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이불 밖은 위험해’, 쉬러가서 탁재훈을 만나다

2018.04.11
지난 5일 방영을 시작한 MBC ‘이불 밖은 위험해’는 탁재훈의 ‘진상’을 집중적으로 보여줬다. 여러 명의 남자가 며칠간 숙식을 함께 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출연자들이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먹고 싶은 샤브샤브 재료를 사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혼자 장을 보느라 힘들게 짐을 들고 온 이이경을 타박했다. 심지어 다른 출연자들이 음식을 입에 떠먹여 주다시피 해도 인상만 쓸 뿐 먹지 않았다. 탁재훈은 올해로 만 50세가 된다. 그러나 ‘이불 밖은 위험해’에서 그의 언행은 오히려 재밌는 에피소드처럼 취급된다. 방송 분량도 길었을뿐더러, 제작진은 탁재훈의 언행을 과장스러운 편집으로 코믹스럽게 묘사한다. 제작진이 ‘이불 밖은 위험해’의 출연에 대한 이이경의 발언을 방영한 것은 그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보다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냥 맞추면 되니까. 형님 필요한 거 갖다 드리고 좋아하는 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이불 밖은 위험해’의 파일럿은 현재와 정반대에 가까웠다. 파일럿에서 출연자들은 숙소에 도착해도 다음 날 서로 자연스럽게 인사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출연자 중 이상우와 용준형은 아홉 살 차이가 났지만, 처음 만난 자리에서 존대를 했다. 파일럿의 출연자들은 같은 공간에 있다 해도 상대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하지 않았다. 당연히 식사도 각자 챙기거나, 역할을 분담했다. ‘이불 밖은 위험해’는 출연자들에게 3박 4일 동안 휴식 시간을 주고, 그들이 바깥에서 함께 여가를 보내도록 유도한다. 파일럿은 이 콘셉트에 충실했고, 쉬는 것이 가장 좋은 출연자들이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는지 지켜보는 것이 초점이었다. 그런데, 현재의 ‘이불 밖은 위험해’는 출연자들이 탁재훈에게 음식을 갖다 바친다. 탁재훈이 선배라는 이유로 다른 출연자들에게 무언가 요구하면서 사건이 생기고, 그만큼 출연자들 간의 관계 형성도 빠르게 진행된다. 이이경의 방영 분량이 많았던 것은 탁재훈과의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탁재훈은 방송 분량을 위해 이런 행동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출연자 중 선배가 나서서 사건을 일으키고, 분량을 만드는 전개는 버라이어티 쇼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그래서 이것이, 재밌나?

최근 보이그룹 동방신기가 출연한 MBC ‘나 혼자 산다’는 ‘이불 밖은 위험해’에 대한 대답 같다. 이 팀의 멤버 최강창민은 하루 종일 요리, 기타, 운동 등을 배우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난다. 하지만 ‘나 혼자 산다’는 그들과 최강창민의 관계를 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쉬는 날에도 끊임없이 무언가 배우는 이유에 집중한다. 최강창민이 요리를 배우는 것은 식사를 직접 챙겨 오랫동안 건강한 몸으로 좋아하는 와인을 마시기 위해서다. 이미 누군가에게 따로 배울 필요가 없을 만큼 일본어를 잘하면서도 일본어 공부를 놓지 않는 것은, 자신의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반면 또 다른 멤버 유노윤호는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 모습을 길게 보여준다. 10대 시절부터 알고 지낸 오래된 친구와 만나는 사이 그가 타인과 대화하는 방식, 친구 사이에도 승부욕을 불태우는 성격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나 혼자 산다’는 출연자가 누구를 만나는지 이전에 그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시킨다. 반면 ‘이불 밖은 위험해’는 나이와 경력을 통해 출연자들의 관계를 만드는 데 급하다. 탁재훈의 언행이 ‘진상’이 된 것은 그의 무례함도 있지만, 시청자가 탁재훈의 언행에 이해할 여지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불 밖은 위험해’은 탁재훈을 이해해보려 하는 대신 버라이어티 쇼에 흔히 있는,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 존재하는 기계적인 역할의 캐릭터로 활용한다.

