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블레스 유│① ‘밥블레스유’, 잘 먹고 잘 사는 언니들의 이야기

2018.07.10
Olive ‘밥블레스유’에서 최화정과 이영자, 송은이와 김숙은 자주 “행복하다”고 말한다. 시청자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거기에 어울리는 음식을 추천하는 이 토크쇼를 이끌어나가는 이들은 40대 중반부터 60대까지의 중년 여성들이다. 그만큼 인생 경험이 풍부하고 이는 남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은 또 다른 삶의 형태를 보게 됐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아이가 없어도 얼마든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중년 여성들의 모습을.

‘밥블레스유’는 출연자들의 실제 삶에서 출발했다. 지난해 10월 김숙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최화정, 이영자, 송은이와 함께 밥을 4차까지 먹었다’는 글을 올렸고,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보이자 송은이는 이 모임 자체를 VIVO TV의 새 예능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한다’는 골자는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밥블레스유’는 사연을 매일 먹는 밥과 관련지을 만큼 보다 일상적인 고민에 초점을 맞춘다. 프로그램 회의를 위해 처음으로 모인 자리에서 이영자는 아주 사소한 고민들을 다루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 ‘친구랑 싸운 건 아닌데 묘하게 찝찝한 상황’을 예로 들었다. ‘따끈한 라면에 김 가루를 솔솔 뿌려 먹으면 친구에게 전화가 올 것’이라는 최화정과 ‘라면을 먹고 용기를 내서 먼저 친구에게 전화를 할 것’이라는 이영자는 누군가의 사소한 고민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충분히 공감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는 바로 자신의 분야에서 꾸준히 일해온 중장년층 여성들이 실제 인생에서 수행하고 있는 역할이기도 하다. 1회에서 친구 간의 돈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 송은이는 “언니들이랑 이야기하면 이게 좋아. 내가 생각 못 했던 좋은 이야기도 듣고”라고 말했다. 이에 이영자는 “나한테는 화정 언니가 있다”, 김숙은 “나한테는 영자 언니와 은이 언니가 있다”라고 자랑했다. 남성 위주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대상화된 중년 여성이 아니라 여성이 바라본 여성의 모습, 그리고 그 여성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중년 여성들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그나마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 출연자들이 등장했던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는 잠정 종영했고, SBS ‘집사부일체’에 출연한 윤여정은 최초의 ‘여성 사부’라는 점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20대가 지나면 여성 연예인들은 TV에서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리곤 했고, 그 후 이들이 다시 등장하는 것은 누군가의 아내 또는 엄마로서 소비되는 시점이다. “숙이와 나는 종종 ‘애하고 시어머니가 없어서 방송 못 한다’는 농담을 한다(tvN ‘택시’)”는 송은이의 말은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중년 여성 연예인들의 현실이다. 하지만 송은이는 팟캐스트 ‘송은이&김숙의 비밀보장’을 통해 끊임없이 기회를 만들어냈고 3년여 만에 ‘밥블레스유’에서 마침내 자신을 비롯한 중년 여성들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에 이르렀다. 최화정은 완벽한 주방에서 가족은 아니더라도 소중한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즐겁게 요리하고, 이영자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솔직한 모습으로 모두를 즐겁게 만든다. 어디서나 유별난 ‘센캐’로 취급받던 김숙은 언니들에게 한없이 귀여운 막내가 되고, 이 모든 상황을 총괄하는 리더는 송은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바 또는 정의하는 바와 상관없이 가장 자신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여성들. 바로 이 지점에서 ‘밥블레스유’는 다른 예능 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동시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김숙이 위경련으로 포스터 촬영에 늦자 이영자는 “대신할 사람은 많다”고 농담하며 여러 여성 방송인들의 이름을 거론했다. 그의 말처럼 TV에 나오지 않았을 뿐 다양한 여성 방송인들이 존재하고 그만큼의 다양한 삶이 있다. 그리고 송은이는 TV 밖에서 이를 발견했고, 시청자의 요구로 인해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으로 탄생했다. 이 일련의 과정은 방송을 제작하는 사람들이 그동안 무엇을 외면하거나 놓치고 있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동안 지워져왔던, 진짜 여성의 삶과 생각이 조명되기 시작했다. 많이 먹고 크게 웃는 ‘언니’들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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