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여자 연예인을 공격하는 사람들

2018.03.28
걸그룹 AOA의 멤버 설현은 최근 악의적인 합성사진 유포자를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AOA의 팬카페에 괴로운 심정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네이버, 다음, 구글 등의 검색창에 ‘설현’을 치면 많은 사람이 그에게 공감은커녕 거리낌 없이 2차 가해를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설현의 ‘자동완성’과 ‘연관검색어’ 등에는 그의 사생활을 어떻게든 파헤치고, 합성사진을 보려고 했던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익명으로 키보드를 누르는 것 자체를 막을 방법은 없다. 다만 문제의 검색어들이 전 국민이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터넷 공간에서 그대로 노출되는 문제에 대해 짚고 넘어갈 수는 있다. 설현처럼 법적으로 명백한 피해자이자 2차 가해가 우려되는 일에 대해서도, 각종 검색 사이트는 관련 검색어에 대해 좀처럼 조치하지 않는다. 그 결과 가해자들은 대형 검색 사이트나 SNS 서비스의 검색어 기능을 이용해 자신들의 범죄 행각을 많은 사람들에게 손쉽게 퍼뜨릴 수 있다. 설현의 루머를 유포한 범죄자 중에는 페이스북을 이용한 경우도 있었다. 더 많은 ‘좋아요’를 받기 위해 저지른 일이었다. 반면 법적 조치를 취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뿐더러, 모든 가해자들처벌하기는 어렵다. 인터넷상의 자료들을 삭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디지털 성범죄에 관해서, 인터넷은 문자 그대로 ‘법 없는 세상’이나 다름없다.

“설현, 과거 남자친구 언급 ‘100일 동안 두 번밖에 못 봤다’ 왜?”, “설현, 깜짝 놀란 까닭은? 허벅지에 붙어 있는 게 대체 뭐길래?”, 설현 사건이 이슈가 된 뒤 몇몇 언론 매체들이 올린 기사 제목이다. 이 기사들은 “걸그룹 AOA 멤버 설현이 온라인상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설현이 화제인 가운데”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설현 사건 이후 검색어 유입을 노린 어뷰징 기사들이다. 설현의 피해를 헐리웃 스타와 묶어 여성 스타들의 신체 노출 사진을 게재하기도 한다. 이 기사의 제목 중 일부는 “테일러 스위프트도 당한 OOOO”였다. 검색 사이트는 2차 가해가 가능한 검색어도 검색 결과라는 이유로 방치하고, 언론은 그것을 방조하는 것을 넘어 자신들의 사이트 트래픽을 올리는 데 적극적이다. 엄연한 범법 행위라도 자동완성, 연관검색어 등에 오르면 어떤 여과 장치도, 비판도 없이 퍼지며 2차 가해가 가능해진다. 특정 키워드를 검색 서비스에 걸리게 할 ‘머릿수’나 ‘화력’만 보장된다면, 이 ‘법 없는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

걸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이 팬들 앞에서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발언하자, 그의 팬이라 주장하는 일부 남성들이 반발했다. 여성이 일상에서 여성이기에 겪는 일들을 다룬 이 소설을 읽으면 아이린이 ‘페미니스트’가 될 것이라는 이유였다. 그들 중에는 ‘페미니스트’가 되면 남자를 우습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책 한 권 읽었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사상을 재단하거나, 페미니스트에 대해 혼자만의 상상으로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를 뒤집어씌우는 것, 더 나아가 누군가의 사상을 검열하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굳이 공들여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언론이 누군가의 상상이나 망상에 대해 일일이 기사를 쓸 필요 또한 없다. 하지만 ‘아이린 82년생 김지영’, ‘아이린 페미’ 같은 단어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자, 꽤 많은 언론들이 ‘페미니스트 논란’이라는 문장이 들어간 기사를 올렸다. 단지 책 한 권을 읽었다는 발언만으로 페미니스트 여부를 따지는 것이나,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 ‘논란’이 될 일인가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없다. 대신 ‘논란’이라는 단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기사를 읽도록 유도할 뿐이다.

한 남자는 아이린의 독서생활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포토카드를 찢었다. 팬이었지만 이제는 팬이 아니라는, 그래서 돈을 쓰지 않겠다는 표현이다. 내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생계를 빼앗아 가겠다는 협박. 논리와 명분 대신 머릿수와 화력이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수단이 된 환경에서, 목적을 위해 상대의 가장 치명적인 부분을 노리는 것은 당연한 전략이나 자랑스러운 무기처럼 여겨진다. 아이린 이전에는 걸그룹 에이핑크의 멤버 손나은이 ‘Girls can do anything’이 적힌 휴대폰케이스를 사용하는 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비슷한 일을 겪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기준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 그것을 확산시키는 인터넷 서비스, 이에 대해 비판 대신 어뷰징 기사를 내놓는 언론 매체가 더해져 머릿수와 화력과 돈과 협박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이 만들어졌다. 대중의 이미지를 신경 쓰는 연예인, 그중에서도 보다 많은 사람들의 호감에 기반을 둔 음원, 행사, CF 등이 주 수입원인 걸그룹 멤버들이 유독 이런 식의 공격 대상이 되는 이유일 것이다. 이제는 명백한 디지털 성범죄까지 검색 사이트에서 검색만 해도, 더 나아가서는 기사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일반인이 특정 단체를 팔로잉 했다는 이유만으로 생계의 위협을 받기까지 했다. 인터넷에 올리는 글 수만을 앞세워 누군가의  ‘밥줄’을 끊는 폭력이 마치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당연한 수단처럼 사용되고 있다. 

비판을 제기한다고 해서 ‘좋아요’를 받기 위해 설현에 대한 악성 루머를 유포한 사람의 인성이 바뀔지는 모르겠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처벌일 뿐, 교훈을 배우도록 해야 할 이유도 없다. 다만 그것이 사회적으로 절대 용인될 수 없는 일이라는 명확한 선 긋기는 필요하다. 디지털 성범죄를 ‘좋아요’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 쓸 수 있고, 책 한 권을 읽었다고 말한 것만으로도 생계를 위협하겠다는 협박을 마치 똑똑한 전략처럼 여기는 사람들. 이것을 아무런 가치 판단 없이 검색어로, 기사로 퍼뜨리는 것이 정상적인 세상의 모습 같지는 않다. 국민 대다수가 연관된 기업, 그 기업을 통해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언론이 ‘좋아요’에 목매는 개인과 똑같을 수는 없다. 독일은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혐오 표현 게시물과 가짜뉴스 신고가 있을 경우 24시간 안에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리도록 한 바 있다. 문명 사회에서도 누군가는 소수자를 혐오하고, 사상을 검열하고, SNS에서 사이버 성범죄를 저지른다. 하지만 기업과 언론은 최소한 사회에 그것이 잘못이라는 사인을 보내야 한다. 이 당연한 이야기부터 굳이 해야 하는 것 자체가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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