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이솜, 현실과 동화 사이

2018.04.18
직업은 가사도우미. 담배를 달고 산다. 인생의 또 다른 낙은 한 잔에 만 원이 넘는 위스키를 종종 사 마시는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친구는 있지만 한겨울 다정하게 섹스를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방도, 남들처럼 맛집을 찾아다니는 데이트도 없다. 한약을 먹지 않으면 흰 머리카락이 나는 병을 앓고 있어서 꾸준히 약값을 지출하는 중이다. 돈 들어갈 구석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담뱃값도 집값도 오르자 그는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마침내 자기만의 방을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영화 ‘소공녀’의 미소는 누군가에게는 고달프거나 한심해 보이거나 대책 없는 청춘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인물이다. 방 한 칸도 없으면서 담배를 피우고 위스키를 사 마시냐고, 너는 염치가 없는 인간이라고 비난받는 건 물론, 편안한 집을 제공해줄 테니 나와 결혼하는 게 어떠냐고 폭력적인 제안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미소는 말한다.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삶의 최우선 순위를 집에 두고 있지 않을 뿐 취향은 확고하고 존엄성을 버리지 않는다. 보통의 기준에서 수월하게 살고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황에 타협하지 않고, 신세를 한탄하지도 않으며, 남을 부러워하거나 비난하지도 않는 데다 도리어 각자의 괴로움을 안고 사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기까지 한다. 완전히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동화 같지도 않은 미소의 캐릭터를 설득해내는 것은 상당 부분 배우 이솜의 힘이다. 천진해 보이는 동글동글한 얼굴과 장난스럽게 올라간 입매, 어디 있어도 우뚝해 보이는 커다란 키, 나직한 목소리와 느릿느릿한 말투. 지나간 추억을 소중히 여기고 친구를 사랑하지만 세상을 모르진 않고,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아가지만 생활에 찌들지 않은 미소의 모습은 그렇게 완성된다.

마냥 귀엽다기보다 어딘가 서늘한 구석을 숨기고 있어서 도무지 만만해 보이지 않는 이솜의 외모는 KBS ‘드라마 스페셜 연작시리즈-화이트 크리스마스’ 때부터 주목받았다. 그가 연기한 유은성은 아름답고 똑똑하지만 알고 보면 남모를 우울을 감추고 있는 고등학생이었다. 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마담 뺑덕’의 덕이는 지방 소도시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엄마, 내 미래가 걱정돼? 걱정하지 마. 계속 이대로 살지 않을 거야”라고 욕망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여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해 방송된 tvN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이솜은 자신의 가슴 크기로 다른 남자 동료들과 내기를 하는 직장 상사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할 말을 하고, 새까만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주먹을 꽂아버리는 회사원 수지를 연기했다. 그렇게 이솜은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어딘가에는 있을 법한 여성들을 차츰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간다.

모델로 활동하다 배우로 데뷔한 지 8년, 경력에 비해 대표작으로 내세울 만한 작품은 많지 않았다. 여성 배우들이 연기할 만한 좋은 역할은 언제나 부족하고, 하나의 카테고리로 간편하게 분류할 수 없는 이미지의 여성 배우가 꼭 맞는 역할을 만나기란 더욱 쉽지 않았을 것이다. ‘소공녀’는 마침내 이솜의 얼굴을 발견해낸 작품이다. 최근 그는 배우로 살아가기 위한 고민이 있냐는 질문에 답했다. “20, 30대가 지나서 시대가 변해도 당대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스포츠Q) 자신의 작은 세계를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는 미소는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여성들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이솜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일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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