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런닝맨’은 어디로 달리고 있나

2018.07.11
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의 멤버 이광수는 지난 5월 27일 게스트인 걸그룹 AOA의 멤버 혜정에게 “꽃뱀”이라고 말했다. 방송심의위원회는 이에 대해 행정지도를 내렸다. “오락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양성평등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내용이 방송되어서는 안 되며, 특히 방송언어의 품위를 저해하는 용어를 반복하여 사용할 때에는 법정제재에 이를 수 있다.”는 이유다. 문제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런닝맨’의 공희철 CP는 ‘2018 SBS 예능 프로그램 상반기 결산’에서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고,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인 걸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광수의 발언은 “조심”한다고 해결될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그의 문제는 지금 ‘런닝맨’이 추구하는 방향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졌다.

최근 방영한 ‘몸서리 & 럭셔리 그랜드 파이널’에서 이광수는 벌칙으로 윙워킹(경비행기 꼭대기에 고정된 채 비행을 하는 익스트림 스포츠)을 했다. 그가 벌칙으로 윙워킹 중 가장 고난이도 코스를 스스로 선택하는 과정에서, 그를 “꽝손”이라 놀리는 자막이 나왔다. 이광수는 ‘런닝맨’에서 무슨 게임을 해도 운 없는 ‘꽝손’ 또는 ‘똥손’으로 통한다. 그러나 그가 벌칙을 받게 된 것은 여러 게임에서 다른 출연자들의 방해로 벌칙 받기 쉬운 상황에 몰려서다. ‘런닝맨’의 출연자들은 그를 대놓고 방해하고, 제작진은 애매한 상황이면 그에게 불리한 판정을 내린다. 이광수가 운 없는 캐릭터가 된 뒤, 제작진은 그의 악운이 반복되는 과정을 재미로 삼는다. 이광수의 발언은 그 과정에서 겪는 억울함의 표현이다. 그의 말이 폭력적일수록, 불쌍한 처지가 더욱 두드러진다. ‘런닝맨’에서 이광수의 폭언은 제작진이 설계한 웃음의 공식 중 일부다.

공희철 CP는 문제가 된 발언들에 대해 “캐릭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고, 멤버들이 친하다 보니”라고도 말했다. 사전에 협의된 출연자들이 웃음을 위해 장난을 치는 것은 예능 프로그램의 특성 중 하나다. 그러나 최근의 ‘런닝맨’에서 장난의 방향은 주로 이광수 같은 약자를 향하고, 약자가 괴로워하는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 그를 더욱 자극적인 상황으로 내몬다. 출연자들은 갑자기 태국으로 가서 벌칙을 면하기 위해 전갈이나 개구리를 먹는 게임을 하거나, 즉석에서 연예인을 섭외해 그들에게 곤란한 미션을 부탁해야 할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보다 즉흥적이고 극단적인 상황에서 출연자들의 반응은 더욱 격해지고, 제작진은 그것을 최대한 살린다. 제작진은 “꽃뱀”을 자막으로 “사기꾼”이라고 바꾸면서까지 굳이 방송하기도 했다. 그 뒤에 방송한 ‘푸드 트러블: 한 입만 레이스’에서도 지석진의 욕설이 묵음 처리된 채 나갔다. 그 점에서 지금의 ‘런닝맨'은 리얼 버라이어티 쇼보다 유튜브 BJ들의 방송에 더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몇몇 인기 BJ들이 실제 상황에서 극단적인 게임이나 내기를 하는 것처럼 ‘런닝맨’ 역시 출연자들을 실제 상황에 내놓고, 보다 수위 높은 게임이나 벌칙으로 출연자들의 격한 리액션을 끌어낸다. ‘연령고지’ 에피소드에서 하하와 이광수가 홍대 카페에서 다음 손님이 어떤 메뉴를 시킬지를 두고 게임을 하는 상황은 유튜브 BJ의 방송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여기서도 이광수는 하하의 속임수에 넘어갔다.

