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내게 필요한 건 연애가 아니라

2018.07.09
나는 지난 3월, 연애 에세이를 출간했다. 소설이 아닌 진짜 나의 이야기였다. 처음 이런 책을 쓰겠다고 말했을 때,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달달한 사랑 이야기이겠거니 예상했고, 나와 가까운 지인들은 다들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괜찮겠냐고, 그런 거 쓸 자신 있냐고 물었다. 내 연애가 평탄하지는 않았다는 방증. 너의 연애사를 세상에 공개하겠다고? 응, 그럴려고. 서점에 가보니 여자가 자기 연애를 솔직하게 드러낸 책이 거의 없어. 근데 나는 그런 이야기를 읽고 싶었거든 늘. 남자들은 자기 연애사,야한 이야기, 잘만 하는데 왜 여자가 쓴 건 거의 없는지 의문이야. 나는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쓴 마음을 읽고 공감하고 싶었거든. 알잖아, 남자들은 몰라.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연애를 하고 있는지. 그래서 내가 쓰려고. 나처럼 그런 책 읽고 싶은 여자들 있을 거고,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알고 싶은 남자들이 읽을 그런 연애 책을 쓸래.

나의 지난 연인들을 돌아보면,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겨우 세 명의 남자. 그 외의 여러 사람을 만났었지만 그저 스치듯 함께한 정도의 존재였다. 나는 왜 그들을 사랑할 수 없었던가. 마음이 와 닿지 않는 운명적 문제였을까, 극복할 수 없는 성향의 차이였을까. 혹은 직업이나, 상황의 문제였을지도 모르고, 그냥 사람과 사람이 달라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명 한 명 따져보면, 내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던 원인이 명확히 보인다. 사랑에 빠지는 데는 이유가 없을지라도,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몇 년 전 어느 연애 상대였다. 조금씩 그가 편해진 나는, 어떤 장난을 쳤다. 그것이 그렇게 무례한 행동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상대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빴었나 보다. 그는 정색하며 화를 냈고, 뒤이어 따라온 말은 ‘아,이걸 때릴 수도 없고.’였다. 나는 그 순간 맹수 앞에 마주한 작은 동물처럼 얼어붙었다. 소름이 돋았고, 눈치를 보며 힙겹게 사과했다. 나를 때릴까 봐, 무서웠다. 그는 나를 때리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그에게 맞은 기분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절대로 그에게 장난을 치지 않았고 조심스럽게, 그리고 몰래 거리를 두었다. 그가 무서웠다. 헤어지자고 말하는 것도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면 어떤 상황이 생길까 두려워 전화로 했다. 마지막에 들은 말은 더더욱 폭력적이고 권위적이었다.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이 정도로 끝이 나서.

그 이후로 남자가 무서웠다. 연애가 두려운 게 아니라 남자가 두려웠다. 한 남자가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기까지는 꽤 긴 시간과 많은 확인이 필요했다. 사실, 혼자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다니는 나는 자주 시선과 언어적 폭력을 경험한다. 길을 지나가면 휘파람을 불며 헬로우. 그 정도 뭐,익숙하다. 남자친구 안 필요하냐, 피부 한 번만 만져보자, 그런 말들과 함께 낄낄거리며 조롱하는 남자들. 수백 번 당했지만 불쾌한 건 늘 당연하다. 다만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이제는 안다. 신경 쓰지 않고 꼿꼿하게, 중요한 것은 절대 웃지 않고, 당당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것. 움츠러들거나 미소를 지어주면 안 된다. 쏘리라는 말도 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쳐다보는 경우에는 나도 똑바로 쳐다보고 왜 쳐다봐? 라고 말하면 백이면 백, 아니라고, 미안하다고 했다. 대체 왜 그러는 걸까. 그게 뭐가 즐거울까, 그 시선과 말들이 누군가에겐 폭력이라는 사실을 알기나 하는지.

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나를 조롱하는 사람은 ‘모르는 남자’만이 아니었다. 만난 지 두 번밖에 안 된 지인은 잘 지냈냐며 엉덩이를 토닥였다. 어떤 친구는 넌 가슴도 큰데 왜 딱 붙는 옷을 안 입냐고 위아래로 훑어봤다. 오랜만에 연락이 온 지인은 연하 남자친구가 있으니 복날에 영계 안 먹어도 되겠다고 했다. 이런 말에 허허 웃어넘긴 내 탓일까, 내가 예민한 것뿐이라고 자책할 만큼 너무 자주 있는 일이었다. 그냥 장난이니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그런 식으로 견뎌왔지만 점점 더 강도는 심해졌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여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무언가 바뀌었다. 대놓고 하던 외모 품평도 줄었고 성적인 농담을 하는 남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음을 확연하게 느낀다. 그래, 페미니즘. 탈도 많고 말도 많은 그 단어. 그로 인해 나는 당당하게 불쾌함을 드러내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이전보다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페미니스트가 아닌 여자가 있을까. 그저 목소리를 내기를 아직 두려워하고 있을 뿐이다. 그건 그저, 내가 한 사람의 존재로서 안전하고 자유롭게 원하는 것들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 손을 들어 외치는 것이다. 나답게 잘 살고 싶다고, 그렇게 용기내어 소리친다.

