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작은 집’, 예능이 행복을 말할 때

2018.05.04
tvN ‘숲속의 작은 집’은 제목 그대로다. 피실험자 A(박신혜)와 B(소지섭)는 각각 숲속의 작은 집에서 며칠간 지낸다. 독특한 점이라면, 그 집이 의도적으로 단순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1화에서 박신혜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소개한 것처럼, 집 안에는 화목난로와 간단한 세면 시설, 작은 싱크대와 접을 수 있는 테이블, 수납함 겸 의자, 그리고 복층에 마련된 잠자리뿐이다.

제작진은 피실험자들에게 첫 번째 미션을 제시하며 ‘미니멀리즘’을 강조했다. ‘필요 없는 짐을 밖에 내놓으라’는 지시에 트렁크 두 개와 가방 두 개에 짐을 가득 채워 왔던 박신혜는 깊이 탄식했고, 배낭 하나를 메고 왔던 소지섭은 주저 없이 배낭을 문 옆에 내놓았다. 필요 없는 것을 덜어내면 무엇이 남을까. 이는 그동안 나영석 PD가 방송을 통해 지속적으로 다루었던 주제이기도 하다.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tvN ‘삼시세끼’는 연예인들이 한적한 농어촌에서 하루 세끼를 해 먹는 것이 전부였다. ‘삼시세끼’에서도 출연자들의 생활은 단순했지만, 그들의 관계는 가족공동체처럼 끈끈했고 가끔씩 마을 사람들이 출연하기도 하며 마치 시트콤을 보는 듯한 재미를 주었다. 그런데 ‘숲속의 작은 집’에서 두 사람이 머무는 집은 멀리 떨어져 있고, 같은 제주도라는 것을 믿기 어려울 만큼 그려지는 풍경도 다르다. 출연자들을 완벽히 분리하면서, 공동체 속 캐릭터와 관계를 부각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방식마저 과감히 덜어냈다.

그 결과 ‘숲속의 작은 집’에는 개인만이 남는다. 그리고 제작진은 어느 때보다 이들의 사소한 반응에 집중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박신혜와, 난롯가에 멍하니 앉아있는 것을 즐기는 소지섭은 한정된 공간과 상황 속에서 그럴듯한 대비를 만들어낸다. 이들은 똑같은 미션을 받아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그 과정에서 각자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박신혜가 나뭇가지에 사포질까지 해서 옷걸이를 완성하는 반면, 소지섭은 벽에 못을 박아 대충 외투를 걸어놓는다. ‘소확행’에 대한 미션에서 박신혜는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을 막힘없이 써내려가지만, 소지섭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행복에 대해 고민한다. ‘자발적 고립 다큐멘터리’라는 소개처럼, 이 프로그램은 인간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이 진지함 속에서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느낌을 더하는 것은 뜻밖의 요소다. ‘흰 쌀밥에 반찬 하나’ 미션에서 제작진은 ASMR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박신혜가 공들여 소고기뭇국을 끓이는 과정과 소지섭이 무쇠 팬에 소고기를 굽는 과정을 타이트한 클로즈업으로 촬영하고, 최대한 감도를 높인 생생한 사운드를 곁들였다. 수시로 ASMR을 언급하는 것뿐 아니라, 해당 장면을 따로 편집해 동영상 클립으로 제공하기까지 한다. 출연자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1인칭 시점으로 촬영하면서 집의 구조를 설명하거나 가방 속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여주는 것은 전형적인 인터넷 방송의 화법이다. 피실험자들 중 보다 인터넷 방송에 익숙한 세대인 박신혜는 ‘액체괴물 만들기’에 도전하기도 했다. 인터넷 방송의 아이템을 TV 예능 프로그램의 방식대로 세련되게 가공한다. 나영석 PD는 그가 가장 잘하는 방식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다시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행복에 관한 실험보고서’라는 콘셉트대로, ‘숲속의 작은 집’에서는 피실험자들에게 매일 몇 가지 미션을 주지만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자신을 위한 식탁을 차리거나 도시에서는 할 수 없는 경험을 하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것들만이 갖추어진 ‘숲속의 작은 집’은, 뒤집어 생각하면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최소한의 행복을 보여준다. 나영석 PD는 이미 2012년 KBS ‘인간의 조건’에서 비슷한 실험을 했었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현재, 예능 프로그램의 흐름은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관찰 예능으로 기울었고, 시대의 변화 속에서 여전히 인기 프로그램을 만드는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시 한 번 행복을 이야기한다. 그가 자주 출연자들의 입을 빌려 농담처럼 말하던 ‘미래방송’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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