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오브 라만차’는 달라지고 있는가

2018.05.31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일부 내용과 장면 묘사가 담겨 있습니다.


지난 4월 12일 시작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연출 데이비드 스완, 제작 오디컴퍼니)가 오는 6월 3일 폐막을 앞두고 있다. 스페인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를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으로, 극중극(등장인물에 의하여 극 중에서 이루어지는 연극) 형태를 띠고 있는 ‘맨 오브 라만차’는 2005년 초연 이후 8번째 시즌을 맞이하고 있다. 그만큼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극 중 인물인 알돈자가 노새끌이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에 대한 비판과 수정 여론 등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맨 오브 라만차’는 국내 초연 당시 공식 관람 연령이 ‘8세 이상’이었다. 그럼에도 노골적인 집단 강간 묘사로 논란이 됐다. 이를 인식한 것인지 ‘맨 오브 라만차’의 관람 연령은 그다음 시즌부터는 중학생 관람가로 상향 조정됐다. 그러나 문제의 장면은 여전히 직접적으로 묘사됐다.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는 해당 장면에 대해 “여주인공이 나락으로 추락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강조하는 장면”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후반부에 알돈자가 죽어가는 돈키호테를 찾아가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이 바뀌었고, 스스로를 ‘둘시네아’라고 부르는 장면에서 ‘맨 오브 라만차’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로 이어진다. 대표 넘버 ‘The Impossible Dream(이룰 수 없는 꿈)’의 가사처럼 “이 한 몸 찢기고 상해도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가”야 하며, “미쳐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미친 짓은 현실에 안주하고 꿈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맨 오브 라만차’의 문구처럼 어렵고 힘든 현실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돈키호테의 의지를 알돈자가 이어받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맨 오브 라만차’가 전하려 하는 주제를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알돈자의 고난이 더 강조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브로드웨이를 비롯, 해외의 다양한 ‘맨 오브 라만차’에는 폭력적인 묘사가 존재하지만 극중극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 가령 발레 동작으로 안무가 진행된다거나, 관객들이 직접 볼 수 없도록 노새끌이 역 배우들을 가린다거나, 무대 조명을 어둡게 만들어 잘 보이지 않게 하는 등 관객들이 직접적으로 충격을 받지 않도록 연출되었다. 또한 알돈자가 겪는 일들은 사회에서 얼마든지 벌어지는 성범죄를 연상시킬 만큼 직접적인 표현과 사실적 분위기를 띠고 있고, 이 때문에 여성 관객들이 이 장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미쳐 돌아가는 이 세상”에 좌절하는 이들에게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감동의 메시지를 위해 극중극 속의 최약자인 여성이 희생되는 것이다.

몇 해에 걸친 문제 제기 끝에 한국의 ‘맨 오브 라만차’는 올해 문제의 내용이 알돈자를 무대 뒤로 데려가면서 은유적으로 끝나는 정도로 수정됐다. 이에 대해 오디컴퍼니 측은 “미투 운동 전부터 수정 의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신춘수 대표 또한 “이번 작품 수정은 오래 전부터 고심한 것으로, 최근 미투 운동과는 상관없는 조치”(‘서울신문’)라며 이전부터 변화를 모색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의 ‘맨 오브 라만차’는 여전히 폭행이 강간을 위한 행위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구타 끝에 기절한 알돈자를 뻬드로가 어깨에 얹고 들어가면 노새끌이들이 히죽이며 차례로 따라 들어간다. 내용의 변화는 있었지만, 그것이 여성 관객들이 바라는 수준에 도달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물음표로 남아 있다.

신춘수 대표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다양한 연령층이 공감하고 볼 수 있도록 수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라이선스 작품의 한계 때문에 해당 장면을 삭제할 수 없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방식의 해석과 표현은 가능하다. 고전이 고전으로서 그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현대에 맞춰 재해석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시대의 현실에 감하게 반응하고 변화할 필요도 있다. 올해의 ‘맨 오브 라만차’는 그 변화가 분명히 시작됐고, 동시에 아직 변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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