연애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글을 썼었다. 사랑을 하면 당연히 어렵고 두렵다. 연애하는 동안 생기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나갈 용기, 그런 로맨틱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본질적인 두려움이다. 내 옆의 남자가 나를 때릴 수도 있다는 공포를 경험한 이후로, 나는 늘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이 남자가 안전하다는 증명이 필요했다. 과장이 아니라, 나를 죽이거나 해치지 않을 사람인가부터 확인해야만 하는 잔인한 현실. 드라마 ‘청춘시대’에서 정예은(한승연)이 고두영(지일주)에게 폭행당하고 감금당하는 장면은 영상으로 보는 것조차 소름이 돋았다. 신체적인 아픔 이전에 폭행하는 남자의 표정에 드러난 폭력성과 위압감. 나 또한 그런 표정을 본 적이 있다. 직접적인 신체적 가해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도 여러 방식으로 드러난 연애라는 이름의 폭력. 드라마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벽으로 밀어 키스하기, 만나달라고 집 문을 두드리고 밤새 밖에서 기다리는 것. 헤어지고 싶지 않다며 손목을 끌어 잡아당기는 것. 모두 나도 경험했던 것들이다.

내게 고백이랍시고 아무것도 필요없으니 자신에게 몸만 와달라고 한 남자도 있었다. 결혼하자길래 내가 아직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그는 ‘너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여자의 행복을 알아야지’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순간, 그가 원하는 건 ‘밥 차려주고 옷 빨아주고, 섹스도 해주고 자기 애도 낳아 키워주는 여자의 몸뚱아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나마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그 외에도 울지 말고 투정도 부리지 말고 생글생글 웃기만 하라던 남자, 살찌고 관리를 못한 여자의 남편이 바람피우는 건 당연한 거니까 너도 관리 잘하라던 남자, 담배를 피우거나 친구를 만나 술 한잔 하는 것, 야식을 먹는 것조차 살찐다고 참견했던 사람, 술에 취하면 성격이 변해 험한 말을 하던 사람. 섹스를 할 때 눈빛이 변하던 남자, 섹스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서 혼자 자위할 때 보겠다던 남자,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 나에게 숨겼던 사람, 힘든 일이 있으면 연락을 끊던 남자, 친구들에게 나를 예쁜 인형 자랑하듯 소개하던 남자, 여성스럽게 머리를 좀 길러보라던 남자... 모르겠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연인이었을까.

하지만 그런 남자만을 만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책에 쓴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했던 마음. 내 모든 것을 내보일 수 있었던 사람, 나의 가장 약하고 여린 부분까지 아껴주던 사람. 함께 손을 잡고 걷는 것만으로 세상이 아름다웠던 나의 연인. 우리가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착각에 빠져 살던, 그런 연애를 경험했었다.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 지나온 수많은 실패와 고통 정도는 감안할 수 있을 만큼 행복했던 시절. 희귀한 사랑의 연애였다.

그렇기에 내게 필요한 건 사랑 없는 연애가 아니다. 가치 있는 사랑을 경험하고 나니 그저 그런 연애가 시간 낭비라고 느껴졌다. 진짜가 아니면 하지 않을래, 하며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연애 상대를 찾는 것이 이젠 귀찮아졌다. 늘상 연애 중이던 내가 한동안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을 보고서 친구들은 내게 소개팅, 심지어 ‘선다방’이라는 맞선 프로그램에 나가보라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전혀 관심이 없었다. 누군가를 애써 찾으면서까지 연애를 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은 연애를 하지 않아도 괜찮아. 충분히 만족한다. 진심을 다해, 나의 상태는 무척 건강하다.

대체 연애란 무엇인가. 아마 계속 모를 것이다. 하지만 답이 없는 것에도 질문과 물음은 필요하다.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책을 쓰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나의 연애에 대해 질문했다. 처음엔 지난 연인들, 그리고 지난 나에 대해 생각했고 결국에는 지금의 나와, 이후의 나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미래의 연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건 썩 괜찮은 남자와 연애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복하도록 사랑에 빠지는 것. 그것을 함께해줄 한 명의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눈가에 주름이 지도록 환하게 웃는 내 모습을 아껴주는 타인. 함께하는 것들이 온전히 가치 있는 행동이 되어,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각자의 삶을 존중하고 공감해줄 그런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싶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고 보니 더더욱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그 말을 되새겨본다. 어른의 장래희망이 아니라 어른의 판타지는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혼자 계속 살아야 할지도 몰라, 혼자가 된 지 좀 됐어, 라고 말하고 보니 이상했다. 내가 언제 혼자가 아닌 적이 있었던가? 연애를 하지 않으면 혼자고, 남자친구가 있으면 혼자가 아닌건가? 돌아보면 사실 나는 늘 혼자였다. 그럼에도 이제껏 잘 살아오고 있다.

십 년간의 연애를 일 년 반 동안 썼다. 삼만 오천 자, 삼백 몇십 페이지, 한 권의 책에 연애에 대한 온갖 마음을 털어냈다. 원고를 끝내고 난 후, 속이 텅빈 사람처럼 멍하니 지냈다. 그간 마음 구석구석 쌓아두었던 것들을 다 털어냈기 때문이었을까. 텅 빈 마음. 그렇다면 다시 무언가 새로운 것을 채워 넣으려 해야 하는데 그럴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냥 빈 채로 두고 싶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마음을 채워 넣을 것들을 찾았다. 연애는 아니었다. 연애를 비워낸 자리에 또 연애를 채워 넣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을 하면 좋을까. 음, 운동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친구들을 만나고 무언가를 배워야지. 멀리 여행도 가야지. 새로운 것도 해보고, 일도 바쁘게 하고. 채워 넣을 것은 많았다. 내가 애써 찾지 않는 건 연애, 그것뿐. 그 외의 모든 것들은 스스로 찾아가며 즐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쁘게 일하고 바쁘게 놀았던 몇 달. 더더욱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연애할 시간이 없었다. 연애할 필요가 뭐가 있어. 이렇게 인생이 알차고 즐거운데. 남자친구가 없어도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고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이별에, 어긋남에, 두려움에 마음 쓰지 않아도 돼.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인 시간이 너무나 평화로웠다. 그렇게 나는 지금 연애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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