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방탄소년단의 앨범

2018.06.20
서사는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의 정체성 중 하나다. 그들은 두 장의 ‘화양연화’ 앨범을 기점으로 노래와 뮤직비디오 또는 쇼트 필름 등을 통해 팀의 세계관을 본격적으로 드러냈고, 가상의 서사를 전개했다. 콘텐츠 바깥의 현실에도 또 다른 서사가 있다. 그들은 트위터로 근황을 알리고, 유튜브와 네이버 V앱 등을 통해 뮤직비디오와 TV 음악 프로그램 바깥의 자신을 보여줬다. 그렇게 팀의 역사가 인터넷에 남겨지는 사이, 데뷔 앨범 ‘2 COOL 4 SKOOL’ 발매 당시 초동 판매량(발매 첫 주 앨범 판매량)조차 집계되지 않을 만큼 조용하게 출발했던 팀은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그 앨범, ‘LOVE YOURSELF 轉 Tear’는 표면적으로 ‘화양연화’의 서사를 이어간다. 멤버들은 타이틀곡 ‘Fake Love’의 첫 번째 티저에서 ‘화양연화’와 연관된 소품을 들고 나온다. 앨범 수록곡 ‘Magic Shop’은 첫 번째 티저 영상에 등장하는 문장 “Magic Shop is a psychodramatic technique that exchanges fear for a positive attitude. (매직 숍은 두려움을 긍정적인 태도로 바꿔주는 심리치료 기술이다.)”를 통해 그 역할이 설명되기도 한다. ‘화양연화’의 인물들이 매직 숍을 통해 내면의 괴로움을 해결한다. ‘Intro: Singularity’에서 ‘이 고통조차 가짜라면 그때 내가 무얼 해야 했는지’라며 괴로워하던 앨범 속 인물은 ‘Magic Shop’에서 ’내가 나인 게 싫은 날 영영 사라지고 싶은 날 문을 하나 만들자 너의 맘속에다 (중략) 믿어도 괜찮아 널 위로해줄 Magic Shop’이라는 나름의 해결책을 찾는다.

그러나 ‘Magic Shop’에서 치유를 위한 재료는 ‘화양연화’의 소품이 아니다. ‘화양연화’의 설정 안에서 방탄소년단은 그들의 실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Magic Shop’ 이후 이어지는 ‘Airplane pt.2’는 ‘오늘은 뭐로 살지 김남준 아님 RM?’, ‘Anpanman’은 ‘Ballin’ Ballin’ still 방탄’이라며 그들의 실제 이름을 부른다. ‘화양연화’ 시리즈에서도 방탄소년단은 늘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기까지 도달하는 맥락이다. ‘Magic Shop’의 남자가 치유를 하는 과정에서 털어놓는 이야기는 ‘내가 뭐랬어 이길 거랬잖아 믿지 못했어 [정말] 이길 수 있을까 / 이 기적 아닌 기적을 우리가 만든 걸까’다. ‘화양연화’의 세계관 속에서 무겁게 눌린 캐릭터들보다 방탄소년단의 현재에 더 가까운 대목이다.

타이틀곡 ‘Fake Love’는 ‘널 위해서라면 난 슬퍼도 기쁜 척할 수 있었어’로 시작하고, ‘전하지 못한 진심’은 ‘또 가면을 쓰고 너를 만나러 가’라고 노래한다. 앨범 속 가상의 이야기 중 일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Intro: Singularity’ 뮤직비디오부터 등장하는 가면은 ‘화양연화’의 연장선상에서 세계관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다. 그러나 ‘LOVE YOURSELF 轉 Tear’가 현실 속 방탄소년단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면, 가면은 스타로서 그들이 자신을 가리는 장치에 대한 상징이 된다. ‘Intro: Singularity’ 뮤직비디오에서 가면을 쓴 스타는 ‘Fake Love’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긴 채 팬을 만나며 괴로워하고, ‘전하지 못한 진심’에서 홀로 진심을 묻어야 하는 것에 대해 고백하며, ‘134430’에서 아주 개인적인 감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데뷔했을 때 ‘No More Dream’을 외치며 희망 없는 10대의 삶을 외치던 아이돌은 이제 ‘낙원’에서 ‘꿈이 뭐 거창한 거라고 그냥 아무나 되라고’라며 (중략) 뭐가 크건 작건 그냥 너는 너잖아’라며 나름의 답을 찾기 시작한다. 세계 최고의 인기 보이그룹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 사랑, 꿈이 곡마다 각각의 챕터처럼 표현되고, 그 이후에 팬에게 ‘손을 놓지 마’라는 ‘낙원’이, 그리고 팬들과 약속한 문을 만드는 ‘Magic Shop’으로 연결된다. ‘Magic Shop’이 방탄소년단의 가상의 스토리에서 중요한 테마가 되는 동시에 ‘팬 송’으로 명명된 이유일 것이다.

