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갈’과 인도의 페미니즘

2018.06.28

* 영화 ‘당갈’의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인도 영화가 한국에서 화제가 되는 일은 이례적인 일이다. 영화 도중 갑자기 군무를 추는 등 인도 영화만의 특수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갈’은 한국에서 주목을 받았다. 인도어로 레슬링이란 뜻의 ‘당갈’은 돈 때문에 레슬링 선수로서 꿈을 접은 아버지가 남아선호 사상을 깨고, 아들이 아닌 딸들을 교육시켜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메달을 땄다는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 ’당갈’의 인기는 최근 인도 영화계에서 강하게 이어지는 이른바 ‘모더니즘’의 영향, 실화 기반이라는 소재로 인해 비현실적인 전개가 줄어들어서만은 아니다. ‘당갈’ 안에서 인도 여성들이 현실에서 겪는 차별을 그대로 드러냈고, 이런 묘사는 한국 관객에게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당갈’은 페미니즘 영화가 아니다. 인도 안드라프라데시 주정부의 정책분석가이자 페미니즘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 바르티카 판데(Vartika Pande)는 ‘당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영화를 ‘핑크 무비’라 부른다. 대부분의 핑크 무비는 남성이 여성의 아젠다에 개입해서 그것을 해결해주는 방식이다.” ‘당갈’에서는 아버지 마하비르(아미르 칸)가 딸인 기타(파티 마사나 셰이크)와 바비타(산야 말호트라)를 교육시키 위해 치마 대신 반바지를 입히고, 머리를 민다. 운동을 위한 일이 아니면 모두 제거해서 오로지 레슬링을 위한 몸을 만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매는 학교에서 비웃음을 당하고,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가 미쳤다며 수근대며, 레슬링 연습장에서는 출입 자체를 막아버린다. 여성이 운동선수가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아주 작은 지역 사회에서부터 넓은 사회에서까지 이 모든 차별을 겪고 이겨내야 한다. 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딸들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아버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하는 쪽은 오직 딸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4살에 결혼을 하는 기타의 친구는 “그래도 너희 아버지는 너희를 자식으로 여기며 미래를 위해 교육시키지 않느냐”라며 반문한다. 현실에서 인도의 많은 여자아이들은 학교를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집안에서는 지참금을 받고 딸을 결혼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의 강요는 오히려 아이들을 위한 길이 된다. 심지어 국가기관에서 선진 교육을 받은 코치보다 인도에서 혼자 수련한 아버지의 기술이 더욱 뛰어나게 묘사된다. ‘당갈’은 페미니즘 영화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인도의 전통적인 아버지가 만들어낸 승리, 가부장제의 승리다. 바르티카 판데는 “인도의 ‘핑크 무비’가 많이 제작되고 있다. 하지만 진짜 페미니즘 영화는 ‘Anaarkali of Aarah(아라에의 아나르칼리, 2017)’와 같은 영화다”라고 말한다. 이 영화는 무대에서 쇼를 하는 아나르칼리가 그를 성추행하려 하는 부통령을 만나고, 그에게 반격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당갈’은 페미니즘 영화이기도 하다. 바르티카 판데는 “원론적으로 이것은 페미니즘이 아니다. 하지만 인도 여성의 현실을 고발한다는 점에서 이것은 페미니즘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인도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며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티벳인 시와파 곤키브 파상(Shiwapa Kunkyab Pasang)은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페미니즘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페미니즘을 외치는 사람에 대해서 “사람의 옷을 입은 외계인 정도로 생각한다”는 분위기를 전한다. 헐리우드의 미투 운동에 영향을 받아 발라우드의 배우들 역시 성폭력 경험을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4월 이후 미투 운동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사라졌고, 바르티카 판데는 “미투에 대해 말한 여성들 모두 많은 사람에게 인격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나마 페미니즘에 관심을 보이는 인도의 남성들조차 법적인 부분과 임금에 대한 부분으로 한정되어 있다. “남자들은 거기까지밖에 생각을 안 한다. 섹슈얼리티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 오! 너 일할 수 있구나?! 그럼 됐지. 뭘 더 바라?”라는 식이라는 것이다. 마치 ‘당갈’에서 아버지가 딸들을 선수로서 키우는 데 주목하고, 사람들이 딸들에게 성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는 나무라지 않는 것을 연상시킨다. 사촌(아파르샤키 카우라나)이 기타와 함께 레슬링을 하고 차별을 옆에서 지켜봐 왔지만, 선수촌에서 운동복을 입은 여성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저 여자 예쁜데?”라고 말하는 것처럼.

게다가 인도의 사정은 한국보다 더 복잡하다. 종교 간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계층의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인도 페미니즘은 인도 여성들의 경험을 집단적으로 반영하기보다는 상류층 여성들의 관심을 대변하는 경향이 있다.” 인도의 심리학자 타라샤 초프라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그래서 ‘intersectional feminism(상호관계적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인도의 하층계급 여성의 경우 어떤 사건, 사실, 숫자로서 전파될 뿐, 그에 대한 의견이나 입장은 알기 어렵다. 특히 달리트(인도의 불가촉천민을 일컫는 말. 인도는 1950년 제정된 헌법에 따라 계급 차별을 금지하고 있으나, 차별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여성들은 과도하게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인도의 모든 여성에 대한 강간 사건의 유죄 판결 비율은 25%에 불과한 데다, 달리트 여성의 유죄 판결 비율은 2%로 떨어진다(‘허핑턴 포스트 인도’). 반면 상류층 여성은 “더 많은 기회와 특권을 누리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또한 이들이 목소리를 낼 경우 ‘이미 많은 것을 가졌는데 왜 이렇게 불만이 많은가?’라는 비판을 받는다. 결국 어느 쪽도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시와파 곤키브 파상은 “인도의 페미니즘은 이제 막 시작 단계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르티카 판데에 따르면 “이미 백래시는 시작됐고, 엄청나다.” 최근 인도에서는 ‘페미니즘은 남자를 혐오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상위를 주장한다, 페미니즘은 인도의 전통을 모욕한다, 페미니즘은 구식이며, 오늘날 남녀는 평등하다. 페미니즘보다 경제발전이 먼저다’라는 식의 주장이 퍼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인도 여성들은 많은 것을 이뤘다. 인도의 여자 학생들은 남자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에 대해 광범위한 항의를 하고, 학교 안에서 증가하는 여성혐오와 차별적인 규정 등을 세상에 알렸다. 또한 인도의 페미니즘은 미성년자 아내와의 성관계를 불법으로 인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부부 간의 강간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또 한 번의 좌절을 맛봤다. 그리고 올해 발리우드의 배우들은 미투 운동을 했다. 그 역시 큰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더라도 현실을 고발하며 맞서고 있다.

변화와 반동.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여성의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인도는 “SNS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세계의 다양한 페미니즘 운동에 영향을 받아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메일&가디언 인디아’) 한국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인구의 1/4만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온라인 페미니즘’은 엘리트주의이며, 그렇기 때문에 온라인 페미니즘 운동을 거부해야 한다”(‘허핑턴 포스트 인도’)는 목소리도 있다. 수많은 이야기가 교차되며 한국만큼이나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곳, 인도다. 그래서 ‘당갈’은 인도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알려주는 동시에, 현실을 잘 반영한다고도 할 수 있다. ‘당갈’은 인도 페니미즘의 시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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