‘나 혼자 산다’에서 유노윤호가 일어나자마자 춤을 추는 것은 타인이 보기에 웃기는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승부욕이 강하고, 틈만 나면 노래를 부르며, 오래전부터 동전을 모아둔 저금통을 금고에 넣고 과거를 잊지 않는 그의 일상이 이어진다. 그만큼 시청자는 유노윤호가 자신의 일과 현재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인테리어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은 그의 집은, 일에만 집중하는 그의 삶이 낳은 결과일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남이 어떻게 평가하든 자신의 삶의 방식을 유지한다. 그래야 가능한 삶의 방향이 있기 때문이다. 관찰 예능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재미다. 제작진의 편집에 따라 사람의 일상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불 밖은 위험해’도 파일럿에서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현재 이 프로그램은 각각의 출연자들을 이해하려는 대신 나이와 경력이라는 기준으로 출연자들을 빨리 연결하는 데 집중한다. 그 결과 권력을 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사건을 만들어낸다. 관계를 형성하기 전 각자를 이해하는 과정은 없다. 대신 올해 만 50이 되는 탁재훈이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샤브샤브를 안 만들어준다며 화를 내는 게 프로그램의 중요한 에피소드가 된다.

최강창민은 아침에 일어나 시사 프로그램을 본다. 자신의 경쟁력을 쌓기 위한 사람으로서, 또는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일상이 일과 그 외의 것으로만 나뉜 것 같은 유노윤호도 마찬가지다. 또한 두 사람은 자신이 정한 선 안에서 청결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최강창민과 숙소 생활을 할 때는 청소를 잘 하지 않던 유노윤호도 혼자 살면서 청소기를 돌리고, 옷을 정리한다. 혼자 살면서, 그리고 자신을 관리하는 어른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불 밖은 위험해’를 비롯한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이런 어른, 특히 자신의 삶을 알아서 관리하는 성인 남성의 캐릭터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JTBC ‘아는 형님’은 출연자들이 서로 반말을 하며 단순한 게임을 한다. 그 과정에서 출연자들의 사생활이 놀림의 대상이 된다. MBC ‘무한도전’은 전성기에 온갖 사회적 이슈를 다뤘음에도, 정작 출연자들은 언제나 발전 없이 지적으로 부족하거나 아이처럼 놀고 싶은 ‘어른이’라는 것을 강조하곤 했다. MBC ‘라디오스타’는 김구라가 자신보다 어린 게스트들이 출연할 때마다 반말투로 진행을 하며 돈 얘기를 꺼낸다. 자신의 식사 하나 스스로 해결할 생각이 없는 중년 남자가 에피소드를 이끈 ‘이불 밖은험해’는 이 연장선상에 있다. 사람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관찰 예능에서조차, 나이를 통해 권력을 가진 남자가 자신의 수준에 다른 출연자들을 맞추는 모습이 반복된다.

그래야 사람들이 재밌어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불 밖은 위험해’보다 ‘나 혼자 산다’처럼 재미를 주길 바라는 것이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출연자에 따라 편차도 있고 완전무결한 것도 아니지만, ‘나 혼자 산다’는 최소한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책임지는 어른들의 일상으로 재미를 만들어낸다. 동방신기나 다니엘 헤니처럼 자기 삶에 집중하는 남자들, 한혜진과 김연경처럼 일과 사생활의 균형을 치열하게 유지하는 멋진 여성들이 자주 등장한다. 나영석 PD는 KBS에서 tvN으로 이적한 뒤 직접 요리를 해서 식사를 해결하거나, 여성 오너의 지시에 따라 식당을 운영하는 남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들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불 밖은 위험해’ 같은 관찰 예능에서마저 철없는 중년 남자가 다른 출연자들을 무례하게 대하는 모습으로 시청률을 올릴 필요는 없다는 방증으로는 충분하다. 다시 한 번 질문. 올해 만 50이 되는 남자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먹고 싶은 요리를 안 해줬다며 화를 낸다. 이게, 재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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