이 관점에서 ‘Anpanman’은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이 곡은 방탄소년단의 가상의 세계관에는 합류할 수 없다. 하지만 ‘LOVE YOURSELF 轉 Tear’가 방탄소년단의 정신적인 문제를 치유하는 여정이라면, ‘Anpanman’은 그들이 아이돌로서 ‘나는 누구인가’를 규정하는 선언이다. RM은 앨범의 비하인드를 설명하는 네이버 V앱 라이브에서 ‘Anpanman’을 “가장 우리스러운 노래”라며 “가장 약한 영웅"이라고 설명했다. 온갖 고민과 괴로움을 어떻게든 극복하면서 천천히 희망을 찾아온 아이돌이, 팬들에게 ‘무서워 넘어지는게’라고 하면서도 ‘나를 믿어’라고 한다.

두려움 많은 개인이 스스로 치유의 과정을 거쳐 ‘아이돌’로 탄생하는 순간. ‘LOVE YOURSELF 轉 Tear’는 마치 영화처럼 한 개인이 고민을 안고 깊은 위기로 떨어지고, 희망을 찾아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화양연화’의 세계관 속 인물과 방탄소년단이 실제로 겪었던 서사가 이 앨범을 통해 통합되고, 그들의 세월이 기승전결과도 같은 구성으로 한 장의 앨범에 압축된다. ‘LOVE YOURSELF 轉 Tear’에서 ‘Intro: Singularity’가 ‘기’라면, RM이 특히 일관성을 강조한 “3번부터 7번”의 곡들 중 ‘전하지 못한 진심’부터 ‘Love Maze’까지는 ‘승’, 하이라이트의 시작인 7번 곡 ‘Magic Shop’부터 ‘Anpanman’은 ‘전’, ‘Outro: Tear’는 ‘결’의 역할을 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앨범의 사운드는 조금씩 밝아진다. ‘Intro: Singularity’는 머리가 울릴 만큼 무겁게 울리는 저음과 뷔의 나직한 목소리, 그와 상반되게 마치 시계 초침처럼 선명하게 반복되는 리듬이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를 가득 잡아놓는다. 하지만 ‘134340’에서 리드미컬한 베이스와 기타로, ‘Love Maze’에서 처음으로 경쾌해진 훅의 멜로디는 점차 앨범의 분위기를 밝은 쪽으로 옮겨놓는다. ‘Magic Shop’이 점차 밝은 분위기로 변하며 벅찬 기운의 후렴구로 바뀌는 과정은 앞의 곡들이 앨범의 분위기를 바꿨기에 가능한 결과다.

특히 ‘134340’은 ‘LOVE YOURSELF 轉 Tear’가 앨범의 스토리를 전달하기 위해 얼마나 사운드를 집요하게 만들었는지 드러낸다. 가면이라는 비주얼적인 콘셉트로 시작한 이 앨범은, 보컬을 울리고 퍼지게 하면서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러나 ‘134340’에서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를 하면서 편곡은 실제 베이스 연주가 이끌어가고, RM의 보컬은 바로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만큼 생생하게 잡힌다. 슈가가 등장하는 파트에서 그의 목소리는 몽환적인 분위기로 퍼졌다가 다시 생생한 톤으로 돌아오는데, 그 순간 그는 헤어졌던 연인과 만난다. 꿈에서 현실로, 머릿속으로만 생각한 이별이 눈앞에 등장하는 순간. 그 충격 뒤로 멜로디는 다시 공간으로 흩어져 나가고, 목소리는 점점 더 다른 소리에 묻혀간다. 이 순간을 지난 후에야 앨범 속 인물은, 또는 방탄소년단은 자신의 꿈에 대해 묻고 현재의 해답을 찾기 시작한다. ‘LOVE YOURSELF 轉 Tear’에서 음악은 서사를 완성하는 수단이고, 녹음의 목적은 목소리나 편곡을 더 잘 들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곡이 담은 서사에 맞는 세상을 만들고, 그 공간 속 인물의 심리를 전달하는 데 있다. 네오소울과 올드스쿨 힙합, 또는 PB R&B와 EDM까지 곡마다 장르는 다양하게 변하지만, 앨범 전체의 정서를 고려한 믹싱과 마스터링을 통해 자연스러운 변화를 전달한다.

