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으로 고를 수 있는 우유 셋

2018.03.30
우유를 맛으로 고르고 먹기가 (안타깝게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 맛있는 우유를 먹고 싶다면? 여기 소개하는 세 제품과 평가 맥락 속에 요령이 담겨 있다.


유의 맛이라. 논하기 참으로 애매한 현실이다. 일단 우유 가격의 절반을 차지하는 원유가격연동제의 여건부터 좋지 않다. 한편 (준)강제급식의 트라우마도 있다. 초등학생은 왜 학교에서 우유를 마셔야만 하는가? 아무도 ‘맛’이라 답하지 않았다. 많은 어린이들이 마치 사육이라도 당하듯, 국가 구성원으로서의 우량한 발육을 위해 내키지도 않는 우유를 억지로 들이킨다. 좋다가도 싫어질 판국이다. 게다가 밥과 반찬 위주의 한식 식단에는 딱히 우유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리고 이 모든 부정적 요소에 방점을 찍듯, 아직도 한국의 우유는 온전히 맛을 위한 선택이라고 하기에 어려운 홀스타인종 일색이다. 맛이 더 좋은 저지종은 이제 시험 도입 중인 상황이지만, 그마저도 맛보다는 영양 등을 습관처럼 내세운다.

이런 여건에서 좀 더 나은 우유를 마시고 싶다면 어떤 요소를 살펴야 할까? 크게 무게, 단맛, 여운을 고려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유지방과 당이 중심인 상호작용을 세분화한 평가 기준이다. 일단 무게는 입에 처음 우유를 넣었을 때의 인상을 의미한다. 균형이라고 일컬어도 좋다. 지방이나 크림에서 비롯되어 부드러움 등을 따지다 보니 무겁고 진할수록 좋은 혹은 맛있는 우유라는 선입견이 있다. 과연 그럴까? 우유도 음료의 일종임을 감안한다면 목에 걸리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제품이 좋다. 맛없는 국산 맥주가 미친 듯이 강조하는 목넘김, 사실은 우유에게 더 중요할 수 있다. 놀라울 정도로 산뜻한 우유를 마신 경험이 여러 차례 있는데, 공교롭게도 국내에는 없는 저지종이었다.

두 번째의 단맛은 가공, 특히 멸균 방식과 관련이 있다. 대다수의 우유가 순간 살균을 적용한다. 명칭이 말해주듯 아주 높은 온도로 찰나 동안 살균하는데, 특유의 ‘익은 듯한’ 단맛이 다소 좁고 날카롭게 치고 나오는 특징이 있다. 반면 낮은 온도로 좀 더 긴 시간 동안 살균하는 우유는 단맛이 덜 날카롭고 폭도 넓다. 한마디로 좀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말이다. 마지막의 여운은 뒷맛이다. 깔끔함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지방을 함유한 음료이므로, 우유는 혀와 입 전체에 순간적인 막을 입히고 맛을 적극적으로 전달한다. 그래서 여운이 좀 길게 남을 수도 있는데, ‘무게’가 그렇듯 지나치게 길면 불쾌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우유의 여운이 지나치게 긴 가운데 특유의 찌든 맛을 남겨 비호감의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한다. 이 세 가지 지표를 바탕으로 십여 종의 우유 가운데 세 가지 제품을 꼽아보았다.

건강한 저온 살균 파스퇴르 우유 (롯데삼강 유업, 단위 가격 100ml당 267원, 63℃ 30분)

한국 우유의 맛을 논해야 한다면 출발점은 이 제품이어야만 한다. 실제로 파스퇴르 우유는 국내 최초로 저온 살균을 도입했다. 심지어 일말의 울분까지 느껴지는 신문 하단의 광고-그림은 거의 없고 기사만큼 빼곡한 밀도의 글로 채워져 있던-를 통해 창업주 최명재는 순간 살균 일색의 국내 우유 업계를 ‘가짜 우유’라 몰아붙이며 강하게 비판했다. 현재는 사업 주체가 롯데삼강으로 바뀌었지만 다행스럽게도 63℃, 30분의 저온 살균만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파스퇴르 우유의 미덕은 무엇일까? 바로 균형이다. 무게, 단맛, 여운의 세 점으로 정삼각형을 그릴 수 있을 정도로 균형이 잘 잡혀 있다. 마시면 일단 다소 가볍게 입 안 전체를 감싸듯 메우고, 그 뒤로 뭉근하지만 중심은 살짝 단단한 단맛이 고개를 잠깐 들었다가 천천히 뒷걸음질하며 여운을 남긴다. 다만 그 발걸음에 가속도가 붙어 미련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는 점이 특히 좋다. 덕분에 한 잔 이상을 마시기에 부담이 적고(유당불내증으로 고생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따라서 세 끼 식사 가운데 한 끼-특히 아침-를 빵 위주의 서양식으로 먹을 때 곁들이기 좋은 제품이다.

