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예인들│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다

2018.05.29
지난 18일 수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유튜버 양예원 성폭력 사건에 관한 수사를 촉구하는 국민청원에 동의하는 영상과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된 이유를 적은 글을 올렸다. 이후 해당 국민청원의 참여자 수는 대폭 늘어났으며,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수지는 ‘페미니스트 논란’에 휩싸였다.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수지의 사형이나 자살, 손해배상 등을 청구하는 청원이 수차례 올라왔다. 명백하고도 공개적인 공격이었다.

사형 청원의 명분은 수지가 스튜디오의 이름을 잘못 표기한 청원에 동의함으로써 무고한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것이었다. 해당 스튜디오는 수지를 비롯해 청원과 관련된 사람 및 단체에게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수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 사실을 밝히며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그는 ‘좋은 뜻으로 하는 일이라도 이런 부분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것은 분명 저의 불찰’이라고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이 일과는 별개로 이번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는 분들의 마음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수지의 말대로, 그의 잘못과 성폭력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자 했던 의지는 구분되어야 할 일이다. 반면, 사형 청원은 수지의 잘못을 내세우며 ‘15만 돼지를 대표하여 수지를 사형이라는 엄벌에 처해 돼지들에게 사회 정의의 본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사안보다도 여성을 처벌하고자 하는 의지가 앞서 있다. 그 목적 앞에 수지가 전달하려 했던 의견은 완전히 묵살당했다.

이는 여성 연예인들이 여성 문제에 대해 의견을 밝히거나 행동을 했을 때 이른바 ‘페미니스트 논란’과 함께 흔히 벌어지는 일들이다. 심지어 뚜렷한 의사표현이 아니라, 여성 문제와 관련이 있는 듯한 뉘앙스라도 비추는 날에는 어김없이 집중포화가 쏟아진다. 지난 2월 손나은은 ‘GIRLS CAN DO ANYTHING’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핸드폰 케이스를 들고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사진을 삭제하고 협찬 제품이라는 해명까지 해야 했다. 여성의 삶을 담은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아예 여성 연예인들이 쳐다봐서도 안 될 물건처럼 취급된다. 최수영은 이 소설에서 깊은 인상을 받아 자신의 첫 단독 리얼리티 타이틀을 ‘90년생 최수영’이라고 붙였다는 이유로, 아이린은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격을 받았다. 현재 수지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단 여성 연예인들의 목록이 화제가 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의 이름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페미’, ‘메갈’ 등의 검색어가 자동으로 완성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성 연예인은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폭력적인 시선을 감수해야 한다.

여성이 여성의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또한 여성이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은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여성 연예인들은 ‘페미’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무차별 공격을 당한다. ‘수지가 잘못을 했기 때문에 사형을 청원한다’는 논리처럼, 어떤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여성 연예인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여성 연예인이 여성 문제를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 ‘오빠 오빠 하길래 팔아줬더니 뒤통수 때린다’라는 식의 악플이 달리는 현상을 '페미니즘 대 이퀄리즘' 따위의 사상 대립으로까지 확장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이것은 대상화나 소비의 대상일 뿐이던 여성 연예인들이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드러내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 반응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리고 여성 연예인들은 이러한 공격에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있음에도, 그들을 보호할 대책은 요원해 보인다. 이에 대해 그동안 여성 문제와 관련한 의사표현을 했다가 공격을 받았던 여성 연예인들의 소속사에 의견을 물었지만 하나같이 답변을 피했다. 수지의 소속사 JYP 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수지에 대한 어떤 보호의 제스처나 상황에 대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회사의 프로듀서 박진영이 사이비 종교 논란에 휘말렸을 때 본인을 포함해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과는 상반된 반응이다. 회사 입장에서 과장된 불매운동에 타격을 입을까 두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벌어지는 모든 상황은 그저 침묵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성 연예인들은 자신들이 단지 누군가에게 소비되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모든 여성은 자신의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이 당연한 사실을 거부하고 화를 내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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