시작부터 훅으로 치고 나오는 ‘Fake Love’가 앨범 전반부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블록버스터 영화가 초반에 스케일 큰 액션씬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것과 비슷하다. RM이 V앱 라이브에서 들려준 ‘Fake Love’의 원래 비트가 실험적으로 느껴질 만큼 단순했던 것과 달리, 현재의 ‘Fake Love’는 화려한 사운드로 시작한다. 이 앨범을 전부 듣지 않는 사람이라도 ‘Fake Love’의 이 도입부와 함께 멤버들이 마치 한 몸처럼 동작을 이어가는 안무를 잊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Fake Love’의 끝은 도입부를 더 나직하고 우울하게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곡을 휘어잡은 도입부의 ‘널 위해서라면 난 슬퍼도 기쁜 척할 수가 있었어 (중략) Fake Love’는 2절과 3절에서 다른 멜로디가 들어가면서 그 폭발력을 줄인다. 그 뒤에는 목소리와 피아노만으로 앨범을 더 우울하게 끌어내리는 ‘전하지 못한 진심’이 이어진다. ‘Love Maze’ 역시 일반적인 구성에서 벗어나 1절과 2절이 각각 멜로디와 랩으로 전혀 다른 구성으로 이뤄지면서 구성의 반복을 최대한 피하고, 가사에 따라 변하는 감정들을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일반적인 곡이라면 시작부터 귀를 잡아끌 후렴구 멜로디를 초반부터 던졌겠지만, ‘Love Maze’에서는 1분이 한참 지난 뒤에야 등장한다. ‘LOVE YOURSELF 轉 Tear’의 곡들은 익숙한 구성으로 듣는 사람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곡의 서사에 맞춰 구성을 바꾸고, 가사가 전달하는 서사를 청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데뷔부터 지금까지의 서사를 한 장의 앨범에 담기 위해 기승전결이 담긴 서사를 만들고, 그 서사를 위해 들어간 곡들은 다시 일반적인 구성을 바꾸며 앨범 전체의 서사의 일부가 된다. ‘LOVE YOURSELF 轉 Tear’는 방탄소년단이 만든 서사를 스스로 ‘덕질’하듯 분석하고, 다시 새로운 서사로 정리한다. 그 결과 좌절에 빠진 청춘들이 희미하게 비치는 희망을 찾아보려 발버둥치는 ‘화양연화’의 이야기는 그대로 방탄소년단의 현실이 되고, 앨범의 이야기가 된다. 방탄소년단이 팬덤의 극단적인 열광을 얻는 동시에, 그 바깥의 대중과 일정한 경계를 유지했던 이유다. 방탄소년단의 서사를 따라가지 않으면, 또는 앨범 한 장을 깊게 듣지 않으면, 아이돌과 팬이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내는 그들만의 세계이자 서사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LOVE YOURSELF 轉 Tear’에 이르러 그들은 함께 존재할 수 없는 모순들을 현실로 구현해내면서 그들의 세상 바깥에 유의미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아이돌의 세계관이 오히려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 같은 아이돌의 진심을 전달할 수 있게 만든다. 가면은 단지 콘셉트를 설명하기 위한 상징이 아니라 가상의 세계 속 방탄소년단과 현실의 그들을 잇는 매직 숍의 열쇠가 됐다. 그 결과 음악 산업에서 가장 상업적인 존재인 아이돌이 스트리밍이 대세인 시대에 오히려 앨범 전체를 하나의 서사로 표현했다. 그리고 실험적인 아티스트가 시대에 역행해야 할 수 있을 법한 행위가 팬덤의 열광을 이끌어내면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했다. 이 열광이 만들어낸 영향력이 빌보드, 롤링스톤, 피치포크에서 ‘LOVE YOURSELF 轉 Tear’를 리뷰하게 만들었다. 롤링스톤은 “미국의 현 메인스트림 팝 시장이 가진 권태나 우울함에 대한 집착과 비교하면 이 앨범의 느낌은 충격적”이라고 평했다. 아이돌이 그들의 현재와 서사를 구현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스트리밍 시대에 대한 예상치 못한 답이 됐다.

방탄소년단의 서사를 따라가기 귀찮은 사람을 위해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방탄소년단은 그들이 탄생한 산업의 보이지 않는 경계, 또는 정의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마치 ‘Fake Love’의 뮤직비디오에서 모든 것이 파괴되고 사라지는 것처럼.  지난 26년간 이어진 시대의 끝이자, 아직은 규정할 수 없는 시대의 시작이다. 방탄소년단의 앨범을 이야기해야할 이유다. 거대한 성공만큼이나, 성공이 의미하는 바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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