맛도 맛이지만 구매도 크게 어렵지 않다는 점 또한 출발점으로 삼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개인 사업체 위주인 동네 마트에서는 찾아보기가 아주 쉽지 않지만,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등의 프랜차이즈급 거점 마트에서는 꾸준히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대형 마트나 백화점 식품관 등으로 굳이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된다. 다만 3~4년 전에 포장을 바꾸면서 비닐 속마개를 붙여놓은 탓에 포장을 뜯기가 은근히 번거로워졌다는 점이 맛 바깥 영역의 단점이다. 한편 프리미엄 제품으로 ‘내 곁에 목장 유기농 우유(180ml들이 소포장, 단위 가격 100ml당 1,000원)’가 있는데, 72℃ 15분 살균이고 가격에 비해서 맛의 ‘메리트’가 크게 없어 보이니 참고하시라(깔끔한 유리병과 속마개 없는 플라스틱 뚜껑은 훌륭하다).

내추럴플랜 프리미엄 (야쿠르트유업, 180ml들이 소포장, 단위 가격 100ml당 833원)

‘‘130℃, 2초 이상’의 순간 살균으로 과연 무슨 프리미엄을 논하겠는가’라는 선입견을 품고 이 제품을 마셨다가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출시 직후였으니 2년도 더 전의 일이다. 제품의 주장처럼 오롯이 ‘목초를 중심’으로 키운 젖소와 우유 덕분이라고 굳게 믿고 싶지만, 그보다는 뚜껑을 열자마자 확인할 수 있는 크림층 덕분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강하게 치고 나오는 단맛 중심의, 통상적인 순간 살균 우유를 부드럽지만 무겁지는 않은 크림층으로 한 켜 씌웠달까. 마시면서 곰곰이 뜯어보면 우유의 원래 표정과 크림의 켜가 또렷이 구분될 것도 같지만, 적어도 180ml짜리 한 병을 기분 좋게 비울 정도의 산뜻함 및 균형 감각쯤은 큰 무리 없이 책임진다.

그런데 ‘크림 온 탑(Cream On Top)’-내추럴플랜 프리미엄은 인위적인 가공 단계를 줄여 자연스럽게 크림이 떠오릅니다’라는 문구는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특히 ‘인위적인 가공 단계’가 좀 걸린다. 과연 인위적인 가공이란 우유와 인간에게 나쁜 것일까? ‘완전식품’이라는 칭송부터 음모론의 소재까지 오늘날 우유의 입지가 참으로 다양한 가운데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소로부터 갓 짜낸 우유가 자연에 더 가까울 수는 있지만 인간에게는 딱히 더 좋지 않다는 점이다. 위생도 그렇지만, 지방구가 뭉쳐 있어 덜 균일하니 무엇보다 소화력이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아주 미세한 필터로 우유를 쏴서 이 유지방 입자를 잘게 부수는 균질화(homogenization)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물론 역삼투압으로 수분을 덜어내 우유가 좀 더 진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일종의 농축 공정 등도 생각할 수 있지만, 굳이 인위적인 가공이 부정적이라고 철썩같이 믿으며 우유를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우유 전체의 성격을 좌우하는 크림층의 매력을 감안한다면, 내추럴플랜 프리미엄은 다른 음식에 곁들이지 않고, 소포장 한 병을 간식처럼 먹는 맥락에 가장 잘 맞아 떨어진다.

천혜의 자연 제주의 성 이시돌 목장에서 키운 유기농 우유 (초록마을, 단위 가격 100ml당 511원)

‘야호 나는 대관령이 좋아’라는 광고 문구 덕분에 일부 세대는 강원도를 우유 생산의 중심지로 인식하지만, 제주도 또한 단일 원산지로서 강한 상표 가치를 지닌 우유를 생산하고 있다. 특히 성 이시돌 목장이 대표 격인데, 이미 1980년대에 ‘샘이 깊은 물’의 광고를 통해 모짜렐라 치즈를 사 먹었던 기억도 있으니 역사도 짧지 않다(목장은 1954년에 설립되었으며 우유 생산은 1980년대 중반부터 이루어졌다). 목장 자체 브랜드는 물론 SSG 등의 OEM 상표로도 먹을 수 있는 가운데 회원제(비회원도 구매 가능) 식품 전문 매장 초록마을 상표로 나온 유기농 우유를 골랐다.

유기농이라서 더 맛있을까? 확언할 수는 없다. 다만 인증이 보증(혹은 강제)하는 사육 및 생산 요건 등이 맛의 향상과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천혜의 자연 제주의 성 이시돌 목장에서 키운 유기농 우유(이하 ‘이시돌 우유’)에서는 명료함이 돋보인다. 입에 머금자마자 다가오는 짜임새가 다른 우유에 좀 더 충실하고 또 명료한데, 다만 가운데가 살짝 비어 있고 아주 풍성하다는 느낌은 아니다. 다만 그에 맞춰 여운이 지나치게 길거나 불쾌하지는 않아서 한 잔 이상을 마시기에도 부담이 없다. 최선의 맥락을 아주 정확하게 특정하자면 구운 지 얼마 안 된, 따뜻한 초콜릿칩 쿠키의 동무가 될 것이다. 뜨거움이 확연히 가셨지만 초콜릿이 채 굳지는 않은 정도의 따뜻함을 품은 쿠키를 볼이 미어져라 씹다가 씻어 내려주는 용도로 잘 어울릴 것이라는 말이다.

한편 제주 목초 우유(마켓 컬리), 강성원 우유(백화점 식품관), 또나따목장 밤에 짠 우유(업체 홈페이지 등)도 리뷰에는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맛을 위해서 선택해볼 만한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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