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한국 아이돌의 실력이란

2018.07.04
ⓒBTS 'FAKE LOVE' 뮤직비디오
유튜브에서 우연히 한 영상을 봤다. 보이그룹 워너원의 멤버 윤지성이 공연에서 안무를 틀리는 모습들을 모아놓은 것이었다. 검색해보니 최근 일주일 내외로 비슷한 영상이나 게시물이 여러 SNS 계정과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었다. 누군가는 이것이 윤지성에 대한 이른바 ‘탈덕’, 팬 활동을 그만두는 이유라고도 했다.

이런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공격하고 싶은 대상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순간들만 부각시켜 여론을 형성하려는 것은 아이돌뿐만 아니라 인터넷 문화의 어두운 단면이다. 윤지성의 안무를 지적하는 영상이 많다 해도, 윤지성이 섰던 수많은 무대 중 일부일 뿐이다. 정말 안무를 많이 틀린다 해도 그것이 ‘탈덕’의 이유인지는 알 수 없다. 익명이 가능한 인터넷에서는 누가 팬인지 안티인지 알기 어렵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한국에서 아이돌이 안무나 노래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는 데 모두가 동의한다는 점이다.

Mnet ‘프로듀스 48’에 출연한 일본 걸그룹 AKB48은 트레이너들이 실력 부족에 대해 지적하자 당황한다. 그들에게 춤과 노래 실력은 매력보다는 덜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프로듀스’ 시리즈AKB48의 총선거에 매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감안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AKB48이 자신들의 매력앞세워 표를 받는다면, ‘프로듀스’ 시리즈는 일단 실력을 보여주고 등급을 평가받아야 한다. 아무리 다른 매력이 있어도 실력이 부족하면 표를 주지 않을 수도 있다. 노래나 춤에 특출한 재능이 있는 출연자는 유연정, 청하, 김재환처럼 이른바 ‘실력픽’으로 뽑힐 수도 있다. 윤지성을 비롯한 워너원은 ‘프로듀스 101’ 시즌 2를 통해 데뷔했다. 이 멤버들에게는 ‘프로듀스 101’이 제시한 실력의 기준이 적용된다는 의미다. 윤지성이 안무를 외우지 못한 것이 문제일 수 있는 이유다. ‘나야 나’처럼 리듬을 타기보다 복잡한 동작이 계속 이어지는 안무를 잘 외워서 다른 멤버들과 맞추는 것만으로 아이돌의 춤 실력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안무를 외우지 못하는 아이돌이란, ‘프로듀스 101’ 시청자나 워너원의 팬에게는 아이돌과 팬 사이의 약속을 깬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군무를 잘 맞추는 것은 아이돌에게 중요한 실력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모든 멤버가 동작을 정확히 맞추는 이른바 ‘칼군무’가 전 세계 공통의 기준은 아니다. 댄싱 팀이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같은 동작이라도 댄서 각각의 느낌을 살리는 경우도 있다. 실력은 절대적인 기준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한국 아이돌이라는 장르의 법칙 중 일부일 수도 있다. 아이돌 팬덤은 최근으로 올수록 아이돌의 실력을 세밀하게 나눠서 평가한다. 노래는 호흡, 발성, 발음, 억양, 톤, 고음 처리 능력, 감정 표현 등을 하나하나 따지고, 춤은 춤선, 표정 연기, 군무를 다른 멤버와 정확하게 맞추기, 손끝 동작, 암기력 등으로 세분화됐다. 팬덤 바깥의 대중이나 미디어가 이런 영역까지 관심을 갖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지만 팬덤에게는 중요하다. 이 기준들을 만족시키는 아이돌은 팬덤의 자부심이 되고, 그의 실력을 강조한 자료들을 만들어 다른 아이돌 팬에게 ‘영업’(홍보)할 수 있다. 반면 실력이 부족하면 윤지성처럼 안티 또는 돌아선 팬의 공격을 받기 쉽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아이돌에게 실력은 팬덤 바깥의 인정을 받기 위한 근거였다. 한국 아이돌은 앨범을 내면 일주일에 몇 번씩 TV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인기는 음원차트나 TV 음악프로그램 순위로 증명한다. 매출 또한 앨범 판매와 공연 수입, 행사 등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총매출 역시 다른 어떤 장르의 가수들보다 높다. 팬덤 바깥의 대중과 미디어의 평가를 벗어나기 어렵다. 한국 아이돌의 역사 자체가 아이돌 팬덤 바깥의 인정을 받기 위한 도전과 응전의 과정이다. TV 음악프로그램에서 가수의 립싱크와 라이브 여부를 따로 표현할 만큼 아이돌의 립싱크 문제를 지적하자 엄청난 트레이닝을 통해 춤추며 라이브를 하는 아이돌이 나왔다. 아이돌이 제작자의 기획에 따라 움직이는 비판에는 지드래곤부터 전소연에 이르는 프로듀싱 가능한 아이돌이 맞받아쳤다. 팬덤에서도 아이돌의 실력은 그들이 아이돌을 가수로서 좋아한다는 증거였다. 메인스트림 음악 산업의 한가운데서 시작, 지역과 장르 모두 확장하며 생명력을 유지한 기이한 서브컬처의 생존법이다. 그런데 윤지성의 논란은 팬덤 내부에서, 팬덤의 기준에 따라, 팬덤끼리 공방을 주고받았다. 외부를 향하던 실력의 증명이 팬덤을 위한 것이 됐고, 새로운 기준이 생긴다. 