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B48은 K-POP의 꿈을 꾸는가

2018.07.06
일본의 걸그룹 AKB 사단의 총책임자이자 Mnet ‘프로듀스 48’에 참여한 제작자 아키모토 야스시는 1985년 오냥코클럽을 시작으로 일본 여자 아이돌의 역사에 변화를 일으켰다. 옆집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친숙한 외모의 소녀들을 그룹으로 구성한 뒤 꿈, 노력, 성장이라는 청춘 영화나 만화를 연상시키는 서사를 집어넣은 것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프로듀스 48’의 연출자인 안준영 PD는 제작 발표회에서 “꿈, 우정, 성장”을 말했다. ‘프로듀스 48’이 애초에 AKB48의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따라 한 것을 생각하면, 이는 단순한 우연처럼 보이지만은 않는다. 실제로 ‘프로듀스 101’에서 김소혜는 출연자 중 최악에 가까운 실력을 보여줬지만,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데뷔 멤버를 뽑는 투표에 참여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면서 데뷔하기도 했다. 그리고 ‘프로듀스 48’에서는 바로 그 AKB48의 멤버들이 성장 서사를 보여주고 있다. HKT48의 센터이기도 한 미야와키 사쿠라를 비롯, AKB48 멤버들이 부족한 실력을 지적받고 그 후 성장하겠다는 결의를 보여주는 것은 ‘프로듀스 48’ 초반의 중요한 스토리라인이기도 했다.

성장은 일본 아이돌의 중요한 세일즈 포인트 중 하나다. ‘프로듀스 48’에 출연한 무토 토무의 “우리는 춤이나 노래를 보여준다기보다 ‘즐겁다’라는 걸 보여주는 게 일이잖아”라는 말, 그리고 아사이 유우카의 “얼마나 팬분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란 말에는 일본 아이돌의 핵심이 담겨 있다. 이는 ‘프로듀스 48’의 트레이너들이 일본 아이돌이 안무를 익히면서 잘하진 못해도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며 감탄했던 지점이기도 하다. 일본 대중이 아이돌에게 기대하는 것은 실력이 없더라도 노력해서 성장하고 꿈을 이루는 모습이다. 그리고 ‘프로듀스 48’에서 보듯 성장은 곧 서사다. 어떤 아이돌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면 그 과정을 담은 서사가 필요하다. 이는 아키모토 야스시가 가진 가장 큰 권력이기도 하다. 아키모토 야스시가 AKB 사단 멤버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은 그 멤버만의 서사를 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극단적인 예로, 2008년 당시 25살이었던 오오후리 메구미는 AKB48의 레귤러 프로그램인 ‘AKBINGO’에서 ‘한 달 동안 솔로 앨범을 1만 장 팔지 못하면 너는 AKB48을 졸업해야 한다’는 전언을 듣는다. 때문에 그는 한 달 안에 1만 장을 소화하기 위해서 비키니 한 장과 하이힐로 이루어진 무대의상을 입은 채 직접 앨범을 실은 리어카를 끌고 전국을 돌며 홍보 활동을 했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것은 물론 스트레스로 인해 자해를 하고 과호흡 발작을 일으켰다. 어머니는 우울증에 걸리기까지 했다.

오오후리 메구미가 당한 일은 명백한 괴롭힘이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그래도 오오후리 메구미는 그 기획을 통해 솔로 앨범도 내고 이름을 알리지 않았느냐?’라는 반응이 나왔다. AKB 사단에서는 좀처럼 개인이 주목받을 만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원수가 많은 데다 운영진의 의견에 따라 주목받는 멤버가 정해지는 경우가 많아, 멤버가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방법이 한정되어 있다. 누가 봐도 비주얼이 좋거나, 예쁘지 않아도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잘 구축했거나, 악수회에서의 팬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오는 이른바 ‘낚시’ 기술에 능하지 않으면 비인기 멤버로 밀려난다. 한국에서는 우선 노래와 춤을 제대로 춘다는 전제하에 이런 요소가 더해지지만, 일본에서 이는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다.

‘프로듀스 48’에서 AKB48 멤버들을 다루는 방식은 이런 모습을 한 프로그램에 압축시킨 것처럼 보인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프로듀스’ 시리즈의 시스템은 가혹하다. 모든 연습생이 염원해 마지않는 목표 ‘데뷔’를 내걸고 짧은 기간 내에 혹독하게 그들을 쥐어짠다. 절대 권력인 PD의 카메라 앞에서 분량에 따라 인기도가 오르락내리락하며, 특정 의도를 가지고 행해진 ‘악마의 편집’으로 온갖 루머와 음해에 시달린다. 그런데 AKB 사단의 멤버들은 일본에서 이미 ‘프로듀스’ 시리즈보다 더 가혹한 환경에서 일한다. 여기에 ‘프로듀스 48’은 기간 내에 열심히 연습생을 가르친 뒤 그 실력으로 평가한다는 명분을 부여한다. 일본에서는 개인적으로 받아야 했던 트레이닝을 해주며, 좀처럼 받을 수 없었던 ‘원샷’으로 재조명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때문에 최상위 인기 멤버 사시하라 리노의 “일단은 팔릴 만한 기회가 있다면 응모하는 게 좋겠죠, 팔리지 않는 아이는.”이라는 말은 필요 이상으로 신랄하긴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프로듀스 48’의 원조라 할 수 있는 AKB48이 더해지면서 생긴 이상한 영역이다. 지난 6월 29일 방영한 ‘프로듀스 48’에서 주목을 받은 야부키 나코는 한국에서 주목받은 것은 물론 일본 야후의 검색어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 ‘프로듀스 48’을 통해 재발굴된 타케우치 미유는 7년 동안 활동했음에도 ‘프로듀스 48’이 방영된 후 일본 내에서 ‘저런 멤버가 있는지 몰랐다’, ‘이미 졸업한 줄 알았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AKB 사단에게 ‘프로듀스 48’은 그들의 성장을 위한 서사의 확장이자 팀의 존재 이유에 대한 명분을 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일본 아이돌 산업이 K-POP의 특성을 자신과 접합하는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지난 5월 30일에 발매된 AKB48의 52번째 싱글 ‘Teacher Teacher’에는 걸그룹 여자친구의 안무를 담당하는 박준희 안무가를 투입하기도 했다. AKB 사단이 K-POP과 이 방송을 통해서 활로를 찾고 있다는 의미다. ‘프로듀스 48’을 시작으로 일본 아이돌과 K-POP 사이에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하는 것조차 어렵다. 우선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방송을 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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