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퀴어 프렌들리 페미니스트 여성 농구단

2018.06.04
ⓒShutterstock
꼭 농구여야 했던 건 아니었다. 내가 그때 본 공고가 농구가 아닌 축구에 관한 것이었다면 아마 나는 지금쯤 축구를 배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 잃어버린 나의 운동장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종목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도 지금 와서 문득 스스로에게 '내가 원래 이렇게나 농구를 좋아했던가?' 물어보며 든 생각이다. 생각이 너무 많아 고민하는 사이에 기회가 닫혀버린 경험이 부지기수인 사람이라, 트위터에 올라온 농구단의 모집 글을 보자마자 뭐에 홀린 것처럼 바로 신청서를 제출했다. 마음의 속도보다 클릭의 속도가 빨랐다. 운동을, 여성과, 그것도 페미니스트 여성과 함께할 수 있다는데 그런 기회 앞에서 주저할 이유가 뭐가 있었겠어.

이전까지 나의 농구 경험은 중, 고등학교 시절 실기평가를 위한 연습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슈팅 연습뿐이었으니 농구를 했다기보다 농구의 ‘ㄴ’자만 맛본 셈이었다. 첫 모집에 선착순으로 떨어지고 다음 기회까지 한 달을 기다려 농구단에 와보니,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비슷한 실력과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몇몇은 아주 능숙하게 공을 다루고 있었는데, 나중에 그중 많은 비율이 공통으로 청소년기를 미주권에서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마음속에 어떤 충격이 있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에 대한 이해도의 차이가 성별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게 단박에 설명된 순간이었다. 학창 시절 농구공을 들고 나가는 순간마다 코트의 장벽은 높았고, 그걸 함께 넘어설 친구를 찾는 일은 더 어려웠다. 98년도에 주진모가 출연한 박카스 광고가 있었다. “한 게임 더 해?”라는 대사와 함께 새벽 2시에 친구와 함께 농구를 하는 장면이 담긴 광고였는데, 나는 이 장면이 그렇게 부러웠더랬다. ‘새벽’에 ‘친구와 농구’를 할 수 있다니! 이 광고를 접했을 때의 나이만큼을 한 번 더 살고도 몇 년을 지나고 나서야 농구단에 들어와 그 부러움을 현실로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이제 드디어 농구인이 되나 싶었는데, 뭐가 이리도 넘어야 할 퀘스트가 많은지! 운동의 시작과 안전의 기본은 장비라고 믿는 나는, 농구 아이템을 하나씩 구매할 때마다 황당한 상황을 견디는 능력치를 매번 새로 갱신할 수 있었다. 농구공을 사러 갔더니 ‘누구 것을 사러 왔느냐’는 이해하지 못할 질문이 날아왔다. 질문이 틀렸을 땐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 거지? 내 몸에 맞는 농구복을 눈앞에 두고서도 ‘여성 사이즈는 없어요’라는 희한한 말을 듣기도 하고, 수업에서 마치 공동구매를 한 것처럼 여럿이 같은 모델을 신고 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240의 내 발 사이즈는 키즈용과 남성용의 사이, 이름이 붙여지지 않는 곳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모두가 나의 농구를 방해하고 있는 이 기분은 그냥 기분 탓이겠지?

그로부터 1년, 농구공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낯선 감촉은 익숙함으로 변하였고, 움직이면서 드리블을 하는 게 마치 첫걸음마를 떼는 것같이 생경하고 감동적이었던 순간을 지나 이제는 공을 튕기며 어떻게든 풀코트를 뛰어내는 나를 발견한다. 이제는 혼자 연습하러 나간 코트에서 초등학교 남학생부터 할아버지까지 난데없이 나타나 나를 도와주겠다고 친절을 베풀어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여자 어린이부터 교복을 입은 청소년, 성인 여성들도 내게 말을 건네고, 때론 조용히 바라보기도 한다. ‘혹시 농구를 배운 적이 있는지, 어디에 가면 농구를 배울 수 있는지’ 질문하기도 하고, ‘공을 한 번 던져봐도 되냐’고 요청하는 사람도 있다. 한번은 ‘같이 하고 싶은데 몇 시쯤 나와서 연습을 하냐’고 물어보기에 반갑게 다음 약속을 정한 적도 있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운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건 농구가 정말 재미있는 운동인 탓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퀴어 프렌들리 페미니스트 여성들과 함께 운동한다는 것에 있다. 이곳에서 나는 안전함을 느낀다. 차별로부터의 안전함, 시선으로부터의 안전함, 평가로부터의 안전함. 그 안전함은 내가 오롯이 ‘농구를 하는 것’에만 집중하게 한다.

코트에서 만난 여성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들이 마주한 코트는 내가 서성거리다 점차 발길을 끊게 된 코트와는 다른 장면일 것이다. ‘여성이 농구를 한다는 것’은 그저 스포츠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여성에게 경험할 수 있는 운동의 선택지를 넓혀주는 것이 아닐는지. 해본 적이 없어서, 여자가 농구 하는 걸 쉽게 보지 못해서, 그래서 해도 되는지 몰라서, 같이 할 사람이 없어서, ‘잘’하지 못해서, 배울 곳이 없어서 등의 이유로 우리는 농구를 주저하도록 말 없는 권유를 받는다.

코트에 서 있는 나의 모습, 함께 뛰고 있는 우리 팀원들의 모습이 다른 여성에게 농구를 하나의 운동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길 바란다. 여자가 할 수 없는 운동이란 없다. 농구가 아니라 축구, 배구, 그 어떤 운동이라도 괜찮다. 골대 하나만 쓰려고 해도 눈치가 보이는 세상에서 우리는 아무리 차지해도 부족하다. 나는 더 많은 여성이 고민 없이 운동장을 점유하길 바란다. 여성이여, 코트를 점령하자.





목록

SPECIAL

image 여성의 선거

MAGAZINE

  • imageVol.171
  • imageVol.170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