윤지성의 실력을 비난하는 이유 중에는 ‘성의 부족’도 있었다. 한국에서 아이돌이 안무를 틀리는 것은 이제 팬에 대한 자세의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아이돌 팬덤은 여전히 외부의 인정을 받기를 원한다. MBC ‘일밤’의 ‘복면가왕’에 아이돌이 출연해 좋은 평가를 받으면, 해당 팬덤은 그 사실을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다만 그들이 생각하는 아이돌의 실력과 한국 팬덤 바깥의 세계가 생각하는 실력의 기준은 점점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 아이돌 산업의 세계적인 성장은 그 간극을 더욱 크게 만든다. 지금 한국에서 미국의 미식축구 단체인 NFL의 결승,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 설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아이돌은 방탄소년단일 것이다. 미국 내 인기뿐 아니라, 그들의 무대가 슈퍼볼 등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특별 무대에 어울리는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힙합을 비롯한 미국 메인스트림의 인기 장르를 아이돌 그룹에 적합한 군무로 표현하고, ‘불타오르네’처럼 대규모 인원을 동원한 스펙터클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미국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는 이런 모습에 더 가까울 것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동방신기처럼 멤버 개개인의 캐릭터 대비가 폭발적인 퍼포먼스로 표현되는 것에 호응할 수도 있다. 방탄소년단과 동방신기쯤 되면 퍼포먼스에 대한 선호는 멤버 개개인의 실력 문제가 아니라 스타일의 차이다. 다만 그 스타일을 만족시켜야 팬덤이든 대중이든 해당 아이돌의 실력을 바라볼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팬덤과 대중, 또는 국내와 국외의 실력 평가 기준은 비슷한 바탕을 갖되 구체적인 면에서 점점 달라질 것이다. 한국 아이돌에게 가수로서의 실력은 매출의 대부분을 가져오는 본업을 위해서도, 팬덤의 자부심을 위해서도, 팬덤 바깥의 인정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실력이 부인할 수 없는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을 통해 평가받는 시대는 지났다. 어쩌면, 그 자체가 착각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한국 아이돌에게 실력은 오히려 과거보다 더욱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가 됐다. 과거에 실력은 국내 음악 산업의 기반을 공유하는 팬덤 바깥의 기준에 맞추는 부분이 많았다. 보이그룹 H.O.T. 시절의 팬덤은 실력에 대한 그들만의 기준을 만들기 어려운 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윤지성에 관한 논란처럼 팬덤 내에서 공유하는 실력의 기준이 생겼다. 한편으로는 방탄소년단의 ‘쩔어’에 환호했던 서구 시장처럼 해외에서 선호하는 또 다른 기준이 있다. 그사이 한국 아이돌이 설 수 있고, 서야 하는 무대는 점점 늘어난다. 앨범을 내면 일주일간 7개 이상의 TV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할 수도 있다. 시상식 무대란 멜론 어워드뿐만 아니라 빌보드 어워드를 포함하는 의미가 됐다. 무대 위에서 더 많고, 다양한 사람들을 가수이자 댄서로서 사로잡을 실력이 있어야 K-POP 아이돌로 버틸 수 있다. 그만큼 많은 회사들이 연습생에게 춤과 노래를 열심히 연습시킨다. 하지만 그것이 다양한 시장에서 공통적으로 높게 평가할 수 있는 실력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아이돌 개개인의 실력이 회사의 프로덕션까지 연결, 최대한 많은 소비자가 납득할 수 있는 또 다른 의미의 실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곳은 정말 소수다. 아이돌에 관한 온갖 프로모션과 세계관이 넘치는 시대에, 실력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의 차이를 낳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돌아왔다. 결국 최후의 승부는 무대에서 난다. 

물론 노래 가사와 춤을 잘 외우고 실수 없이 잘하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윤지성이 정말로 그마저 늘 제대로 못했다면, 그의 팬덤이든 워너원의 다른 팬덤이든 실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 논란이 되는 영역의 실력이 가진 의미는 과거에 비해 많이 축소되었다. 그러니까, 이런 실력은 이제 ‘프로듀스’ 시리즈의 등급을 잘 받을 수 있다는 정도의 의미다. 춤과 노래를 잘 따라 하도록 연습시키기 전에, 정말 실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부터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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