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를 듣다

2018.05.30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의 내용은 공업 도시의 빈민굴에 살던 한 솔로가 어떻게 해서 닳고 닳은 밀수업자이자 우주의 모험가가 되었는지 그 사연을 보여주는 활극이다. 한 솔로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주역이었기 때문에, 이 영화 속에는 한 솔로가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기억에 남는 이야깃거리들을 하나하나 추적해 되새기는 내용이 많다. 이러한 특징은 이 영화의 음악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 나는 이 영화의 음악이 아주 훌륭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늘은 음악 이야기부터 먼저 해보려고 한다.

19세기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음악에서 유도동기(Leitmotiv) 기법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인물로 흔히 꼽힌다. 유도동기는 어떤 인물이나 소재를 상징하는 짧은 곡조인데, 바그너는 자신의 오페라 내용에 맞추어 거기에 맞는 유도동기를 그때그때 집어넣었다. 예를 들어서 등장 인물들이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라면 ‘사랑스럽네-’라고 노래 가사로 대놓고 노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랑을 상징하는 곡조를 배경음악으로 나오게 한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사랑을 회상하는 장면이나,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장면에서도 같은 곡조가 화음을 이루며 배경음악에 섞여 들게 했다. 비슷한 방식으로, 거인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항상 거인을 나타내는 유도동기 곡조가 배경음악에 끼어들게 했다. 나중에는 거인이 직접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라고 하더라도 거인을 나타내던 유도동기만 나오면 그 음악이 거인에 대한 복선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바그너는 구구한 대사로 감정을 설명하는 데 매달리지 않고, 이야기 속에서 감정을 상징하는 음악의 느낌을 관객이 직접 받도록 시도했고, 나아가 인물과 이야기를 휘감고 있는 운명의 기구함을 음악으로 엮어 관객에게 전해주려고 했다.

그렇지만 유도동기 기법의 묘미를 관객들이 제대로 느끼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극 중 내용과 어울리는 유도동기 곡조를 이해하려면 관객들이 각 소재별 음악들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처음 극을 접하는 관객들이 다양한 곡조들을 미리 알고 있기는 어렵다. 게다가 과연 그 거창한 유도동기 곡조가 얼마나 잘 어울리느냐 하는 점도 문제였다. 바그너는 자신의 오페라에서 거인, 마법 불꽃, 하늘을 나는 수레와 같은 신화적이고 환상적인 소재를 대거 사용했는데, 이런 소재가 좁은 무대 위에서 합판과 마분지로 만든 소품으로 유치하게 표현되면, 웅장하고 신비로운 유도동기 음악의 흥취가 깨어져 버리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나는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를 보고 이 영화에서 드디어 19세기 음악가들은 상상만 할 수 있었던 유도동기 기법의 완성이 이제 현실이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스타워즈’ 시리즈 주제곡의 여러 곡조들이 이 영화의 배경음악에서 유도동기처럼 활용되어 군데군데 스며들어 펼쳐졌고, 그것이 이야기의 변화와 인물들의 꿈과 희망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그리고 곡조들은 생소한 가락이 아니라, 너무나도 널리 알려진 ‘스타워즈’ 시리즈를 통해 이미 익히 현대 대중문화에 새겨졌기에 다수가 깊이 느끼기 쉽다. 그 와중에 빛보다 빨리 달리는 우주선과 별보다 거대한 괴물 같은 환상적인 소재들이 그런 음악에 맞춰서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현란하게 화면에 드러나고 있었다.

유도동기 기법은 영화 음악이 작곡되던 초기부터 꾸준히 활용되어 왔다. ‘스타워즈’ 시리즈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교향악 분위기가 나는 음악은 아예 과거 낭만주의 시대 고전음악을 계승하는 것으로 언급될 때도 있었다. 그랬던 것이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에서는 어떤 경지에 도달했다는 느낌이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조화를 이루며 부드럽게 어울리는 것이나, ‘스타워즈’ 시리즈 특유의 강렬한 금관악기 소리가 완벽한 연주로 펼쳐지는 것은 매우 훌륭했다. 특히 오래된 긴 시리즈에 엮인 영화다 보니, 단순히 어떤 곡조가 영화 속 세상의 저항, 억압, 희망, 절망을 상징한다는 것을 넘어서서, 이 놀라운 전설과 서사시 전체에 대한 예찬의 느낌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니 그야말로 듣는 재미가 있었다.

영화의 나머지 부분도 이런 음악에 크게 모자란 점은 없었다. 주인공 한 솔로는 처음에는 좀 싱거운 느낌이었지만, 단짝 추바카가 등장한 후로는 단순하고 순진한 추바카와 꾀돌이 한 솔로가 대조를 이루면서 두 인물이 같이 더 재밌어졌고, 열차 강도, 무법자 조직, 도박장, 보물이 숨겨진 광산, 황야의 결투 같은 옛 서부극의 오랜 이야깃거리들이 너무나 익숙하게 이어지긴 했어도, 제법 다른 신비로운 SF 배경에서 펼쳐지는 모양은 지루하다는 수준은 넘어서고 있었다. 반면 거창한 SF, 환상 영화에서 녹록지 않은 경험을 갖고 있는 에밀리카 클라크에게 좀 더 적극적인 장면들이 돌아오지 않고, 신비로운 역할, 해설자 역할만 맡겨졌다는 점을 비롯해 그럴듯한 조연들이 시리즈에 이름이 있는 주연들에게 자리를 비켜주기 위해 맥없이 퇴장하는 이야기가 연겨푸 나온 것은 좀 아쉬웠다. 화려한 중반부의 싸움에 비해 정작 마지막 결전이 평범한 총싸움, 칼싸움이라는 점도 약간은 균형이 흐트러진 느낌이기는 했다. 특히, 이 영화에서 가장 개성이 강한 인물인 드로이드 L3(피비월러-브리지)가, 그 자신의 개성을 그대로 살리는 것으로 중반부의 대결전을 보여주었던 것을 돌이켜보면, 만약 L3의 비중이 더 컸다면 어땠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L3는 우리 사회의 실제 차별과 그 저항 운동에서 소재를 갖고 온 인물이기도 했는데, 비중이 작은 한계 때문인지 어떤 장면에서는 그저 웃음거리로 가라앉아 버리기도 하는 듯싶었다.

그러나 멋진 음악을 싣고 갈 만한 모험극의 건실함은 끝까지 충실했다고 생각한다. 어둠이니 빛이니 하면서 지나치게 심오하고 진지한 분위기에 빠지느라 한편으로 막연하고 흐릿해지기 쉬웠던 이야기에서 한발 물러나, 은하계의 또 다른 행성을 향해 떠나는 흥겨움, 그 자체로 돌아간 것이 잘 어울렸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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