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선거│① 여성은 거기 없었다

2018.06.19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났다. 선거가 끝나고 SNS에서는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됐다. 한 개표방송의 캡처화면에는 광역자치단체장(시‧도지사) 당선자 17인의 얼굴이 빼곡하게 나열됐고, 그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이번 선거에 여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에 따르면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한 전체 71명 중 여성 후보자는 단 6명이었다. 그 중 여성 당선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선거에서 가장 뜨거웠던 이슈 중 하나는 여성 그 자체였다. 녹색당 신지예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 출마했던 6명 여성 후보 중 한 사람으로,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라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웠다. 선거의 결과와 상관없이 신지예 후보의 페미니스트 선언은 2018년 한국의 현재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2016년 5월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이후 여성의 자각은 광역자치단체장 후보가 자신의 아이덴티티로 페미니스트를 선언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여기에 이어진 백래시(Backlash) 역시 마찬가지다. 신지예 후보의 선거벽보가 수십 장 훼손되었고, 선거 기간 내내 후보에 대한 성희롱과 공격이 쏟아졌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당시 ‘부인일보’의 기사에 따르면 여성 후보의 벽보가 없어지거나 선거 사무소가 습격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괴한으로부터 살해협박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대한민국 여성국회의원의 탄생’). 70년 전 대한민국 최초의 국회가 수립될 때 벌어졌던 촌극이 2018년에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신지예 후보의 사례가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의 요구와 반작용을 동시에 보여줬다면,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둘러싼 논란은 여성 문제가 ‘중요한 정치적 사안’과 맞물렸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보여준다. 처음에는 그의 아내가, 다음에는 본인이 형수에게 한 폭언이, 마지막으로는 배우 김부선과의 관계가 차례로 도마에 올랐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 모든 논란이 경쟁자들의 ‘흑색선전과 마타도어’라고 일축했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의 언행을 통해 드러난 여성혐오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특히 김부선이 주장하는 피해사실은 단지 사생활의 문제가 아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사실일지라도 사생활의 영역일 수 있지만, 이것이 퍼지는 일을 막는 과정에서 권력자의 협박이 있었다는 주장은 명백히 진실을 밝혀내야 할 권력의 문제다. 하지만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의 추미애 대표는 “요새 우리 젊은 친구들이 자꾸 이상한 데 관심을 쏟고 있다”고 말했고, 표창원 의원은 “선거 후 자세히 설명할 테니 일단은 기호 1번에 투표해 달라”고 호소했다. ‘경기도는 서울을 둘러싼 수도권으로 최대 핵심 전략지’라는 것이 그 명분이었다. 그리고 응답자의 55.9%가 ‘여배우 스캔들이 선거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한 여론조사(‘주간동아’)의 결과처럼, 이재명은 경기도지사로 당선됐다. 한 여성의 인권을 누르는 권력에 대한 의혹은 너무나 쉽게 스캔들로 치부될 뿐이었다.

한국여성정치연구소의 김은주 소장은 “기초자치단체장 후보는 총 753명이고 그 중 여성은 35명인 4.6%에 불과하다. 심지어 2014년의 5.8%에 비해 1%가량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9명이었던 기초자치단체장 여성 당선자는 2018년 8명으로 줄었고, 여성 광역자치단체장은 1995년 지방선거가 시작된 이후 여전히 단 한명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여성에 관해 벌어진 일들은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애초에 선거에 여성이 낄 자리가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왜 문제인지는 한국여성정치연구소가 제안한 성평등정치지수(Gender equality in politics)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성평등정치지수는 정책결정과정에서의 여성 참여도를 측정하는 정치지수와 정책집행과정에서의 여성 참여도를 측정하는 행정지수로 나뉘는데, 바로 이 행정지수의 주요 평가항목중 하나가 결정권을 가진 5급 이상 여성 공무원의 비율이다. 이번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광역자치단체장에 단 한명의 여성 후보도 공천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공약한 ‘임기 내 내각 남녀 동수 달성’은 한참이나 요원해 보인다.

일부 여성 유권자들은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무조건 여성 후보에게 투표하거나 ‘여성정치인’이라고 적은 무효표를 제출하기도 했다. 설상가상 광역자치단체장에 출마한 후보의 공약에서도 여성들의 요구가 반영되었다는 인상을 받기는 힘들다. 대부분의 남성 후보들의 여성정책이 가족공동체 중심의 출산과 육아에 모든 포커스를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에게는 결혼과 출산 외에도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그 선택지에 ‘결정권을 가진 여성 정치인’이 들어가지 못할 이유는 없다. 정치권이 대의를 지키기 위해 중요한 것들을 나중으로 미루는 순간에도, 여성들은 더 크게 목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것이 세상을 바꾸고 좀 더 자신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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