미 여러 프로젝트가, 그중에서는 상당히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도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다만 대부분 1순위로 거론된다는 방송계나 현재 14개 브랜드 모델로 발탁된 광고계만큼은 아니다. 한 영화감독은 “아무리 인기가 많다고 해도 아직 스크린에서의 힘은 검증되지 않았다”며 드라마로 신드롬급 인기를 누렸지만 영화판 실적은 그에 미치지 못했던 몇몇 남자배우의 이름을 거론했다. 또 다른 영화인은 사석에서 “요즘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다”는 이유로 굉장히 엉뚱한 이름을 차세대 티켓 파워로 거론해 주변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박보검이 지금까지 가장 비중 있게 출연했던 영화는 ‘차이나타운’으로, 기존 느와르 장르에서 여성 배우가 소모되던 방식을 젊은 남자 배우에게 적용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배역이었다. 하지만 극 중에서 가장 납득할 수 없는 캐릭터라는 비판도 받았다. 자신이 기억하는 것은 대책 없이 사채업자에게 친절함을 베풀던 ‘차이나타운’ 속 모습뿐이라며 “솔직히 지금만큼 뜰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는 관계자도 있었다.

박보검에 대한 영화계의 반응은 과거 김수현과 송중기의 케이스를 떠오르게 한다. 김수현의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관객 수는 695만, 송중기의 ‘늑대소년’은 665만을 기록했다. 두 작품이 흥행할 때마다 영화계에서는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나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왜 몰랐어요?”라고 되묻고 싶었다. 영화계가 20대 스타들에 대해 검증을 원하는 것은 사실이다. 드라마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배우가 영화에서는 실패한 사례가 많기도 하다. 그러나 송중기는 ‘늑대소년’에서 맑은 얼굴을 가진 순수한 소년의 모습을 보여줬고, 김수현은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엄청난 전투력을 가졌으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품은 캐릭터를 연기했다. 두 작품 모두 당시 배우가 보여준 매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문제는 검증이 아니라, 인기 있는 20대 배우를 좋아하는 소비층이 원하는 작품을 기획하지 못하는 데 있는 것 아닐까.

영화 제작자 A는 “박보검이 해준다고 하면 반기지 않을 사람이 있겠나. 그런데 작품 선택을 굉장히 신중하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몇 년간 그를 캐스팅하고 싶었던 작품들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불발됐다. A는 이에 대해 “물론 톱스타일수록 작품 선택을 까다롭게 하기는 한다. 하지만 할 만한 역할이 많지 않고, 그 안에서 고민하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운 게 아닐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보검은 tvN ‘응답하라 1988’에서 친구들 중 누구보다도 빨리 어른이 돼야 했으면서도 무해한 청년의 모습을 동시에 가진 최택을, KBS ‘구르미 그린 달빛’에선 선하고 여린 마음씨를 가졌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정치적 숙제를 피하지 않는 세자 이영을 연기했다. 근본적으로 선하고 다정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이 있는 두 캐릭터는 박보검이 기존에 가졌던 매력을 보다 다양한 모습으로 확장시켰다. 그런데, 과연 지금의 한국 영화는 박보검에게 이런 캐릭터를 줄 수 있을까. 지난해 내내 극장에서 볼 수 있었던 한국영화들은 상당수가 30대 이상의 남자 배우들이 검사, 조폭, 형사 등을 연기하며 거친 마초 캐릭터를 연기하곤 했다. 박보검이 자신의 장점을 살릴 만한 작품은 좀처럼 제작되지 않고, 있다 해도 그가 맡기에는 비중이 너무 적거나 소모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드라마에서 인기를 얻은 스타를 출연시키는 데는 철저한 검증을 하는 영화계는, 종종 다른 경우엔 안이하게 느껴질 만큼 쉽게 투자와 제작을 결정하기도 한다. 영화에서의 아우라, 혹은 ‘잠재적 티켓파워’라는 이유로 기존의 ‘남자 영화’에 주·조연으로 몇 번 합류한 배우에게 바로 주연을 맡기기도 한다. 배우 라인업은 늘 비슷비슷하고, 역시 비슷비슷한 소재가 이어지지만, 이런 작품들에 관객이 언젠가 등을 돌릴지 모른다는 걱정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박보검마저 영화 출연을 결정할 만한 작품을 찾기 어렵다는 것은 지금 한국 영화계에 어떤 얼굴들이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의미다. 상냥하고 예의 바른 남자, 젊은 배우, 그리고 제대로 된 역할이 주어진 여성 캐릭터들. 이 중에서 상업적 기대를 걸어볼 법한 인물까지도 유독 영화계에서는 과소평가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박보검을 비롯한 흥행성을 가진 20대 배우들이 연기할 만한 캐릭터가 늘어난다면, 그것이야말로 한국 영화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가 아닐까. 한국 영화가 위기라면, 정말 왜 위기인지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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