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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프라이어, 문명의 정수인가 덧없는 꿈인가

2018.03.26
©필립스
칼로리는 맛의 단위라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도대체 튀겨서 맛없는 게 있나? 종이조차 튀기면 맛있다고 한다. 그러나 100년 전이라면 모를까, 튀김을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먹을 수 있는 현대인은 드물다. 기름지지만 몸에 좋은, 최소한 나쁘지는 않은 음식을 바라면 너무한 걸까? 에어프라이어는 건강한 튀김이라는 망상 혹은 형용모순을 실현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노릇노릇한 돈가스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돈가스 껍질이 맛있는 것은 갈변물질인 멜라노이딘 때문이다. 식품을 고온으로 가열하면 아미노산과 환원당 사이의 화학 반응으로 독특한 맛과 향을 가진 멜라노이딘이 만들어진다. 이것을 마이야르 반응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튀김은 이를 일으키기 위해 식품을 뜨거운 기름에 푹 담그는 반면, 에어프라이어는 최고 200도의 열풍을 고속으로 순환시킨다. 기름 대신 뜨거운 공기를 사용해 노릇노릇한 층을 만드는 것이다.

필립스는 2010년 에어프라이어를 출시하며 ‘혁신’이라는 표현을 썼다. 기름을 아예 안 쓰거나 가볍게 뿌리고 마니 결과물의 칼로리는 훨씬 낮다. 기름이 안 튀니 화상이나 바닥 청소 걱정이 덜하다. 남은 기름을 버리면서 지구의 적이 된 기분에 우울해질 일도 없다. 기름을 에어프라이어에 직접 뿌리거나 옆에 가연성 물질을 두지만 않으면 화재 위험도 적어서, 어린이나 주의력이 어린이만 못한 어른이 있는 집에 특히 알맞다.

제일 중요한 맛은 어떤가? 기름을 아낌없이 쓰는 것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 모두 안다. 세상은 그런 곳이 아니다. 칼로리는 맛의 단위라는 사실이 재확인될 뿐이다. 그래도 편리하고 안전한 것은 분명하며, 종류에 따라 어떤 음식은 제법 그럴싸하니 절충안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 대표적으로 프렌치프라이와 닭튀김이 있다. 꼭 튀김이 아니라도 스테이크나 생선구이처럼 노릇노릇한 것이 생명인 요리에 적합하며, 머핀이나 키시, 하다못해 시나몬롤까지 만들 수 있다. 관건은 얼마나 골고루 노릇노릇해지느냐이다. 기름을 균일하게 도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우니 아예 적당히 기름이 있는 재료가 좋다. 바로 생각나는 것이 한국인이 주기적으로 섭취하는 삼겹살이다. 통삼겹살을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스위치만 누르면 기름이 쪽 빠져서 겉은 바삭하게 완성된다. 입이 심심하면 군고구마나 군밤을 만들고, 어쩐지 불량식품이 당기는 날에는 얄팍한 오뎅을 바싹 익혀 과자처럼 먹는다.

에어프라이어에 가장 적합한 요리는 사실 냉동식품이다. 돈가스나 만두 같은 것은 기름을 뿌릴 필요도 없이 노릇노릇하게 완성된다. 치킨이나 피자 등 남은 배달음식을 데워 먹으면 정말 잘 샀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귀찮아서라도 안 먹을 냉동식품을 편리하니까 툭하면 해 먹을 수 있다. 순전히 건강 때문에 구입을 고려한다면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에어프라이어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고 지금도 성장 중이다. 숱한 브랜드에서 출시되고 있지만 여전히 필립스가 단연 호평이고 가격도 독보적이다. 소형 가전은 활용하기 나름이라서 자칫 처치곤란이 될 수도 있으니, 확신이 없다면 일단 저렴한 브랜드를 선택하는 게 좋다. 세척에 골머리를 썩이느니 아예 싼 걸 사서 주기적으로 바꿔준다는 입장도 참고할 만하다. 같은 원리인 컨벡션 방식 오븐을 이미 갖고 있다면 에어프라이어를 또 사는 것은 낭비일 수 있다. 오븐보다 발열이 적고 조리 시간이 짧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구매 전 돈과 공간의 여유, 무엇보다도 한 번 쓰고 처박은 소형 가전의 역사를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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