윙워킹을 탈 출연자를 결정한 지난 2일, ‘런닝맨’의 시청률은 8.5%(닐슨 코리아 기준)로 5주 연속 상승했다. 유재석이 윙워킹을 타는 순간의 시청률은 10.5%까지 올랐다. ‘런닝맨’의 20-49세 시청률은 동시간대 1위고, 갤럽에서 조사하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6월 설문조사에서는 7위를 기록, 5월의 8위보다 상승했다. 4월에는 17위였다. ‘런닝맨’의 인기는 계속 상승 중이다. 대중성의 측면에서, 지난해부터 ‘런닝맨’의 메인 연출자가 된 정철민 PD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가벼운 게임으로 끝내고 마는 ‘런닝맨'의 틀을 오히려 출연자들이 무엇이든 해도 되는 토대로 바꿨다. 리얼리티 쇼에서는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언행도 ‘런닝맨’에서는 오히려 장난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정철민 PD는 최근 윙워킹에 대해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벌칙이 과하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사전에 스태프들도 전부 타 봤고, 유럽에서는 유명한 레저 스포츠다. 남녀노소 즐기는 레저스포츠로 촬영 당일에도 예약이 꽉 차 있었다.”(‘OSEN’)고 말했다. 시청자가 우려할 만큼 윙워킹은 수위가 높은 벌칙이었다. 그가 출연자의 안전 문제를 소홀히 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런닝맨’은 윙워킹을 출연자들이 가장 하기 싫은 벌칙으로 묘사했다. 윙워킹의 안전성과는 별개로, ‘런닝맨’은 벌칙의 수위를 높이면서 게임에 진 출연자가 공포에 떠는 모습을 비중 있게 다룬다. 출연자들의 합의된 장난이라는 ‘런닝맨’ 또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전제는 애초에 게임이나 출연자의 언행에서 논란을 일으키곤 했다. 이런 틀 위에서 유튜브 방송처럼 실제 상황이나 극단적인 벌칙을 끌어들인 ‘런닝맨’은 더욱 제약 없이 프로그램의 수위를 끌어올린다. 여기에 이광수처럼 약자 포지션의 캐릭터를 재미의 축으로 삼으면, 더 가학적인 요소들이 더해질 수 있다. 이광수의 발언과 윙워킹에 대한 우려는 ‘런닝맨’의 수위가 눈에 띌 만큼 아슬아슬해졌다는 징후일 수도 있다. 유튜브에서는 일부 BJ들이 초등학생을 상대로 혐오 표현을 하지만, 지상파의 12세 시청가 프로그램은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래도 예능은 예능으로 보자고 할 수도 있다. ‘런닝맨’이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여러 요소들을 능숙하게 사용하며 재미를 이끌어내는 것도 사실이다. ‘몸서리 & 럭셔리 패키지’에서는 장기 프로젝트에 게스트를 합류시켜 고정이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활용한 캐릭터 수를 늘렸고, 게임의 결과가 ‘런닝맨’의 연령 등급을 알리는 연령고지 영상에 반영되도록 하면서 게임이 출연자의 현실에 영향을 미치게도 만든다. 이것은 ‘무한도전’이 한창 재밌었을 때 볼 수 있었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런닝맨’이 이광수 같은 약자를 더 괴롭힐수록, ‘런닝맨’의 재미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금 ‘런닝맨'의 시청자 반응과 별개로,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은 상당수 캐릭터를 잃었다. 과거 모든 출연자가 꺾어야 할 대상이었던 김종국은 힘이 필요한 에피소드에서 부각되는 정도다. 송지효는 전소민의 등장 이후 분량이 과거보다 줄어들었고, 양세찬은 여전히 그를 대표할 만한 캐릭터가 없다.

단지 출연자들의 역량과 성실성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런닝맨’의 에피소드는 대부분 약자 이광수와 약자를 괴롭히는 유재석, 여기에 약하지만 모든 미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전소민 중심으로 진행된다. 전소민은 ‘푸드 트러블: 한 입만 레이스’에서 문제를 맞추기 위해 다른 출연자가 구레나룻 쪽을 잡아당기는 것을 참았다. 그 뒤에는 김종국이 손으로 힘껏 전소민을 비롯한 다른 출연자들이 포갠 손을 때리자 비명을 질렀다. 공교롭게도 그는 ‘런닝맨’을 통해 연예계에서 보다 확실한 자리를 잡아야 하는, 가장 약한 입장의 출연자이기도 하다. 그는 ‘런닝맨’에서 어떤 상황이든 열심히, 그리고 버티면서 웃음을 일으킨다. 그러지 않으면 ‘런닝맨’에서 경력도 많지 않은 신인 여자 출연자가 버틸 방법은 많지 않다. ‘도적들 레이스’에서 게스트로 서은수가 출연하자, 다른 멤버들은 그를 김종국과 커플로 묶으려 애썼다. 서은수는 김종국과 18살 차이다. 같은 날 출연한 손담비에게는 못 본 사이에 드세졌다는 식의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약자거나, 나이 들어 드세졌거나, “꽃뱀” 소리를 듣거나. 과거의 송지효처럼 만만치 않게 강한 여성 캐릭터는 없다. 반대로 여성이 남성보다 힘이 약한 점을 부각시키고, 때로는 장난이라며 여성에게도 폭력적인 언행을 한다. 이광수는 게스트인 이다희에게 “너 진짜 배 한 대 맞을래?”라고도 말했다. 이광수가 정말로 이다희의 배를 때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런닝맨’에서 가장 힘이 센 이미지를 가진 김종국에게 이런 농담을 쉽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약자가 더 약한 사람을 괴롭힌다. 장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난은 점점 더 심해지고, 그사이 강한 캐릭터는 할 일이 없어진다. 윤리적인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런닝맨’은 재미를 위한 카드를 스스로 줄이고 있다. 대신 특정 출연자에게 점점 더 수위 높은 장난을 치며 대중의 반응을 끌어낸다. 그 결과 언젠가부터 프로그램에 묵음 처리를 명분 삼아 욕설이 웃음의 소재로 쓰인다. 이것도 친한 사람들끼리의 장난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게임에 졌다며 출연자에게 윙워킹을 시키는 것은 어떤가. 출연자가 동의했다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게스트에게 “꽃뱀” 같다고 하는 것은 정말 괜찮은 걸까. 그리고, 하필 여성의 “배”를 때리겠다고 말하는 것이 장난이 될 수 있나. 인터넷의 음지에서 쓰여도 불쾌할, 이른바 ‘배빵’ 발언을 12세 시청가의 지상파 방송에서 내보내는 것이 정말 장난으로 넘어가면 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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