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① 어떤 30대 직장 여성의 삶

2018.04.16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손예진이 연기하는 30대 중반의 여성 윤진아에게 전적으로 초점이 맞춰진 드라마다. 대부분의 멜로드라마 OST가 여성 주인공 테마와 남성 주인공 테마로 나뉘는 것과 달리,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 등장하는 브루스 윌리스의 ‘Save The Last Dance For Me’와 칼라 부르니의 ‘Stand By Your Man’은 오로지 윤진아의 마음 상태에 따라 플레이된다. 전 연인 이규민(오륭)이 윤진아에게 이별을 고하는 자리와 해외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서준희(정해인)와 윤진아가 처음 마주치는 장면에서 모두 ‘Save The Last Dance For Me’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윤진아가 이규민과 서준희에게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아예 배경음악이 깔리지 않는다. 드라마는 조금이라도 연인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애쓰는 윤진아와 오랜만에 반가움과 설렘을 느낀 윤진아의 모습을 똑같은 배경음악으로 표현하고, 시청자가 그의 시선에서 자연스레 상황에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한국에서 일하는 30대 여성의 삶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 작품은 의외로 흔치 않다. 최근작 중에서는 SBS ‘사랑의 온도’가 가장 전문직 여성의 삶에 집중했지만, 이 작품도 이현수(서현진)와 온정선(양세종)의 사연을 비슷한 비중으로 풀어냈다. 그러나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오로지 윤진아의 직장 세계만을 자세히 비춘다. 그러다 보니 직장 내에서 여성으로서 겪는 각종 불합리하고 폭력적인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할 수 있다. 윤진아가 상사들의 성희롱과 술자리 강요에 시달리고, 부하 직원에게 책임 소재를 떠넘기면서도 뻔뻔하게 술자리에서 ‘러브샷’을 요구하는 남성 상사를 보며 참거나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는 모습은 30대 직장 여성들끼리의 대화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야기다. 나아가 드라마는 윤진아가 후배에게 “안 괜찮아. 그런데 괜찮은 척할 거야.”라고 꿋꿋이 버티면서도 다른 여성 직원들에게서 “윤탬버린”이라는 말을 듣는 상황을 그린다. 단순히 남성 상사가 여성 후배에게 가하는 신체적‧정신적 희롱이나 폭력뿐만 아니라 비슷한 상황에서 경쟁하는 여성들끼리도 “저런 건 닮지 마라”고 귀띔하며 눈을 흘기는 현실도 담겨 있다. 또한 무력으로 자신을 결박하려 드는 전 연인 이규민에게서 느낀 두려움은 결혼에 대한 어머니의 압박 때문에 더욱이 시원하게 털어놓기 어려운 문제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서준희와의 로맨스는 윤진아에게 특별한 이벤트가 된다. 서준희가 일하는 게임회사는 윤진아에게 도피처 같은 곳으로, 이곳에는 서준희가 그린 캐릭터에 함께 채색을 하며 웃고 떠드는 시간만이 남는다. 대신에 윤진아가 매번 죽을상을 하고 만났던 카페의 점주는 그의 기분이 좋아 보인다며 활기차게 일을 하는 모습에 놀라워한다. 업무 능률이 올라가고, 남자 상사들 사이에서 거절의 말을 하지 못하고 매번 치이던 그는 자신을 다시 돌아볼 힘까지 얻는다. “이제 남자친구도 없는데 왜 빼냐”고 말하는 상사에게 “있을 때도 뺀 적 없다”고 말할 수 있게 되고, “노래방에서 탬버린 치고, 불쾌한 스킨십 참는 그런 거”에 대해 “이제 그딴 거 안 한다. 지겨워서 못해먹겠다”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게 됐다. 되는 대로 말을 내뱉은 윤진아는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뒤돌아서 서준희에게 말한다. “그냥 잘했다고 해주라.”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숨 쉴 곳 없이 치열했던 30대 여성에게 유일하게 이유를 묻지 않고 “잘했어.”라고 해주는 사람은 서준희뿐이다. 삶의 무게에 비하면 사랑이란 찰나의 이벤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그 이벤트가 왜 윤진아라는 여성에게 중요할 수밖에 없는지 그의 시선에서 보여준다.

말끔하고 잘생긴 연하의 남성이 윤진아의 삶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둘이 처음 만난 날의 대화에서 드러났듯, 서준희는 미국에 “눌러앉고 싶었”던 사람이다. 또한 여전히 클럽에 가고 즐겁게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결혼에 닦달을 겪는 윤진아와는 다른 삶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여성에게는 아직까지도 결혼이 최고의 선택지처럼 여겨지되, 결혼이란 틀에서 한층 자유로워진 남성이 충돌하는 2018년의 단면을 볼 수도 있다. 아무리 연애에 대해 자유로운 사고를 주장해도, 여전히 윤진아는 바람을 피운 남자친구를 두고 “(배경이 좋으니) 쉽게 헤어질 사이는 아니”라는 부모 세대의 벽을 넘어야 하므로. 어쩌면 진짜 판타지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동생’이 배우 정해인처럼 멋지고 잘생긴 남자라는 사실이 아니라 ‘윤진아와 서준희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같은 결말이 나는 것 아닐까. 안판석 PD의 전작인 풍자극 ‘풍문으로 들었소’와 의학 드라마 ‘하얀 거탑’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한 결말을 손 모아 바라게 되는 이유다. 그게 멜로드라마를 보는 이유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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