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박민영, 열심히 일하는 여자

2018.07.11
“김비서가 있을 자리는 여기니까.”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에서 박민영이 맡은 여자 주인공 김미소는 이영준(박서준)의 설레는 애정 표현에도 가만히 웃을 뿐이다. 비서로서 최선을 다해 이영준을 관리하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 부사장인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언제나 입가에 잔잔하게 미소를 띠고 있어야만 한다. KBS ‘7일의 왕비’ 이후에 가진 인터뷰에서 “이제 남은 건 '로코'밖에 없다.”며 차기작으로 “좀 더 가벼운 연기를 해보고 싶다.”(‘스타뉴스’)던 그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사랑 앞에서도 현실의 비즈니스에 익숙한 여성의 모습이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신데렐라 스토리에 가깝다. 열심히 살아온 여성에게 돈이 많고 멋진 남성이 선물처럼 주어지고, 그의 트라우마를 함께 치유해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가족을 대할 때나 직장 상사를 대할 때나 한결같은 김미소의 사무적인 모습은 오히려 상대에게 긴장감을 주면서 자신이 관계의 우위에 놓일 힘을 마련한다. 김미소의 언니들은 자신들을 뒷바라지한 동생이 웃으면서 이제 회사를 그만둘 거라고 말하자, 무능력했던 자신들을 돌아보며 미안함을 감추지 못한다. 이는 좋아하는 남자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꿈에 자기가 나오는 것조차 “허락해주지.”라는 말을 쓰는 남자에게 김미소는 “허락 감사합니다.”라고 순종적인 듯 응수하지만, 정작 생활력이라고는 습득할 필요가 없었던 재벌 2세 남성이 정원에서 고기를 굽게 만들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일을 너무 잘하는 바람에 그의 사적인 영역까지 끼어들기 어려운 여성. 김미소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이영준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 이유다.

그동안 박민영이 연기했던 수많은 역할들 중에는 유독 똑똑하고 현명하지만 현실의 한계에 부딪힌 여성들이 많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않고 홀로서기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KBS ‘성균관 스캔들’에서 남장을 하고 성균관에 몰래 입학한 김윤희는 자신이 여성인 걸 스승 정약용에게 들켜서 내쫓길 위기에 처하자 “여자이기 때문에 관원이 될 수 없다면 남자들이 만든 조선은 왜 이 모양이냐.”고 응수하며 살아남는다. ‘힐러’의 채영신은 작은 인터넷 언론사 기자로 무시를 당했지만, 폭력적인 장면을 보고 트라우마 때문에 과호흡 증상이 온 상황에서도 후배 남자 기자보다 먼저 위험한 상황에 뛰어든다. 김윤희를 연기한 이후에 자신의 SNS에 이런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어서 고맙다는 말을 썼던 그는 ‘힐러’가 끝난 후에 채영신이라는 캐릭터에 더 큰 애정을 표했다. 항상 비슷한 캐릭터를 맡는다는 비판에 시달리면서도, 그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어떻게든 현실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여성들이었다.

20대 시절 출연했던 MBC ‘거침없이 하이킥’ 때만 해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배우 말고) 제2의 인생이 펼쳐질 줄 알았(‘TV리포트’)”다. 하지만 박민영은 30대에 이르러 “배우 생활에 권태기가 한 번도 안 온 걸 보면 내가 연기를 되게 좋아하는 것 같다.”(‘에스콰이어’)고 말하는 사람이 됐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김미소가 기존의 사회 구조에 돌을 던진 김윤희나 채영신만큼 박민영의 마음을 울린 캐릭터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과 육아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여성이, 이제는 주변의 도움에 의존하거나 애교를 부리지 않고도 굳건히 살아남은 30대의 여성을 연기한다. 자신의 노력으로 열심히 일해서 얻은 제2의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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