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외치는 비명

2018.04.25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 ‘이상한 나라’는 시댁이다. MC 이현우가 “며느리가 이상한 나라가 아니라 행복한 나라에 살기를 바라며”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세 명의 여성 출연자가 공개한 현실의 시댁은 정말 이상한 일들로 가득하다. 탤런트 민지영은 결혼식을 마치고 처음 시댁을 방문하자마자 음식 만들기를 같이 하고, 일반인 출연자 김단빈의 시어머니는 그를 만나자마자 반말로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일은 개그맨 김재욱의 아내 박세미가 겪은 것에 비하면 정상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박세미는 자연분만 시 자궁 파열을 우려한 의사가 제왕절개 수술을 권유한다. 그러나 그의 시아버지는 “자연분만 하면 아이들이 아이큐가 2% 좋아”지고, “(제왕절개를 하면) 아토피 확률도 높아”진다며 그에게 자연분만을 “노력”하라고 말한다.

“한두 시간만 힘써보고 그때는 제왕절개(를 하자고)” 김재욱이 “절충”하자며 아내에게 한 말이다. 우유부단하다고 혀를 차고 끝날 일이 아니다. 아내는 자신의 몸, 그것도 생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런데 남편은 이것을 자신의 부모와 “절충”해야 할 문제로 만든다. 애초에 법적으로 수술 보호자로서 아내의 뜻에 따르면 될 일이다. 아내 자신의 몸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대신 가족을 끌어들인다. 박세미는 혼자 김재욱의 부모, 더 나아가서는 그의 친척들까지 상대해야 한다. 김재욱의 친척들이 박세미에게 아이를 가지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결과다. 김재욱조차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박세미가 감당해야 할 아이 문제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 박세미가 김재욱 없이 혼자 시댁 식구를 만나는 것을 부담스러워할 수밖에 없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 기혼 여성과 시댁의 갈등이 결국 남편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김재욱은 스스로를 “중재자”의 위치에 놓으면서 사실상 방관자가 된다. 김단빈의 남편은 아내와 어머니가 갈등하는 와중에도 거실에서 웃고만 있다. 남편이 방관자가 되면서 아내와 남편이 해결해야 할 가족의 문제는 아내가 시댁 식구 전체를 상대해야 할 문제로 변한다.

수신지 작가는 ‘시댁 식구한테 예쁨받고 칭찬받고 싶은 시기’를 ‘며느라기’로 정의하며 자신의 만화 제목으로 삼았다. “40년 동안 엄마가 잘라줬”던 낙지를 먹던 민지영이 시댁에서는 명절 음식 만들기에 나서는 것은 이제 막 ‘며느라기’에 접어든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민지영의 노력은 남편과 시아버지가 거실에서 앉아 편하게 음식을 먹는 그들의 이득으로 바뀐다. 만화 ‘며느라기’가 이미 보여준 풍경이기도 하다. 그리고 ‘며느라기’ 이후 등장한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이 문제가 지금 현실에서 기혼 여성이 사는 모든 곳에서 각자 다른 모습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입증한다. 민지영이 시댁에서 부담감에 못 이겨 스스로 앞치마를 두르는 사이 박세미는 아이까지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도 시댁에서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김재욱은 집에 오자마자 거실에 앉아 술을 마시자고 말한다. 기혼 여성과 시댁의 관계를 다루는 많은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은 아내와 시어머니를 문제의 핵심처럼 다뤘다. 반면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두 사람의 갈등이 결국 남성의 이익으로 바뀌는 장면을 포착하고, 방관자인 척하는 남편과 시아버지가 문제의 시작이라는 점을 짚는다. 박세미의 출산에 대해 자연분만을 강력하게 주장한 것은 다름 아닌 시아버지였다. 아내와 며느리의 갈등을 보면서도 전혀 개입하지 않던 그는,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켜야 할 일에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선다.

김단빈은 시어머니와 함께 식당을 운영한다. 퇴사조차 할 수 없는 그는, 시어머니의 폭언을 견디며 일을 해야 한다. 시댁과 경제적으로 얽혀 있는 그는 시어머니가 자신의 삶 안으로 통보 없이 마구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기 어렵다. 시어머니는 상의 없이 자신의 평소 씀씀이보다 비싼 아이 옷을 사서 손주에게 입히려 하고,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아이가 배울 만한 강좌를 추천받는다. 자신과 함께 시어머니의 무리한 간섭을 막아야 할 남편은 손을 놓고 있다시피 한다. 어쩌면 남편은 아내와 어머니의 싸움에 “싸우시오, 많이 싸우시오” 같은 이야기만 하던 아버지와 비슷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어디에도 김단빈의 편은 없다. 손을 다쳐도 일을 끝내고 “야간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라는 말을 들을 만큼 자신의 몸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그러니 김단빈이 할 수 있는 것은 옥상에 올라가 비명을 지르는 것뿐이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의 제작 발표회에서 MBC 시사교양국의 이영백 부장이 “‘며느리’란 소재가 서열화, 차별이 중첩해서 만나는 꼭짓점 같다”고 말한 것은 중요하다. 사회의 온갖 문제가 겹쳐 있는, 그러나 가장 개인적인 단위에서 벌어지는 기혼 여성의 문제가 ‘며느라기’와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같은 비명 같은 방식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다만 흥미로운 부분들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처럼 현재 진행 중인 현실의 문제를 공개하는 것이 출연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우려할 수밖에 없다. 민지영의 경우 기혼 여성이 현실적으로 고치기 쉽지 않은 시댁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정도고, 시댁과 직접적인 갈등을 겪을 만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산모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에 대해 김재욱과 그의 부모가 보여주는 모습이나 일반 직장에서라면 더 큰 문제일 수 있는 김단빈의 경우는 방송 출연보다 전문가와의 상담이 더 급해 보인다. 또한 출연자들 간의 문제가 결국 제대로 된 해결책 없이 단지 서로에게 조금씩 양보하라는 식의 결말을 보여준다면 그것이 출연자와 시청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을까. 가족과 사회의 문제가 한 번에 집약된 일에서, 아슬아슬해 보일 만한 이야기가 비명처럼 등장했다. 그리고 출연자들의 선택이 그럼에도 문제의 공개를 통한 해결뿐이었다면, 이곳은 정말 ‘이상한 나라’임을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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